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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국희 Feb 21. 2024

똑똑한 사람과 교만한 사람

한 때 똑똑했던 사람과 똑똑함을 계속 유지하는 사람은 이것이 다르다

'똑똑하다'는 것은 무엇일까?

"저 사람은 참 똑똑한 사람이야"라고 표현할 때, 그 사람의 무엇을 가리켜 똑똑하다고 한 걸까?

국어 사전에 보니 이렇게 나와 있다.

1. 또렷하고 분명함  |  2. 사리에 밝고 총명함  |  3. 샘 따위가 정확함


'또렷하고 분명하다'는 것은 자신의 의견이나 주장, 생각을 또렷하고 분명하게 밝힐 줄 안다는 뜻이다.

쉽게 말해 똑똑한 사람은 '말을 잘하는 사람'이다.

실제로 웅얼웅얼 거리거나, 목소리가 작거나, 발음이 부정확한 사람들은 똑똑하다는 말을 듣기 어렵다.

이는 지식이 얼마나 많은지와는 관계가 없다. 다른 사람들이 평가할 때 말을 제대로 못한다면,

지식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지식은 많을지 몰라도 똑똑한 사람은 아니다.

한국에서 굉장히 똑똑했던 사람이 외국에 나가면, 똑똑하지 않아 보일 수 있는데,

이는 그 사람의 외국어가 서툴러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생각해보시라. 외국에 나갔다가 지식이 갑자기 증발되었겠는가? 아니다.

단지 그 지식을 모국어로 표현하는 것에는 능숙했기에 뭇 사람들로부터 똑똑하다는 평가를 받았는데,

외국에 가서 외국어로 지식을 표현하는 것에는 능숙하지 못하기에

그 나라 사람들로부터는 똑똑하다는 평가를 받을 수 없는 것 뿐이다.

물론 시간이 지나 외국어에 익숙해지고 능통해져서 자신의 지식을 외국어로도 잘 표현할 수 있게 된다면,

그 사람은 다시 똑똑하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지식이 풍부하지 않은 사람도 말을 잘함으로써 똑똑해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멋지게 차려 입은 사람은 말을 잘하고, 설명을 잘한다면, 우리는 그 사람을 똑똑하다고 평가한다.

심지어 외모까지 매력적인 사람이 말까지 잘하면, 사람들은 그 사람에게 금새 호감을 가지게 되고,

심지어 그 사람을 금새 믿어버린다. 말 잘함이 똑똑함이 되고, 똑똑함이 신뢰로 이어지는 순간이다.

예상 했겠지만, 이를 나쁜 쪽으로 응용하면, 희대의 사기꾼이 될 수 있다.

사기꾼 치고, 말 못하는 사람을 적어도 나는 보지 못했다.

사기꾼들은 다들 옷을 잘 입고, 매력적으로 자신을 포장한다.

이렇게 보면, 사기를 치는 것과 사기를 당하는 것은 굉장히 심리학적인 현상이다.

말끔하게 차려 입고 말 잘하는 사람이 여러분에게 다가와 친절하게 군다면, 좀 경계할 필요가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정신을 똑바로 차릴 수 있다면 말이다. 말처럼 쉽지는 않을 것이다.

알고도 당하는 것이 인간의 심리라는 현상이니 말이다.


'사리에 밝고 총명하다'는 것으로 넘어가 보자.

사리에 밝다는 것은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꿰고 있다는 뜻이다. 통찰력이 있고, 적응력이 뛰어나다.

임기응변에 강하고, 감정 조절이 잘 된다. 어떤 현상의 원인을 금방 파악하여 대비책을 마련한다.

총명하다는 것은 기억력이 좋다는 의미다. 총명한 사람은 보거나 들은 것을 오래 기억하는 힘이 있다.

누군가 나와 한번 만났을 뿐인데, 나와 나누었던 대화를 기억하고, 나에 대한 정보를 기억한다고 생각해보라.

우리는 그 사람을 총명하다고 느낀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할 것이다.

'기억력이 진짜 좋으시네요. 똑똑하세요!'

영업 사원으로 성공하려면 사리에 밝고, 총명해야 한다. 사업가로 성공하려면 사리에 밝고, 총명해야 한다.

사실 모든 분야에서 마찬가지일 것이다. 어떤 분야든 사리에 밝고, 총명해야 성공할 수 있다.

남녀가 만나 연애를 하며, 사랑을 키워가고 결혼까지 가려고 해도 사리에 밝고, 총명해야 한다.

내 애인이 나에 대해 아무것도 기억 못하고, 나와 한 약속도 맨날 잊어버리고,

사리에 밝지 않아 맨날 손해보고, 나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한다면, 그런 관계는 유지되기 힘들다.

연애도 똑똑해야 할 수 있는 것이다.

사리에 밝고, 총명한 사람들은 늘 평온해 보인데, 어떤 상황에서도 냉정을 잃지 않기에 든든함을 준다.

그래서 사람들은 사리에 밝고, 총명한 사람을 리더로 추앙하기도 한다.

예로부터 집단의 리더로 세워지는 사람을 보면, 늘 똑똑한 사람이었다.

즉 사리에 밝고 총명한 것은 리더의 조건임에 틀림없다.


마지막으로 '샘 따위가 정확하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주고 받는 것이 정확하다는 뜻이다. 절대 손해보는 일은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손익계산을 정확히 해서 이익은 되는 쪽으로 움직인다는 의미다.

똑똑한 사람들은 불필요한 말이나 행동, 무의미한 말이나 행동이 거의 없다.

군대 용어로 헛짓거리가 없고, 헛발질이 없는 것이 똑똑한 사람들이다.

똑똑한 사람들의 삶을 보면, 군더더기가 없다. 깔끔하게 삶이 정리정돈되어 있고, 주변이 정리정돈되어 있다.

정리정돈 잘하는 사람치고, 똑똑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

반대로 정리정돈을 제대로 못하는 사람은 똑똑하지 못한 경향이 있다.

늘 손해보고, 인생에 군더더기가 많고, 불필요한 동작이 많고, 안써도 되는 돈을 쓰고,

늘 시간에 쫓기고, 비어가는 지갑에 한 숨을 짓는다.


샘이 정확한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삶을 건강하게 만들기 위해 자신의 삶을 디자인해나간다.

그런데 샘이 정확하지 않은 사람들은 다소 게으르다. 그냥 되는대로 산다.

내 삶에 대한 샘을 정확하게 하기 위해서는 자기 삶에 무엇이 있는지, 없는지를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

그래서 정리정돈이 중요한 것이다. 자신의 삶과 주변 공간에 대한 정리정돈을 제대로 하지 않는데,

무엇이 있는지, 무엇이 없는지 어떻게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가.

샘이 정확하기 위해서는 부지런해야 하고, 정리정돈하기 위해서는 부지런해야 한다.

예나 지금이나 성공하기 위해서는 부지런해야지, 게을러서는 안 된다.

성경에도 이렇게 말하지 않는가.

'게으른 자는 마음으로 원하여도 얻지 못하나 부지런한 자의 마음은 풍족함을 얻느니라'(잠언 13장 4절)

'게으른 자의 욕망이 자기를 죽이나니 이는 자기의 손으로 일하기를 싫어함이니라'(잠언 21장 25절)

이런 능력은 수학 시험을 잘보는 것과 거의 관련이 없다.

수학 시험을 아무리 잘보더라도 실제 자신의 삶에서는 계산을 잘못하여 손해보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이런 것을 헛똑똑이라고 한다. 가짜라는 뜻이다. 세상에는 시험만 잘보는 헛똑똑이들이 너무 많다.


이처럼 말 잘하고, 기억력 좋으며, 부지한 사람들이 똑똑하다는 평가를 듣고,

돈도 잘 벌며, 세상을 움직여 가는 중추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은 의심할 바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렇게 똑똑한 사람들일지라도 경계해야 할 것이 딱 하나 있다. 바로 '교만'이다.

똑똑한 사람들은 자신의 똑똑함으로 인해 교만해질 수 있고, 오만해질 수 있고, 거만해질 수 있다.

자신이 말을 잘하고, 설명을 잘하기에 늘 자기 말이 옳다고 착각할 수 있다.

말을 잘하고, 설명을 잘한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것을 말이 되는 것처럼 잘 포장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논리적 비약을 어떻게 해서는 매웨서 논리적인 것처럼 들리게 만들 수 있다는 뜻이며,

어떤 식으로든 자신의 말과 행동을 합리화시켜서 자신은 잘못한 것이 없는 것처럼 만들 수 있다는 뜻이다.

똑똑하기에 이런 걸 할 수 있지만, 이런 건 경계해야 한다.

처음 몇번은 사람들이 넘어가줄 수도 있지만, 매사 이런 식이라면,

사람들은 그 사람에 대한 평가를 똑똑한 사람이 아닌, 교만한 사람으로 바꿀 것이다.


똑똑하다는 평가를 받는 것과 그 평가를 유지하는 것은 다르다.

똑똑함이 교만과 오만과 거만이 되는 순간, 똑똑함이 자기 합리화의 도구가 되는 순간,

사람들은 그 사람에 대한 평가를 교만한 사람으로 바꾸게 될 것이다.

똑똑한 사람일수록 확증 편향이 더 강하게 나타난다는 과학적 연구 결과가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연구 결과는 분명히 보여준다.

똑똑한 사람일수록 자신의 똑똑함을 자신의 고집과 아집과 잘못을 합리화시키고,

자신의 잘못된 신념을 공고히 하는 것에 자신의 똑똑함을 사용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똑똑한 사람일수록 고집불통이 되어 자신의 생각에 맞는 것만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을

누구보다 성실하게 할 수 있다.

똑똑한 사람들은 이런 걸 경계해야 한다.

계속 똑똑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고 싶다면, 겸손해야 한다.

계속 자아성찰을 해야 하고, 반성을 해야 똑똑하다는 평가를 유지할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한 때 똑똑하다고 평가받던 그 사람은

어느새 교만한 사람, 오만한 사람, 거만한 사람, 고집불통인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


똑똑함은 겸손과 함께 할 때만 의미가 있다.


*참고문헌

Kahan, D. M., Peters, E., Dawson, E. C., & Slovic, P. (2017). Motivated numeracy and enlightened self-government. Behavioural Public Policy, 1(1), 54-86.


*표지 그림 출처

사진: UnsplashViktor Forga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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