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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양희 Feb 21. 2023

나의 작은 결혼식

집에서 하는 스몰 웨딩

노트북에 있는 사진 파일을 정리하던 중, 결혼식 영상을 발견했습니다. 일 년이 넘게 지난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 없는 한 시간 분량의 영상이었지요. 분명 전문가를 고용해 돈을 주고 찍었는데, 12살 어린이가 찍은 것 마냥 원 테이크로 찍어 내린 엉성한 영상이 꼭 나와 닮은 것 같아 웃음이 났습니다. 무엇이든 직접 하는데 큰 의미를 두고 있는 나는 훗날 멋지게 편집하려고 원본 영상 그대로 받았었는데, 귀차니즘이 승리를 거둬 지금껏 잊고 있었지 뭐예요. 영상은 그때의 모습을 꾸밈없이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굳은 얼굴의 엄빠와 신랑신부, 어머님과 시동생
사진사 아저씨가 찍을때 동생이 옆에서 찍어준 사진
서로 왜 결혼을 결심했는지 이야기하는 중
부케와 부토니에도 셀프로
손수 제작한 가랜드
비가와서 질퍽이는 잔디밭에 아무렇게 놓인 귀여운 항아리
엄마가 예쁘게 꾸민 정원

하우스 웨딩. 나의 결혼식은 그야말로 우리 집에서 펼쳐졌습니다. 서서히 잊히던 그날의 모든 모습이 영상을 통해 새록새록 살아났죠. 무려 예식 시작보다 두 시간 일찍 집에 도착하신 친척 어르신들이 첫 장면을 채웠습니다. 그 덕에 신부 앙순은 단장을 마치지 못하여 잔머리 한가득 튀어나온 채로 결혼식 비디오에 출현했어요.


엄마가 정성 들여 꾸민 정원과, 아빠가 만들어 준 무대, 누가 세워놨는지 모르는 알록달록 화환들이 더해져 만들어진 촌스러우면서도 귀여운 결혼식장이 화면을 채웠습니다. 수빤(동생)이가 또박또박한 발음으로 사회를 보며, 우리의 결혼식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설명하는 모습이 꽤나 의젓해 보였습니다. 장난스러운 모습의 신부와, 긴장한 신랑의 모습도 보였구요. 우리는 서로를 소개하며 왜 결혼을 하기로 결심했는지 그 이유도 밝혔습니다. 혼인 서약 중 힝구가 영어를 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그 모습을 보던 힝구는 ‘아이참 괜히 영어 했어.’ 하며 민망해합니다. 그 후, 아빠는 군의 기강을 잡는 장군처럼 성혼선언문을 읽었지요. 단짝인 쏭과 다돌이 짤랑이를 흔들며 축가를 부르는데 신부 앙순은 울고 있더군요.



촌스럽지만 아기자기하고 소박한 우리의 예식이 단체사진을 끝으로 끝났습니다. 그리고 전환된 화면에서 생각지도 못한 인터뷰 영상이 등장했지요. 엄마와, 친구들, 동생들, 시어머니의 축하 영상이었습니다. 갑자기 카메라를 들이밀어 어색한 와중에도 힘든 일이 있더라도 행복하게 살라는 말. 알콩달콩 재미있게 살라는 말들이 익숙하고도 예쁜 얼굴들을 통해 나오고 있었습니다.


아직까지 힘든 일을 겪지 않은 앙순은 사실 결혼 전에 다짐한 바 있습니다. ‘시련이 온다 하더라도 예술로 승화시키리라.’ 인생의 고난과 역경은 예술의 원천이 된다고 믿는 나는 그마저도 달게 받을 준비가 되어 있지만 지금은 그저 좋기만 합니다. 힝구는 자신이 잠을 자는 중에도 잠시 깨면 ‘앙순이 사랑해’ 하며 이불을 덮어주니 말이죠. 이제 함께 산지 3개월이 되어가니 우리는 아직 신혼입니다. 이 신혼이 끝나더라도 사랑하는 이들이 축하해 주며 당부한 것처럼 행복하게 알콩 달콩하게 살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아현이 나에게 써준 축시의 일부를 써야겠습니다.

 - 오늘의 선택이 당신과 그의 꿈에 한 발짝 다가가는 구름다리가 되어 더욱 충만한 내일을 살아가는 당신이 되기를 바랍니다. 윌리엄 예이츠 버틀러의 시 ‘하늘의 천’은 사랑의 희생과 숭고함을 노래하지만 당신의 오랜 팬이자 벗인 나는 결코 둘의 사랑이 희생이 되지 않기를 오롯이 내가 나로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는 인생의 버팀목이 되기를 간절하게 바랍니다. 찰나의 아름다운 순간을 함께 나누고 가장 예쁘고 젊은 지금의 당신을 기억해 주는 둘은 늘 서로에게 Best Friend이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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