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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ds Dec 06. 2019

쓰레기가 되는 순간

월요일 아침이면 골목을 청소합니다. 연두색 빗자루를 들고 쓱싹쓱싹. 제가 일하는 사무실 앞 골목입니다. 이 좁은 골목에 주로 버려지는 것은 일회용 플라스틱 컵이나 크고 작은 비닐, 그리고 담배꽁초입니다. 하지만 요즘 같은 계절에는 낙엽이 제일 많습니다. 회색 골목에 뿌려진 알록달록 낙엽이 운치 있게 보이지만, 꼼꼼히 쓸어내야 합니다. 사무실이 언덕에 있는데, 비탈의 경사가 심해 밟으면 미끄러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낙엽은 골목청소용 쓰레기봉투나 일반쓰레기봉투에 버립니다. 모아낸 낙엽을 쓰레기봉투에 버리다가 문득 이상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무에 달려있는 나뭇잎이었을 때는 그 누구도 쓰레기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 그저 나무의 잎이었던 것이 쓰레기가 되는 순간이 새삼 낯설고 이상합니다.


얼마 전 요리할 때 비슷한 감정을 느꼈습니다. 가지를 요리하기 위해 꼭지를 잘라내어 음식물 쓰레기봉투에 넣은 순간이었습니다. 방금 전까지는 그저 가지의 한 부분이었는데, 이제는 쓰레기가 되어 음식물 쓰레기봉투에 들어가 있는 가지 꼭지. 무언가 미안해집니다. 내가 단단한 꼭지까지 먹을 수 있는 동물이었다면, 가지 꼭지는 쓰레기가 되지 않았을 텐데. 다른 초식동물들에게는 가지 꼭지도 훌륭한 먹거리일 텐데 말이죠.


이런 경우가 꽤 자주 있지요. 인간의 ‘쓸모’를 기준으로 판단하자면 한순간에 쓰레기가 되어버리는 존재가 많습니다. 주로 식물들이 생각이 나네요. 선거 현수막을 가린다며 잘라진 가로수의 나뭇가지, 마구 자라 보기 흉하다며 깎아내어 진 길가의 조경수나 꽃. 먹을 수 있는 식물이 아니라서, 논과 밭에서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는, (식물들 사이에서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인간은 반가워하지 않는 잡초. 기타 등등.

잔머리 자라듯, 잎을 뻗는 조경수. 잘라내야할 것처럼 보이지는 않나요?


2016년 성북동 주민들은 성북구청이 도로를 넓히겠다며 70살 된 커다란 플라타너스를 베어내자 “구청은 주민들의 정서적인 측면을 고려하지 못해 나무를 하나의 시설물로 여겼겠지만 플라타너스는 성북동과 함께 살아온 마을의 인원(1)”이었다며 나무를 보호했습니다. 허리가 끊어진 나무를 끌어안고 현수막을 붙였고. 서명을 받고 주민 공청회를 열었습니다. 그 결과 도로 공사 계획은 무산되었습니다. 잘라진 나무는 복원하기 힘들지만, 그래도 그 자리에서 다시 작은 가지를 뻗고 있습니다. 구청 사람들에게는 도로 통행을 방해하는 쓸모없던 나무가 주민들에게는 함께 살던 존재였던 것이지요. 한편 최근에 택시를 타고 그 플라타너스 옆을 지나갔는데, 기사 아저씨가 플라타너스 낙엽이 너무 떨어진다며, 뭐하러 이런 나무를 심었냐고 불평을 하시더라고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쓰레기라 생각해왔던 것들, 누구의 어떤 쓸모로 판단되어 쓰레기가 되었는지 한 번쯤 의아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쓰레기라고 배워서 쓰레기인 게 아니라, 정말 나에게는 쓰레기일까? 하는 생각도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어쩌면 진짜 문제는 쓰레기를 만드는 인간일 것 같기도 합니다.

플라타너스가 잘려나간지 3년, 가지를 뻗는 플라타너스


(1) 새성북신문 <2016년 8월 25일 / 제680호 8면> 주민 인터뷰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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