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어난 인지 능력이란, 창의적으로 사기를 칠 수 있다는 뜻이다
인간은 원인과 결과를 파악하길 좋아한다.
이는 모든 인간이 과학자처럼 인과관계를 밝히기 위해 연구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뜻이 아니다.
(그렇지 않다는 걸 나와 여러분은 잘 알고 있다.)
그냥 직관적으로 뭔가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식으로 생각하길 좋아한다는 뜻이다.
여름에 아이스크림이 잘 팔린다. 당연하지, 더운 여름이니까. 시원한 아이스크림은 더울 때 먹어야 제맛있지.
겨울에 아이스크림이 잘 팔린다. 당연하지, 추운 겨울이니까. 시원한 아이스크림은 추울 때 먹어야 제맛이지.
여름에 설렁탕이 잘 팔린다. 당연하지, 이열치열이니까.
겨울에 설렁탕이 잘 팔린다. 당연하지, 추우니까.
여름에 물냉면이 잘 팔린다. 당연하지, 더우니까.
겨울에 물냉면이 잘 팔린다. 당연하지, 냉면은 겨울에 먹어야 제맛이지.
이런 것들은 다 말도 안되는 이유다. 뭔가 이유를 이야기한 것 같지만, 사실 아무것도 아야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런 식으로라도 인관관계를 파악한 것처럼 말하길 좋아한다.
어떤 일이 일어난 다음에 '그럴 줄 알았다'고 하는 것도 직관적인 인과관계 찾기에 해당할 때가 많다.
그리고 이 역시도 말이 안 되기 마련이다.
나는 그 사람이 금메달 딸 줄 알았어. 잘하니까.
나는 그 사람이 금메달 못 딸 줄 알았어. 못하니까.
나는 그 사람이 사기 당할 줄 알았어. 바보같으니까.
나는 그 사람이 성공할 줄 알았어. 똑똑하니까.
그 어떤 이유도 정확하지 않다. 그냥 추측이요, 느낌이요, 생각나는대로 그럴하게 꾸민 것에 불과하다.
하지만 우리는 이렇게 생각하고, 말하길 좋아하고,
이렇게 생각하고 말한 것에서 뭔가 정보를 얻었다고 느낀다.
실제로는 아무런 정보를 얻은 것이 없지만, 뭔가 깨달았다고,
뭔가 새로운 것을 알게 되었다고 느끼며 기분이 좋아진다.
이렇게 이유 같지 않은 이유를 생각하거나 말하며
기분이 좋아진다는 것은 착각이 아니다.
이렇게 할 때, 우리 뇌는 보상회로를 작동시키고,
기분을 좋게 만드는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이 분비되는 것이다.
그럼 이렇게 놀라운 인간의 이유 생성 능력이 가장 극도로 발휘되는 때는 언제일까?
모든 상황에서 이유를 만들어낼 수 있는 인간이지만, 특히 더 어떻게 해서든 이유를 만들어내기 위해,
이유를 지어내기 위해 노력하게 되는 때는 언제일까?
바로 자신에게 이익을 주거나 손실을 주는 문제가 걸려있을 때다.
모든 인간은 잘되면 내 탓, 잘못되면 조상 탓을 하기 위해 혈안이 된다.
뭔가 일이 잘돌아가서 자신에게 이득이 올 것 같을 때는
잘된 일의 원인을 하나라도 자신에게 돌려 더 많은 이익을 취하려고 하지만,
뭔가 일이 잘못돌아가서 자신에게 손해가 올 것 같을 때는
어떻게해서는 그 일의 책임에서 벗어나서 손해보지 않으려고 한다.
정치권에서 늘 보는 일 아닌가, 뭔가 잘했다고 칭찬받을 일에 대해서는 서로 자기네가 잘했다고 하고,
뭔가 못했다고 처벌받을 만한 일에 대해서는 서로 발을 빼서, 책임지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상황말이다.
특히 자신의 잘못에 대해 주변 사람들이나, 그 사람 잘못이라고, 그 사람이 원인이라고 공격할 때
우리 인간은 스스로를 방어하고 싶은 본능이 튀어나오면서 잘못의 원인은 따로 있다고 말하고 싶어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가해자인 누군가는 늘 피해자를 비난한다.
피해자가 먼저 잘못을 해서 자신이 그런 잘못을 하게 되었다는 식이다.
내가 누군가를 때린 것은 그 사람 혹은 세상이 나를 화나게 했기 때문이다.
내가 누군가를 죽인 것은 그 사람 혹은 세상이 나를 화나게 했기 때문이다.
내가 마약을 한 것은 누군가 나를 유혹했거나 함정에 빠뜨렸기 때문이다.
내가 도둑질을 한 것은 먹고 살기 힘들고, 그 사람이 자신이 부자임을 자랑했기 때문이다.
내가 성폭행을 한 것은 그 사람이 나를 유혹했기 때문이다.
내가 불을 지른 것은 알 수 없는 힘이 나를 그렇게 하도록 시켰기 때문이다(?).
내가 음주운전을 하고 교통사고를 내서 사람을 죽인 것은 술을 먹었기 때문이다(?).
의료사고와 대리수술은 너무 바빠서 그런 것이다(?).
많은 사람이 모인 곳에서 사람이 죽은 것은 많은 사람이 모였기 때문이다.
자신의 과실에 대한 책임을 상황에 돌리고, 환경에 돌리고,
세상에 돌리면서 자신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려는 이런 전략은 아주 보편적이다.
내가 나쁜 것이 아니라, 세상이 나쁜 것이고, 자신을 화나게 한 누군가가 나쁜 것이고,
나를 그렇게 행동하게 만든 사회가 나쁜 것이다.
이렇게 핑계를 만들고, 이야기를 지어내고, 자신을 합리화시키면서
자신은 좋은 사람으로 남을 수 있고, 정상적인 사람으로 남을 수 있고,
자신은 억울한 누명을 쓴 사람으로 남을 수 있다.
자신이 저지른 죄는 아무것도 아닌데, 세상의 누군가가 더 큰 죄를 가리기 위해
지금 이런 별것 아닌 문제를 큰 문제인 것처럼 부풀리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전형적인 자기 방어 전략이자, 자기 변호 전략이다.
이런 자기 방어와 변호를 통해 개개인은 마음의 평안을 얻고,
자기 자신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를 지킬 수 있다.
똑똑하고, 영리한 사람일수록 이런 경향은 더 강해진다.
긍정적인 자기 이미지와 현재 일어난 부정적 일이 부조화를 이루어 견딜 수 없을 때,
똑똑하고 영리한 사람은 더 그럴듯한 핑계와 합리화로 자신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를 방어한다.
똑똑하고 영리할수록 자신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해소할만한 이유를 잘 찾고,
사람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새로운 해석을 내놓으면서 자신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를 지킨다.
똑똑하고 영리할수록 자신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를 지키기 위해 세상을 왜곡하고, 사회를 왜곡하고,
필요하면 과학적 데이터조차도 자신의 입맛에 딱맞도록 창의적으로 왜곡하는 것을 잘한다.
똑똑하고 영리하다는 것은 인지능력이 훌륭하다는 의미이자,
전문지식을 습득할 정도로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이라는 뜻인데,
이런 측면에서 보면,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일수록 인지능력이 뛰어나고,
이렇게 많은 공부를 통해 인지능력이 발전했을수록
자기 주장을 합리화하는 능력, 정보를 멋대로 해석하는 능력,
데이터를 자신의 견해에 맞춰 창의적으로 왜곡하는 능력이 높아진다고 볼 수 있다.
높은 인지능력은 다른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하는 거짓말을 잘 할 수 있는 능력과 연결되고,
높은 인지능력은 다른 사람들을 속이고, 심지어 자신까지도 속일 수 있는 능력과 연결되며,
높은 인지능력은 아무도 사기인줄 모르도록 하면서 창의적으로 사기를 칠 수 있는 능력과 연결된다.
인지능력이 낮을수록 거짓말을 못하고, 자신과 타인을 속이지 못하며, 사기를 치면 다 걸릴 수 있다는 말이다.
스파이 영화에 등장하는 뛰어난 스파이들을 보라.
고도의 훈련을 받아 거짓말을 진실을 만들고, 뛰어난 연기를 통해 타인을 모두 속여 버린다.
뛰어난 인지능력을 가진 사람은 모두에게 이득이 되는 방식으로 행동하면, 공동체의 구원자가 될 수 있지만,
뛰어난 인지능력을 가진 사람이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남들에게 피해를 주는 방식을 쓰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면, 정말 무서운 괴물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인성이 중요한 것이다.
도덕성이 갖춰진 높은 인지능력은 세상에 기여하는 상상력과 창조력이 될 수 있지만,
도덕성이 결여된 높은 인지능력은 세상을 파괴하는 사기력과 거짓말이 될 수 있다.
뛰어난 인지능력은 양날의 검이다. 한쪽 날로 세상을 구원할 수도 있지만,
다른 쪽 날로 세상을 파괴할 수도 있다.
높은 인지능력이 좋은 쪽으로 쓰이게 되기 위해서는 사회 시스템이 건강해야 한다.
높은 인지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창의적으로 사기를 치지 못하도록 막을 수 있는
건강한 시스템이 만들어져야 하고,
그런 시스템이 제기능을 할 수 있도록 감시하는 기능이 늘 활성화되어 있어야 한다.
특히 정치인들이나, 고위직 공무원들, 돈 많이 버는 기업을 이끌어 가는 사람들이
윤리적으로 행동하도록하는 시스템과 그 시스템을 감시하는 메타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해야 할 것이다.
말로만 불체포특권 포기하지 말고, 실제로 포기하고,
말로만 국민 눈높이에 맞추겠다고 하지 말고,
실제 행동으로 국민 눈높이를 맞춰야 할 것이다.
윗물에서 창의적으로 사기치는 일이 계속 되는데 처벌하지 않는다면,
창의적으로 사기치는 일은 앞으로도 막을 수 없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
*참고문헌
Wason, P. C. (1960). On the failure to eliminate hypotheses in a conceptual task. Quarterly Journal of Experimental Psychology, 12(3), 129-140.
Kahan, D. M., Peters, E., Dawson, E. C., & Slovic, P. (2017). Motivated numeracy and enlightened self-government. Behavioural Public Policy, 1(1), 54-86.
*표지 그림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