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랜서로 기획하고 글을 쓰다 보면,
뜻밖의 선물처럼 주어지는 일들이 있습니다.
내가 이런 일도 할 수 있을까?
살짝 주저하게 되지만,
함께 작업하는 이들과
마음을 모을 수 있겠다 싶으면
즐겁게 뛰어들고는 합니다.
그렇게 만난 장학재단이 벌써
4년 차가 되어갑니다.
어떤 방향성을 가져야 할지,
어떤 기준으로 장학생들을 선별해야 할지,
장학금을 통해 연결된 학생들에게
필요한 것을 어떻게 전해줄 수 있을지,
많은 고민이 이제 답을 찾아가며
앞으로 걷는 걸음이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장학재단과 함께 하며
이전에는 자세히 볼 수 없었던 세계를 보았습니다.
장학금 지원서를 읽으며 알게 되는
아이들의 아픈 사연들입니다.
할머니와 단 둘이 사는 초등학생 저학년 아이는
싫어하는 것을 적는 란에
혼자 있는 시간을 적어두었습니다.
차상위계층, 한부모가정이란 명칭 뒤에 가려져있던
여기서는 다 밝힐 수 없는 힘든 시간을 견뎌낸
아이들의 이야기.
속사정을 알고 나서 아이들을 만나야 하는 자리에서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으로 웃으면서도
마음 한쪽이 아릴 때가 있습니다.
안타까운 사실은
요즘은 개인정보 보호 때문에
학교 선생님들도 아이들의 이런 사정을
다 알기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며칠 전,
재단의 실무를 담당하는 이의 고민을 들었습니다.
아이들의 어려운 사정을 쭉 적어놓고
홀로 기도를 하다 보니 어느새 자신의 마음도
점점 무거워져 버렸다고요.
어느새 세상은,
하나님의 주신 마음으로 장학재단을 세웠지만,
재단이 기독교의 색채를 드러내지 않아야 한다는
무언의 압력이 존재합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하나님이 주신 마음으로 아이들을 돕고,
아이들을 사랑할 뿐 아니라
그 아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숨은 이들이 있습니다.
장학재단이란 이름으로 연결된 아이들을
어떤 마음과 태도로 돕고,
어떤 방법으로 그분의 사랑을 흘려보내
생명이 회복되도록 도울지
여전히 고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