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점주가 말했다
사람들은 사장님 사장님 하니까 좋은 건 줄 아는데, 수진씨, 진짜 사회 소외 계층이 나야. 편의점 점주.
맞는 말이었다. 자기 사업자를 내고 일을 하면 다 좋은 건 줄 알았지. 아니, 내가 틀렸다.
대학생 때 알바하면서는 최저시급 안주는 사장을 증오했다. 최저시급이 4~5천 원대인 시절이었다. (2019년 최저시급은 8,350원이다.) 실제로 편의점 가맹점 중에 최저시급에 주휴수당, 4대 보험까지 완전하게 갖추고 있는 점포는 드물다. 이번 달 정산금 좀 보라고. 세금 떼고 알바비 다 주고 나면 20만 원 남는다고. 그 말을 하던 엄마뻘의 점주는 하루 꼬박 9시간, 주 45시간, 한 달에 180시간을 일했다. 180시간의 대가가 20만 원이었다. 알바는 꼬박꼬박 최저시급을 받아갔다.
아예 알바를 쓰지 않는 고육지책을 쓰는 점포도 있었다. 부부가 12시간씩 2교대로 주말 없이, 휴일 없이 일했다. 부부가 서로 얼굴을 맞대는 시간은 아침 8시, 저녁 8시 두 번뿐이었다. 월세 빼고 나면 그들에게 200만 원이 남았다. 월 360시간 근무의 대가가 인당 100만 원이었다.
최저시급은 국가 임금정책, 고용정책, 노동자 정책의 기준점이 된다. 이를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현업에 있을 때 나는 유니폼도 입지 않고 청소는커녕 휴대폰만 쳐다보던 수많은 알바들이 점주보다 많은 급여를 가져가는 걸 봤다. 구조적인 문제였지만 매일같이 점주의 하소연을 듣던 나는 괴롭기만 했다.
점주님, 앞에 마트 24시간 영업으로 바뀌었네요.
타사 점포 들어온대요. 담배권은 없는데 평수가 좀 커요.
요기 앞에 사거리에 3층짜리 다이소 들어온대요.
편의점의 경쟁상대는 편의점만이 아니다. 대형마트, 문구점, 카페, 심지어는 빵집도 경쟁 상대가 된다. 이미 서울에는 지나치게 많은 편의점이 있고, 객수는 더 늘지 않으니 기존 객수를 나눠먹는 식으로 업태가 유지된다.
대부분의 점주들은 체념했다. 그래, 또 들어온다더라. 또 매출 떨어지겠지. 아무리 행사를 해보고 새로운 장비를 넣어봐도 단기적인 술수에 불과했다. 출산율이 제로에 수렴해가는 사회에서 객수가 폭발적으로 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상권은 몇 달새 크게 변화하지 않고 행사가 종료되면 매출은 자연스레 빠졌다. 정산금 계좌에 찍히는 숫자는 처참하게 줄어갔다.
나는 퇴사하기 직전까지 16개 점포를 관리했고, 그중 대부분은 사회 소외계층에 가까웠다고 생각한다. 노동시간만큼 임금을 보장받지 못하고, 또 다른 일을 찾자니 나이가 많아 엄두도 낼 수 없는. 20년은 덜 산 내 앞에서 살려달라며 눈물을 뚝뚝 흘리는 점주들을 봤다. 아주 많이. 자주. 무언가를 해낼 역량도 의욕도 없었다. 아니, 내가 이걸 다 해결할 수 있는지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 이들은 나 말고는 의지할 데가 없는데, 떨어지는 매출 앞에서 나는 점점 무능하고 무기력한 사람이 되어 갔다. 연민의 감정만 커져갔다. 그건 내게도, 그들에게도 결코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이걸 다 감당할 수가 없다고. 도망쳐야 한다고. 마음먹고 마음먹었다.
그래서 결국 도망쳤는데, 남겨진 이들이 어떻게 살아갈지를 생각하면 명치 쪽이 턱하고 막힌다. 갑갑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