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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Mind Craft 1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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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국희 May 29. 2020

벼락치기하는 삶을 바꿔야 인생이 바뀐다

기한에 쫓기면 한꺼번에 하게 되고, 한꺼번에 하면 과업의 질은 떨어진다!

공부하다 보면 이런 고민이 생길 때가 있다. 오늘 한 6시간을 공부할 수 있을 것 같은데, 6시간 동안 한 우물만 계속 팔 것인가? 아니면, 2~3시간 간격으로 공부하는 주제(과목)를 좀 바꿀 것인가?


셰익스피어 흉내를 좀 내보자면,


"바꿀 것인가? 바꾸지 않을 것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To change or not to change, that is the question)"


이렇게 표현했더니 마치 이 선택이 우리의 자유의지의 문제인 것 같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것은 자유의지와 관련이 없을 수 있다. 보통의 경우 2~3시간 간격으로 할 일을 바꾸고, 내가 할 공부의 주제를 바꿀 수 있으려면, 굉장한 시간적인 여유가 있어야 한다. 다른 말로, 내가 하고 싶은 일 혹 해야 하는 일이 내 인생에 정말 중요하지만, 당장 내일까지 성과(performance)를 내야 하는 그런 일이 아니어야 한다.


예를 들어보겠다. 내가 공부를 하나도 하지 않았는데, 당장 내일 어떤 과목의 시험을 봐야 한다. 벼락치기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뜻이다. 벼락치기를 해야 할 때, 2~3시간 간격으로 다른 과목도 공부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이런 상황에서는 그냥 주구장창 당장 내일 시험봐야 하는 그 과목을 공부해야 한다. 직장인들의 업무도 마찬가지다. 미루고 미루다가 마감기한에 닥쳐서 일을 시작할 경우, 그 일을 마무리하기 까지는 다른 일을 손에 잡을 수 없다. 이처럼 마감기한에 쫓기면서 공부나 일을 하게 되는 사람은 본인의 자유의지가 아니라, 이러한 상황 때문에 강제로 한 우물을 파는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다. 즉 좋은 말로 한 우물 파기이지, 사실은 그냥 벼락치기다.


공부나 일에 대한 벼락치기는 부작용을 피할 수 없다[1, 2, 3, 4, 5]. 그리고 핵심적인 부작용은 과업의 질 저하다. 우리 뇌는 한 가지 과업에 대한 집중력의 한계가 있다. 즉 한 가지 과업을 하면서 2~3시간 정도는 버틸 수 있으나, 그 이상은 무리다. 물론 이 말이 우리 뇌에서 집중력을 끌어오는 저수지가 하나 밖에 없다는 뜻은 아니다. 우리 뇌에는 좌뇌와 우뇌에 각각 하나 씩, 최소 두 개의 집중력 원천이 있다. 문제는 한 가지 과업을 수행하면서 두 집중력 원천에서 집중력을 골고루 끌어다 쓰는 것이 아니라, 둘 중 하나의 원천을 완전히 소모할 때까지 다른 원천을 쓰지 않는다는 데 있다.


쉽게 말해, 한 가지 과업을 3시간 이상 수행하면서 한 집중력 원천을 모두 소모한 후, 또 아까 했던 그 동일한 과업을 계속 수행하게 되면, 우리는 집중력의 급격한 저하를 경험하고, 더 심하게는 집중력 고갈과 극도의 피로를 경험하게 된다. 다른 집중력 원천이 있지만, 우리 뇌는 그것을 끌어다 쓰지 않는다. 지금까지 하던 것과 전혀 다른 성격의 과업을 위해 남겨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일을 벼락치기 하면서 3시간 이상 하게 되면, 같은 일에 집중력을 유지하기가 힘들어 진다.


집중력을 유지하기 힘들어진 다음에는 아주 뻔한 스토리가 펼쳐진다. 과업의 질 하락말이다. 공부와 업무의 정확도가 떨어지고, 처음 3시간만 만큼 팍팍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집중력을 발휘했다면 1시간 만에 끝냈을 수도 있는 공부나 과업이 자꾸 늘어지고, 괜히 달달한 간식만 먹게 되고, 커피만 계속 먹게 되고, 나도 모르게 스마트폰으로 뭔가를 보는 시간이 증가하고, 아무 생각없이 인터넷 서핑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며, '멍~'해지는 경험의 빈도가 증가한다.


이런 집중력 사용 방식이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가 어떻게 과업을 수행하느냐에 따라 이는 매우 효율적이 될 수 있는 시스템이다. 왜냐하면 한 가지 과업을 2~3시간 정도 수행하면서 하나의 집중력 원천을 모두 끌어다 쓴 후, 그 다음에 앞에 했던 것과 완전히 다른 새로운 과업을 수행하면, 그 동안 아껴두었던 새로운 집중력 원천을 끌어다 쓸 수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국어 공부를 3시간 한 후, 국어와 완전히 다른 수학을 3시간 공부하면, 국어에 소모했던 집중력 원천은 재충전에 들어가고, 동시에 세이브해 두었던 새로운 집중력 원천에서 수학과 관련된 집중력을 소모한다. 그럼 이제 더 이상 공부할 수 없게 된 걸까? 아니다! 수학을 공부하는 동안 아까 국어 공부에 다 소모했던 원천이 다시 100% 충전된다! 한 쪽이 소모되는 다른 쪽은 충전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게 가능해진다! 수학 공부를 3시간 한 후에 수학과 완전히 성격이 다른 영어를 공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놀랍지 않은가? 우리 뇌는 이렇게 3시간 정도 간격을 두고 앞에 했던 일과 전혀 다른 일을 하거나, 전혀 다른 공부를 하는 것에 문제가 없다. 즉 하기에 따라 하루 종일 집중력을 유지하면서 일하고, 공부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간격을 두고 과업을 바꾸는 게 좋다는 걸 아는 것과 실제로 이런 삶을 사는 것은 전혀 다른 얘기다. 필자가 이야기 한 것처럼 3시간 정도 간격을 두고 수행하는 과업을 바꾸려면 나의 상황이 굉장히 여유 있어야 하는데, 여유 있는 상황을 만든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유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군더더기를 다 치우고 삶이 굉장히 단순해야 하는데, 이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여유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어떤 일이 필요한지 예측하고 그 일을 미리미리 해두어야 하는데, 업무 특성 자체가 예측 불가능한 것들도 있다. 여유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내가 할 일, 나에게 중요한 일 등 나의 정체성에 맞는 일 혹은 공부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하는데, 이런 확신을 가지는 것도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한 번 해보자. 내 삶을 좀 심플하게 만들어 보자. 불필요한 동작을 제거하고, 불필요한 일을 제거하고, 딱 필요한 일들만 남기자. 내 삶을 그래도 좀 예측해보자. 모든 걸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은 거짓말이지만, 아무것도 예측할 수 없다는 것도 핑계일 것이다. 분명 어떤 공부던, 일이던 예측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적어도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가 학생이라면, 학사일정이야 뻔하지 않은가! 중간고사, 기말고사 언제 볼지 뻔하지 않은가 말이다. 내 정체성에 부합하는 일인지 공부인지 따져보는 것은 앞에 제안한 것들을 하면서 삶이 좀 여유 있어 지면, 생각할 시간이 많아져서 지연스럽게 하게 될 것이고, 정체성을 찾게 될 것이니 걱정하지 말자.


당신의 삶을 벼락치기하는 삶으로 계속 내버려 둘 것인가?!

아니면 간격을 두고 새로운 일과 공부를 하는 여유있는 삶으로 바꿀 것인가?!


바꿀 것인가? 바꾸지 않을 것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To change or not to change, that is the question)


[1] Bloom, K. C., & Shuell, T. J. (1981). Effects of massed and distributed practice on the learning and retention of second-language vocabulary. The Journal of Educational Research, 74(4), 245-248.


[2] Bjork, R. A., Dunlosky, J., & Kornell, N. (2013). Self-regulated learning: Beliefs, techniques, and illusions. Annual Review of Psychology, 64, 417-444.


[3] Bjork, R. A., & Allen, T. W. (1970). The spacing effect: Consolidation or differential encoding? Journal of Verbal Learning and Verbal Behavior, 9(5), 567-572.


[4] Ebbinghaus H (1880) Urmanuskript "Ueber das Gedächtniß". Passau: Passavia Universitätsverlag.


[5] Ebbinghaus, H. (1885). Über das gedächtnis: Untersuchungen zur experimentellen psychologie. Berlin, Germany: Duncker & Humb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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