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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국희 Feb 15. 2023

아이 키우는 문제는 비효율적으로 접근하자

좋은 일 강화, 나쁜 일 무시: 인지적 경제성을 포기하면 길이 보인다

인간은 나쁜 일에 주목하면서 생존하고 번영했다.

나쁜 일에 주목하는 것은 진화적 본능이다.


나쁜 일에 주목하는 두뇌 시스템은 여러모로 효율적이다.

조금 멋진 말로 '인지적 효율성'이라고 한다.

(심리학자가 멋있어 보이는 이유는 별거 아닌 것을 그럴듯한 용어로 표현하기 때문 아닐까?)


인지적 효율성을 간단히 설명하면, 생각할 일을 최대한 줄이면서 최고의 효율을 내자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자주 일어나는 별 것 아닌 일들에 일일이 주목하는 것은 인지적 효율성 원칙에 어긋난다.


계속 숨이 잘 쉬어지는데, 숨 쉬는 것에 계속 신경을 쓴다? 인지적 효율성에 어긋난다.

그래서 인간은 숨 쉬는 것에 신경쓰지 않는다.

감기에 걸려서 숨이 잘 안 쉬어 질 때가 되어야 숨 쉬는 문제가 그렇게 당연하지 않음을 깨달을 뿐이다.

숨을 잘 쉬는 것이 빈도 높게 일어나고, 숨이 안 쉬어지는 것이 낮은 빈도로 일어난다면,

낮은 빈도로 나타나는 일, 낮은 빈도로 찾아오는 변화에 주목해야 마땅하지 않은가?


잘 걸어다니면서 걸어다는 것에 신경을 쓴다? 인지적 효율성에 어긋난다.

그래서 사람들은 잘 걸어다니는 것에 신경쓰지 않는다.

넘어지고, 다치고, 피나고, 다리가 아파서 잘 안 움직이는 것에 신경쓴다.

다리가 안 아픈게 빈도 높은 일상이고, 다리가 아픈게 특별한 경우라면 특별한 경우에 신경써야 마땅하다.


날씨가 대부분 좋고, 온화하다면, 날씨에 크게 신경 쓸 필요가 없다.

비가 오고, 우박이 내리고, 천둥과 번개가 치고, 폭풍이 불고, 폭설이 내리는 특별한 경우에 주목해야 한다.


관계적 문제도 마찬가지다.

내 주변 사람들이 정상적으로 말하고 행동한다면, 크게 주목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내 주변 사람 중에 이상하게 말하고, 공격적이고 행동하는 사람이 있다면, 주목해야 한다.

소위 말하는 이상한 사람이니 조심해야 한다.

평상시에 아무런 문제를 일으키지 않던 사람이 갑자기 안 하던 짓을 하면, 그런 변화에 주목해야 한다.

뭔가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발생했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이 인지적 효율성에 의해 이루어진다.

인지적 효율성은 인간의 삶을 경제적으로 만들어주고,

항상 모든 것에 신경쓰면서 스트레스 받지 않도록 도와준다.


그러나 이렇게 대체로 바람직한 역할을 하는 인지적 효율성이 자녀를 양육하거나,

아이들을 돌보는 문제에 있어서는 그렇게 바람직하지 않게 작용할 때가 많다.


Photo by krakenimages on Unsplash


인지적 효율성에 의해 아이들이 특이하고, 잘못된 말과 행동을 할 때,

문제가 될 수 있는 말과 행동을 할 때만 주목한다?

글쎄... 일단 아이들이 뭔가 문제를 일으키는 것 자체가 결코 특별한 문제가 아니다.

빈도가 높다. 5-6분에 한 번씩 훈육할 일이 생기는 것이다.

어른이 볼 때, 정상적으로 보이는 말과 행동을 할 때와 문제가 되는 말과 행동을 하는 비율이 비슷하다.

그런데 어른은 인지적 효율성에 적응되어 있고,

인지적 효율성은 문제가 되는 말과 행동에 주목하는 시스템이기에

어른은 5-6분 간격으로 계속 눈에 거슬리는 언행을 보고 듣게 된다.


반면, 5-6분 간격으로 이루어지는 그냥 괜찮은 말과 행동은 무시된다.

사실 그냥 괜찮은 말과 행동도 아이들 입장에서는 굉장히 빈도가 낮고, 특별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어른의 눈에는 그냥 별것 아닌 일로 치부되고,

그 후에 이루어지는 거슬리는 행동에 대해서만 지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아이들 입장에서는 굉장히 불공평할 수 밖에 없다.

5분 동안 잘할 때는 아무런 말도 안하다가, 5분 동안 못할 때만 꼭 지적을 받으니 말이다.

잘하는 시간과 못하는 시간이 똑같은데,

잘하는 것은 인정 못받고, 못하는 것만 지적을 받는다.

어른 입장에서도 피곤하다. 잘하는 것은 눈에 안 들어오고, 못하는 것만 눈에 들어오고,

두 번 중에 한 번만 지적하려고 해도 눈에 거슬리는 것을 지적하지 않기가 참으로 어렵다.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없는 걸까?

심리학자들도 고민했다. 그리고 결국 하나의 결론에 도달했다.

바로 인지적 효율성을 포기하라는 것이다.

자녀 양육의 문제, 아이들을 관리하고, 키우는 문제에 있어서 만큼은 인지적 효율성을 포기하고,

인지적 비효율성을 추구해야 한다.

아이 키우는 문제에 있어서는 경제성 따지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인지적 비효율성을 추구한다는 것은

인지적 효율성을 추구할 때와 완전히 반대로 한다는 것이다.

나쁜 일에 주목하는 것이 인지적 효율성이었다면,

인지적 비효율성에서는 보통 당연하다고 그냥 넘어갔던 좋은 일에 주목한다.

별 것 아닌 일, 그냥 정상적으로 이루어진 일,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일을 주목한다.

그리고 나쁜 일을 무시한다.


아이들이 뛰지 않고, 조심히 걸어다니는가? 그것이 당연하고 바람직한가?

그렇다면, 그걸 칭찬하고, 주목하고, 관심을 표현하는 것이 인지적 비효율성이다.

그리고 본래라면 큰소리로 혼내고 지적했을 법한 뛰는 행동은 무시하라.


아이가 스마트폰 게임을 계속하는가? 무시하라.

그런데, 책을 보는가? 숙제를 하는가? 수학 문제를 푸는가?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이것을 칭찬하고, 관심을 표현하라.

인지적 비효율성의 원칙을 따르는 것이다.

완전 거꾸로 나라다.


아이가 유튜브만 계속 보고 있는가? 무시하라.

그런데 밖에서 운동을 하는가? 친구들과 스포츠를 즐기는가?

체스를 하거나, 오목을 하거나, 바둑을 두는가?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이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말고, 일부러 칭찬하고, 관심을 표현하라.

인지적 경제성 따위 없다고 생각하라.


아이 키우는 문제는 이렇게 비효율적이다.

비경제적이다.

아이 키우는 문제를 경제적으로 접근하려는 것 자체를 포기하라.

그래야 좋은 부모, 좋은 선생님이 될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건강한 아이가 자랄 수 있다.

아이들을 인지적 효율성 안에 가두지 말라.

그건 어른들에게나 통하는 것이다.


습 심리학자들은 이렇게 인지적 효율성을 포기하는 것을

상반 행동 강화(differential reinforcement of incompatible behavior)라고 부른다.

좋은 행동과 나쁜 행동이 동시에 일어날 수 없으니,

나쁜 행동이 일어날 때는 무시하고,

좋은 행동이 일어날 때는 칭찬하고 강화하여

좋은 행동이 일어나는 빈도를 높여가라는 충고다.


아이 키우는 문제는 정말 역설적이다.

어른이 비효율적으로 아이를 대할수록, 아이는 잘 자라고,

어른이 효율 따지면서 아이를 대할수록, 아이는 잘못된 방향으로 간다.


어른들이여. 아이 키우는 문제에 있어서는 비효율적이 되자.

그게 아이들이 건강해지는 길이다.


*참고문헌

Luiselli, J. K., Colozzi, G. A., Helfen, C. S., & Pollow, R. S. (1980). Differential reinforcement of incompatible behavior (DRI) in treating classroom management problems of developmentally disabled children. The Psychological Record30(2), 261-270.


Spira, A. P., Koven, L. P., & Edelstein, B. A. (2004). Using a differential reinforcement of incompatible behavior (DRI) schedule to reduce maladaptive behaviors in a nursing home resident. Clinical Case Studies3(2), 165-170.


Kelly, M. B., & Bushell Jr, D. (1987). Student achievement and differential reinforcement of incompatible behavior: Hand raising. Psychology in the Schools24(3), 273-281.


*표지 그림 출처

Photo by Jonathan Borba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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