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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과수원옆미술관 Jan 14. 2022

아빠는 개장수였다

03 아빠는 개장수였다

아마 열 살쯤이었을 거다. 초등학교 3학년인 나는 세 살 어린 유치원생 동생을 데리고, 학교에서 집에 갈 통학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학교에 있는데, 우리를 집에 데려다줄 버스 운전기사 아저씨가 갑자기 나에게 물음을 던졌다.


‘아버지 개장수라매?’


피식, 웃으며 아저씨는 옆의 다른 기사 아저씨와 눈짓을 주고받았다. 그때 나는 아무 말 없이 동생의 손을 꼭 쥐어 잡았다. 아마도 모멸감을 그때 처음 배웠던가 보다. 지금에서야 그 감정에 이름을 붙일 수 있었다.


열 살 무렵에 아빠가 반년 정도 집을 떠나서 고모부 일을 도왔던 적이 있다. 아빠는 내가 한 살 때 직장을 그만두고 여러 직업을 가졌었다. 그 반년 동안 아빠는 개를 키웠는데 우리는 주말마다 아빠가 있는 곳으로 떠나곤 했다.


그 주말에는 즐거운 기억이 많았다. 산속에는 과수원과 수많은 개들이 있었다. 아빠가 일일이 개들한테 주사를 놓는 것도 보고, 장작을 패다가 굼벵이가 튀어나와 화들짝 놀라 도망치다가 깔깔대며 웃기도 했다. 어른용 자전거를 처음 타기도 했다. 나는 발이 닿지도 않는데 굳이 큰 자전거를 타기를 고집했다. 발이 닿지 않아 단을 꼭 딛고 올라서야 했지만 그때만큼은 내가 제일 잘하는 게 생긴 듯해 자랑스레 자전거를 타 보이곤 했다.

그리고 잘생긴 사냥개 한 마리도 있었다. 산속에서 두더지를 잡아 의기양양하게 돌아온 모습에 감탄하며 보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나를 태울 수 있을 만큼 커다란 호구 한 마리도 있었고, 제일 기억에 남는 녀석은 애꾸눈을 한 강아지였다(지금은 참, 얼마나 생각 없이 지은 이름인가 싶지만 우리는 그 강아지를 애꾸라 불렀다).


태어날 때부터 체구가 작고 한쪽 눈이 안 보였던 강아지는 너무 작고 약해서 돌봄이 필요했다. 한번은 자루 속에 들어가 있었는데 그것도 모르고 가마솥에 땔감으로 쓰려고 넣어 홀랑 태워버릴 뻔한 적도 있었다. 우리는 옹기종기 모여서 그 애에게 먹을 것을 주기도 하고 이상한 데로 가려고 하면 도로 제자리로 옮기곤 했다.


아빠는 그렇게 반년을 개장수로 살았다. 주말에만 모일 수 있는 가족은 그만큼 애틋했고, 그 속에서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며 많은 기억을 쌓았다. 나는 시간이 갈수록 모든 개들에게 정이 들었다. 어느 정도였냐면 어린 마음에 급식소에서 버려지는 음식물이 짬밥으로 개들의 밥이 되는 걸 알고는 잔반을 조금씩 더 많이 남길 정도였다.


어른이 된 지금은 그 개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그 음식들이 강아지들에게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모두 알게 되었다. 마냥 추억으로 미화하기엔 그때 몰랐던 무지가 찌르는 듯한 통증처럼 나를 쑤신다.


시골에서 자라오면서 수많은 가축을 보곤 했다. 사슴, 오리, 돼지, 소, 닭 등등. 가축엔 물론 개도 포함되어 있었다. 돌이켜보면 늘 마음이 서글프다. 나는 개들 덕분에 행복했고 모두 사랑했지만 그때 본 강아지들도 그랬을까?


열 살 때의 기억을 되새기면 늘 마음 한편이 아프다. 이 기억을 조심스레 꺼내 든 이유는 이 이야기를 빠뜨리고서는 우리가 늘 싸우는 이유를 설명하기가 곤란했기 때문이다. 솔직히 나는 아빠를 무척 사랑하지만 우리 자매는 강아지를 키우는 견해 차이 때문에 아빠와 종종 싸우고 부딪치곤 했다. 하지만 세 마리의 강아지들을 키우면서 가장 많이 양보한 사람이 아빠라는 걸 알고 있다. 내가 걱정이 돼서 강아지를 데려오고, 이렇게 키우면 안 된다, 사람 음식을 주면 안 된다, 꼬치꼬치 아빠에게 태클만 거는 두 딸에게 화를 내면서도 아빠는 늘 조금씩 져줬다.


시골에서는 개를 어떻게 키워야 하는 걸까? 마당에 묶여서 평생을 보내는 애들이 대부분이다. 그래도 마냥 주인이 좋아서 꼬리를 흔들고 볕 좋은 날에는 늘어지게 잠을 자고, 차가운 눈을 맞으면서도 웅크려서 잘 잔다.

나라고 해서 그보다 더 잘 키운다고 자신할 수는 없다. 사실은 무책임한 보호자다. 이렇게 키우시면 안 됩니다. 하고 반면교사로 삼으면 모를까.


그래도 시골 개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글을 쓴다. 시골 개들이 더 행복해질 길이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 묻고 싶고 나누고 싶어서 이야기하려고 한다.


언젠가부터 인적 드문 시골길에 유기견을 버리는 일이 늘었다.

내가 만난 유기견의 이야기도 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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