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 흙수저?
이 둘 다 내가 즐겨 사용하는 단어는 아니다. 비록 아빠가 사업이 실패해서 10년 남짓 가족 모두 힘든 시기를 겪긴 했었어도 '그래서 가난했다' 이런 결론을 내리고 싶지는 않았다. 조막만한 자존심이 남아있어서 그런진 몰라도 그 몹쓸 단어 하나가 열심히 살아온 부모님의 삶마저 그저 그렇게 마침표를 찍는 거 같아서 나 스스로 그런 단어를 쓰는 것을 썩 좋아하지 않는다.
새삼 흙수저인지 금수저인지가 무엇이 그리 중요한가.
금수저로 태어났어도 마음이 가난한 것이나 흙수저로 태어났어도 마음이 부자인 것이나 - 결국은 매한가지 아닌가.
내가 독일로 3개월 인턴을 가게 되었을 때 내 수중에는 편도 티켓과 단돈 200만 원이 다였다.
인턴 아침 출근길, 까망베르 치즈가 든 베이글을 매일 먹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치즈가 들어있어 든든하고 무엇보다 다른 베이글 보다 쌌기 때문이다. 내일 아침 질리도록 먹은 그 베이글을 먹어야 한다는 생각이 문득 뇌리에 스친 그때 나는 내가 가난하구나라는 것을 처음 느꼈다. 아무도 없는 먼 이국 땅에 홀로 와서 열심히 살아보겠다고 우적우적 베이글을 먹는 내 모습을, 20대였던 나를 지금의 내가 본다면 어떤 위로를 할 수 있을까?
그땐 정말 아무것도 없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오기와 독기만 가득했던 청춘,
내 수중에 쥐뿔 아무것도 없던 그때에,
나는 그래도 정신만은 똑바로 차려야 된다고 늘 외고 다녔다.
7년 동안의 독일 생활에서 나는 그래도 하나 터득한 게 있다.
'돈에서 자유로워지기'
그 누군가 얼마를 가졌든,
얼마를 벌든,
집값만 한 차를 몰고 가든,
휘양 찬란하리 마치 멋진 백을 들었든,
부러움이랄까 이런 마음의 동요가 시간이 갈수록 조금은 누그러졌다.
빠앙빠앙 모터 소리 신나게 내고 달리는 람보르기니 차를 보면 참으로 멋지네 싶지만 정작 돈이 있었어도 그걸 사야 한다로 마음으로까지 움직이진 않았다.
마음 비우기는 원래 아무것도 없던 내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처음에 독일에서 돈을 벌기 시작하고 내게도 선물이란 걸 해보자 해서 샀던 비싼 시계는 내 만족도를 채워주는데 고작 일주일 정도였다. 겉으로 보이는 번쩍번쩍함이 누구에게 보이기 위한 흔한 겉치레가 내겐 길어봐야 며칠이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이 비워지기까지는 불과 얼마가 안 걸렸다.
하지만 지금도 돈이라는 것에서 완전 자유로워지는 것이 여전히 어렵다.
누가 돈이라는 양날의 검 앞에서 자유로울 수 있겠는가.
근데 한 가지 고민이 생겼다.
아이를 둘을 키우고
이 넓고 멋진 세상을 아이들에게 눈으로 보여주고
아이들 교육도 제대로 시켜야겠고
잘 뛰어놀 수 있게 좀 더 큰 집으로 이사도 가야겠고
.....
모든 게 다 돈. 돈. 돈 그놈의 돈이다.
내 몸뚱이 하나만 잘 건사하면 됐던 것이 자식이 태어나니 상황이 좀 달라졌다.
나는 비록 돈에서 자유롭다 할지언정 내 아이들만은 자라는 동안 남들 못지않게 해주고 싶은 부모 마음이 개입이 되면서 나를 혼란스럽게 했다. 나는 티셔츠 한 장 쉽게 사지 않지만 당장에 슈퍼에 파는 BIO분유가 비싸도 그걸 사서 먹여야 하는 게 엄마 마음이다.
결국 내가 생각했던 돈 앞에 초연해지겠다는 것도 그저 바람 앞에 일렁이는 촛불과 다름없는 것이었을까.
이리 쉬이 흔들리는 것을.
난 내가 독일 가는 것을 선택했고 베이글을 사다 매일 먹었고 그래서 나는 그 수개월간의 고생 뭐 그것쯤이야 했다지만 훗날 내 아들이 먼 타지에서 수중에 돈이 없어 먹기 싫은 베이글만 꾸역꾸역 먹어야 했다라면 나는 그저 담담할 수 있을까.
'아들아. 그런 경험이 인생을 배우는 하나의 교훈이다.'라고 하기에는 나는 아직은 그만한 강단이 없나 보다.
그렇게 인생의 처절함을 배우는 것은 나 하나로 족하다.
인생에는 달고 쓴 맛이 있더라는 값진 교훈은 내 아들에게 다른 방법으로 가르쳐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흙수저니 가난이니 내가 가졌던 상황들에 대한 타이틀들은 지금 중요하지 않다.
그리고 그런 것이 한치 부끄러운 것도 아니다.
다 내려놓고 나니 얻을 수 있는 것들도 많았다. 물론 그 대가를 너무 혹독하게 치러야 했다는 것이 있었어도.
아빠 사업을 정리하고 오빠 그리고 나 대학생이던 시절,
엄마는 내게,
"돈이 없었는데, 하느님이 그래도 너네 공부하라고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공부시킬 만큼은 주시더라."라고 했다.
아이들이,
그리고 내 가족이,
돈을 그냥 열심히 벌어야 하는 이유가 생긴 셈이다. 나도 신이 아이들 잘 키울 수 있을 만큼만 주셨으면 좋겠다. 아이들 무사히 잘 키우고 나서 남편과 나는 또 어떻게 잘 살면 되니까.
내년 3월 복귀를 하게 되면 열심히 앞만 보고 일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