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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담 조셉 Dec 05. 2020

어서 와, 마흔!

마흔의 용기

내가 84년 생이니, 3여 년 후면 마흔이다.

바야흐로 지금이 12월이니 마흔이 한층 더 가까워진 느낌이 든다.


마흔을 바라보는 마음,

마흔을 맞이하는 자세,

뭐 거창할 것이 없다.

조금 설레고 편안하며 그리고 다른 감흥이 없이 덤덤하다.


태국 가서 살아보면 좋겠다, 그치?


오늘 아침 남편이 뜬금없이 던진 말에 그러면 나는 태국어를 지금부터 배워야 되나 책상머리에서 한가득 통밥을 굴려본다. 남편이 나에게 이러한 뜬금포 화두를 던져주면 나의 행동력을 껏 자극시켜 현실화에 대한 갖은 고민은 온전히 나만의 것이 되곤 한다.

남편은 공기의 기운이 충만한 사람인데 반해 나는 땅의 기운이 많은 여자라 한번 뿌리를 내리면 잘 바꾸려 하지 않고 안정적인 것을 좋아하며 우직하다면 좋은 말일 것이고 변화나 트렌드 무디다하면 나쁜 말일지 모르겠다. 그래서 직장도 그리고 사랑도 늘 길게 오래 했다. 그에 반해 남편은 이상이 드넓은 사람이라 어디 가도 적응력이 좋고 번득이는 생각이 많으나 그중 뜬구름도 반 이상이다.


매해 1월,  '이번 년도에는 금연을 하겠다'는 남편.  

3년째 계속되는 공약에 빌어먹을 놈의 실천까지가 엄청나게 어려운 모양이다. 차라리 내가 맞불작전으로 담배를 같이 피우기 시작하면 흡연자의 마음을 이해라도 하려나 무 자르듯이 담배를 싹둑 자르는 게 그리도 힘든가 보다. 시아버님, 시동생들 다 흡연에 성공했는데 남편은 그 금연 대열에 낄 생각이 초부터 없었나 보다. 

 

마흔이 가까워지면서 그래도 한 가지 다행인 것은 서로가 생각의 가지치기가 어느 정도 가능해졌다. 대통령이 되겠다던가, 1조를 벌겠다 등의 다소 실현 가능성이 적은 것들은 더 이상 꿈을 꾸지 않는 현명함이 늘었다. 20대에는 꿈이라도 크게 꾸자해서 늘 꿈만 꾸다 허무하게 끝나는 일이 많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허무맹랑한 꿈만 좇아 살다 보니 그런 거 같다.

내가 새 책을 사는 것을 참으로 좋아하는데 소장의 가치를 떠나서 다 읽지 않아도 새 종이가 주는 빳빳함 그리고 새책이 갖고 있는 신선한 프린트 냄새를 간직하고 싶어서 일 때가 많다. 책꽂이에 고이 모셔두면 나란히 서 있는 책들을 바라볼 때마다 그냥 기분이 좋아졌다. 하지만 책이란 것은 무릇 많이 들여다봐야 하는 것이고 (책에 밑줄까지 쫙쫙 칠 용기는 없어도) 그렇게 모셔둘 것이면 차라리 안사느나만 못하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이제 그렇게 간직하기 위한, 소장하기 위한 책처럼 더 이상 꿈을 꾸지는 않을 거 같다. 지금이야 말로 'Action'  이 필요한 때.


그래서 인생의 2라운드를 맞이하기 앞서서 지금까지 잘 모르기에 또는 다소 망설여져서 실행 불가능한 것들을 해보고자 한다.


일단 나의 마흔 생일은 코사무이로 결정했다. 코사무이는 우리가 신혼여행을 갔던 곳인데 이곳에는 남모를 사연이 많다. 바야흐로 2016년 10월 1일, 한국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우리는 며칠 후 코사무이로 신혼여행을 떠났는데 그때 이미 뱃속에 4주 정도 된 우리 첫째가 있었다. 코사무이에 도착하자마자 생긴 입덧으로 신혼여행의 로맨틱한 분위기는커녕, 변기 잡고 토를 몇 번이나 해대니 기운도 없고 움직일 힘도 없고 나에게 그 멋진 절경이야 눈에 들어올 리 만무했다. 호텔에 꼼짝없이 누워 똠양꿍 국물과 땡모반 주스만 들이켰던 기억이 생생하게 남아있다. 지금도 신혼여행 사진을 보면 한껏 들뜬 남편 옆에 얼굴이 누렇게 뜬 나의 모습이 처량하리 마치 서 있다.

온 가족과 사랑하는 친구들과 코사무이 섬에서 못다 한 그때의 신혼여행 기분을 다시 만끽해보았으면 좋겠다. 사실 장소가 어디면 어떠랴, 다 함께 모이는 것이 중요한 것을.


두 번째는 주식 공부. 얼마 전 너튜브에서 보았던 투자가 존리의 영상을 보고 주식이라는데 관심이 생겨서 주식을 좀 배워보려 한다. 사실 나는 안정적인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 빠릿빠릿함이 요구되는 그리고 무한한 정보를 파해치고 분석하여 베팅을 거는 데는 다소 젬병이다. 단순하게 이익을 내는 것을 떠나서 그냥 주식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경제가 변화하는 흐름 정도만 읽을 수 있는 안목을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엄마가 주식한다고 하면 머리채를 잡고 뜯어말린다고 했는데 - 뭐, 어쩔 수 없다. 나는 하긴 할 거니까)


마지막은 다른 나라에 1년 살아보기. 아마 가장 가능성이 있는 곳은 한국이지 싶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즈음이면 한번 시도해볼 만한 선택지인 거 같다. 나는 20대가 되어서 처음으로 외국을 가보았고 그때 받은 신선한 충격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세계가 참으로 넓다는 것을 나는 너무 늦게 알았다. 그게 오랜 후회로 남았다. 아이들에게 그런 면에서 좀 더 일찍 다양한 세계를 경험해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고 싶다. 짧은 여행으로서 느낄 수 있는 잠깐의 즐거운 감흥이 아니라 그곳에 살면서 부대끼면서 느끼는 그런 찰진 경험을 갖게 해주고 싶다. 물론 이 일이 현실화되기까지는 훗날 우리가 프랑스로 다시 돌아와서도 지금과 같은 안정된 삶이 보장되야만 가능한 일이긴 하다. 허나 그렇지 못한다 하더라도 언젠간 꼭 해보고 싶다. 분명 잃는 것만큼 얻는 것 또한 많을 테니까.


그 외에도 20대부터 긁적여둔 버킷리스트를 보니 못 다해본 게 많다. 이태리 식도락 여행, 사해 가보기, 자전거 타고 시댁 완주, 번지점프 등.

꿈을 꾼다는 것은 설레는 일이다. 20대에는 그런 설렘에 취해 많은 것들을 생각만 하고 이루진 못했다. 하지만 나는 그 꿈을 성취했을 때 오는 짜릿한 보람을 이젠 갖고 싶다. 인생의 2라운드가 시작되니까.


어서 와, 마흔! 기다리고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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