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옷을 잘 사지 않습니다.
어렸을 때는 옷을 참 많이도 샀던 것 같습니다. 초등학교 때야 엄마가 입혀주시는 대로 입었고, ‘사복’ 입을 일이 별로 없던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소풍이나 수학여행 갈 때 한두 벌씩 새 옷을 장만했습니다. 그러다 대학생이 되며 옷을 사들이기 시작했습니다. 사복을 매일 입어야 한다는 핑계도 있겠다, 대학생이 되어 꾸미고 싶은 때였는지 이것저것 맘에 드는 걸 잔뜩 샀던 것 같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싼 가격의 옷이 쏟아져 나와 한 철 유행하다 사라지는 때였습니다. 저에게 어떤 옷이 어울리는지 스스로 잘 몰랐던 저는 그때 샀던 옷을 꽤 오래 방치했던 것 같고, 어느샌가 옷가지들은 사라져 버렸습니다. 하지만 아쉽지 않았습니다. 손에 잡히지 않던 옷들이고, 맘에 드는 옷들은 사방에 널려있으니까요.
세월이 흐르면서 취향도, 소비습관도 변했습니다. 벌써 몇 년째 저는 옷을 적게 사고 있습니다. 2019년 한 해동안 산 옷을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마저도 헌 옷 가게에서 구매했습니다. 새로 생긴 나머지 옷들은 사무실 동료들과 나누어 입은 것입니다. 관심사가 바뀌며 예전처럼 옷에 관심이 없어서 그렇기도 하지만, 이렇게 변화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옷 역시 버리면 쓰레기가 되기 때문입니다. 또 옷을 생산하는데 어마어마하게 많은 에너지와 물, 노동력이 필요하기도 합니다. 작년인가, 다큐멘터리 <Out of Fashion(2015)>을 보았는데 패션 산업계에서 쏟아내는 어마어마한 양의 쓰레기, 오염물질에 경악했습니다. 다큐멘터리에 출연하는 패션 디자이너가 버려지는 자투리 원단으로 뭐라도 해보려고 노력하지만, 노력과 시간, 그에 따른 비용이 많이 들어 그마저도 신통치 않습니다. 결국 많이 생산하지 않는 것이 해답이고, 그러려면 입는 사람들이 수요를 줄여합니다.
꾸미는 걸 좋아하지 않아도, 예쁜 것을 보면 눈길이 갑니다. 아침 운동하러 가는 길에 있는 취향저격 작은 옷가게, SNS에서 보이는 예쁜 코디들, 유튜브 광고에서 자주 보이는 옷 판매 앱 광고. 하루 종일 여기저기서 예쁜 것들이 저를 유혹합니다. 생존용 방한용품이나 중요한 자리에서 입어야 하는 단정한 옷 등 정말로 필요할 때는 사겠지만, 지금은 그렇게 필요하지 않으니 참습니다. 많이 생산하고, 빨리 소비하고, 유행에 따라 무수히 많이 버려지는 옷들. 그 사이클에서 한 발자국 벗어나고 싶었고, 선택한 건 헌 옷 사기와 나눠 입기였습니다. 아직 멀쩡한 옷이 쓰레기가 되지 않도록, 누군가 입을 수 있지요. 헌 옷을 사며 기부를 할 수도 있고요. 몸에 찰떡같이 맞는 옷을 찾기는 어려워 조금 아쉽지만, 그래도 잘 입고 있습니다.
어쨌든 사는 동안 내가 입었던 옷들이 나보다 오래 지구에 머무르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죽고 없는데, 내가 입었던 옷들이 이 지구 어딘가에 ‘쓰레기로’ 남아있다고 생각하면 기분이 이상합니다. 제가 스무 살 무렵 입고 버렸던 옷들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이 되었을까요? 올 해도 옷을 사는 일은 별로 없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