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과수원옆미술관 Jan 14. 2022

유기견 감자의 이야기

우리 동네로 넘어오는 인적 드문 고갯길에 갓 태어난 강아지 몇 마리가 버려졌다. 누군가 소방서에 신고해 강아지들을 구출했지만 한 마리만은 도망쳐서 잡지 못했다고 한다. 몇 달 뒤, 그 강아지가 내려와 온 동네 개들이 난리가 났다. 버려진 유기견이 암컷이었던 탓이다.


우리가 유기견을 발견한 것은 가끔 맥스와 꼬물이를 마을 앞으로 데려가 농로에서 산책을 시키던 때였다. 사람에 대한 경계심 때문에 멀리서 우리 뒤를 쫓아오던 하얗고 예쁜 백구는 맥스와 꼬물이의 정신을 홀랑 빼앗아갔다. 도저히 산책을 시킬 수 없었다. 한동안 농로에서의 산책은 피해야지. 라고 생각했을 무렵이었다. 울타리가 없는 우리 집은 예전부터 동네 강아지와 길고양이들의 핫플레이스였는데, 맥스와 꼬물이가 온 뒤로는 강아지와 고양이가 찾아오는 일이 줄었었다. 그런데 잠깐 마당에서 놀려고 맥스와 꼬물이를 풀어놓자 가출을 해버렸다! 하도 찾으러 다녀도 안 오고, 유기견 뒤만 졸졸 쫓아 다니는 맥스와 꼬물이를 보자 그렇게 배신감이 밀려올 수가 없었다. 결국에는 끌고 연행해 오면서 20년하고도 훌쩍 더 살았는데 결국 울면서 데려오고 말았다.


이놈의시키야. 왜 안 오고 그래. 엉엉.

논밭에 피해를 줄까 봐 염려되고, 겁은 왕창 많은데 시커멓고 큰 덩치 때문에 할머니들 놀라실까 봐 무섭고, 그리고 우리 애들이 사고라도 당할까 봐 너무너무 걱정이 되었다. 그 뒤로 온 동네 개들의 암컷 차지하기 파이트가 시작됐다. 꼬물이도 다치고, 나도 울고, 붙잡으러 다니다 울고. 아주 난장판이 따로 없었다.


겨우 집으로 돌아온 맥스와 꼬물이를 목줄하고 산책 시키면 유기견이 우리의 뒤를 졸졸 따라왔다. 몇 날 며칠을 그렇게 따라다니는 애를 보니 안쓰러웠다. 비쩍 곯았는데 얼굴은 왜 이렇게 예쁜지. 사람을 그렇게 무서워하면서 왜 내 뒤는 졸졸 따라오는 건지.


구조하려는 소방관의 손을 피해 산속으로 도망친 유기견은 사람 손은 절대 안 탔다. 멀찍이서 그저 조금씩 조금씩 따라왔다. 그러니 어째. 안쓰러워서 간식이라도 줘야지. 그렇게 산책길에 간식을 놓고 멀리 떠나면 입을 대는 게 보였다. 그러다 우리 집까지 오고 말았다. 나는 사료를 몰래몰래 주고 떠났다.


동생과 나는 유기견에게 절대 이름을 붙이지 말자고 다짐했다. '정 들면 어떡해. 이름은 짓지 말자.' 그래 놓고 어느샌가 우리는 유기견을 ‘감자’라 부르고 있었다. 그러다 아뿔싸. 강아지가 배가 불러오는 게 아닌가. 더 이상 감당할 수 없겠다 싶어서 유기견 보호소에 보내기로 했다. 먹을 것을 조금 나눠준 것밖에 없는데. 그것도 양에 안 찰 만큼 조금이었을 텐데, 감자는 나에게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나는 그런 감자에게 목줄을 채웠다. 빠져나가려고 안간힘을 쓰는데 차마 못 보겠어서 집으로 들어갔다. 아빠와 감자를 데려가실 분이 집으로 왔다. 그런데 하필 느슨했던 목줄이 쏙 빠지면서 감자가 도망가고 말았다.


결국 내가 나섰다. 나를 발견한 감자는 낯선 사람이 두려워 나에게 오고 말았다.

어떡해. 나도 널 보내야 하는데. 어떡해.

감자를 차에 태우고 나서 미안함이 물밀듯 쏟아졌다. 감자가 나중에 잘못되면 어쩌나. 해준 것도 없는데 나를 믿어서 내 품에 왔는데 떠나게 돼서 어쩌나.


유기견을 구조하는 일을 두 번은 하고 싶지 않았다. 떠나보낼 때 마음이 너무 아팠다. 앞으로의 미래를 알 수 없어서. 감자를 데려가시는 분이 하던 얘기가 콕 박혔다. 


'아유. 요새 유기견이 늘어서 골치입니다.'


어디서 그렇게 오는지 모르겠지만, 구멍가게 하나 없는 한적한 시골인 우리 마을에 몰래몰래 유기견을 버리고 가는 사람이 늘었다. 산까지 올라 버리고 가는 사람도 태반이라 한다.


감자의 갈색 눈이 어른거린다. 어릴 때 사람에게 버려져 산속을 헤매다 먹을 것을 구하려 내려오니 사람에게 쫓겼을 감자. 딱 한 번 감자를 만질 수 있었던 건 떠나보낼 때, 낯선 사람을 피해 내게 안겼을 때뿐이었다. 작은 호의에 사람을 믿는 예쁜 아이였는데, 누가 널 버렸을까. 그리고 나도 널 버린 거라고 생각하면 어쩌나.

감자는 얌전히 차에 타고 떠났다. 감자의 눈을 잊을 수 없다. 나는 그 뒤로 유기견을 또 구할 일이 있겠나, 싶었다. 그때는 몰랐다. 앞으로 계속 그런 일이 있으리라고는.

이전 03화 아빠는 개장수였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