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년 체제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지난 4월 11일, 국회의사당 정문 앞에서 정치하는엄마들이 진행한 '성평등복지국가 개헌 촉구 기자회견'이 있었다. 이 자리에는 정치하는엄마들 회원들 모두 '82년생 김지영' 세대 중 한 사람으로서 참여했다. 나는 81년생 이고은으로서 발언했다. 내 짧은 인생 속에 이 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문제들이 오롯이 담겨 있었다. 전문을 공유한다.
저는 81년생 이고은입니다. 더불어 15년생 딸을 둔 엄마이기도 합니다. 88년에 초등학교에 입학했고 2005년에 대학을 졸업했습니다. 학창시절 저는 어른들로부터 이런 말을 듣고 자랐습니다. “너희가 어른이 되면 남녀 구분 없이 공정하게 경쟁하는 사회가 될 것”이라고. “열심히 노력하면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될 수 있는 세상이 올 것”이라고. 그래서 전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마음껏 꿈꾸었습니다.
2005년에 꿈꾸던 직장에 들어갔고 정확히 10년 후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2018년 엄마가 된 지금의 제게 어린 시절 어른들의 말은 신기루처럼 사라졌습니다. 누구도 제게 퇴사를 강요하지는 않았지만, 저는 스스로 사표를 쓰고 회사를 나왔습니다. 임신이나 출산, 육아를 이유로 사람을 자르는 회사도 있는 마당에, 누군가에게 제 처지는 배부른 소리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독박육아를 감당하며 풀타임으로 일하다 보면, 회사일도 육아도 제대로 할 수 없어 아등바등하는 미래가 뻔히 눈에 보였습니다. 회사에서는 이류 인력, 집에서는 비정한 엄마가 되는 현실을 못 견딜 것 같아, 회사를 등지고 집으로, 아이들에게로 향했습니다. 저는 이런 저의 퇴사가 결코 자발적인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학창시절 내내 꿈꾸던 직업과 직장을 제 스스로 관두는 마음은 상상 이상으로 쓰리고 괴로웠습니다. 공부하고 일만 하며 살던 81년생 이고은이 갑작스럽게 집과 아이들만 바라보며 사는 것은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일과 생활의 균형을 반강제적으로 잃어버리고 타인을 돌보고 뒷바라지하는 존재로만 남게 됐습니다. 아이들의 엄마가 된 것은 감사하고 행복한 일이지만, 제게 “엄마가 된 행복”만을 강요하는 사회의 시선은 보이지 않는 폭력이었습니다. 아름다운 모성이라는 신화 앞에, 2018년의 오늘날에도 수많은 여성은 사회적 자아를 잃더라도 오로지 가정을 위한 천사가 되기를 기대하는 사회 속에서 이 폭력을 감내하고 있습니다.
저만 힘든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가장이라는 무거운 짐을 진 남편을 보면, 결혼 전이나 아이가 없던 신혼 때보다 힘겨워 보입니다. 각자도생의 시대에 아이들을 잘 키워야 한다는 부담은 엄마들뿐만 아니라 아빠에게도 지워집니다. 아이들의 경쟁력이 부모의 경제력을 기반으로 하는 더 많은 사교육, 더 많은 소비와 경험으로 대체되는 오늘날, 남성의 짐은 과거에 비해 더욱 크고 무거워졌습니다. 한국 여성의 평균 임금은 남성의 63.8%에 불과합니다. 이런 현실 속에서, 돌봄을 담당할 대체자가 없는 경우 직장을 관두고 전업으로 아이를 돌보는 것은 거의 여성의 몫이 됩니다. 남성은 모든 경제적 짐을 홀로 감내하는 고통을 끌어안습니다.
이런 구조를 만든 것은 무엇입니까? 87년 체제는 이미 30년 전의 서사입니다. 정치의 민주화는 이루었을지언정, 삶의 민주화는 이루지 못한 구 체제입니다. 인간 개인의 삶 면면을 돌보지 못하는 87년 체제의 한계는 여실합니다. 소득은 양극화되었고, 비정규직은 넘쳐나고, 인간의 삶은 흔들립니다. 인간을 소외시키는 구조 속에서 약자는 도태되고, 착취 받고, 고통에 내몰립니다. 여성의 지위는 30년 전에 비해 결코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젊은 남성들은 지금이 여성 상위시대라고 조소하지만, 저는 그런 목소리가 이 약육강식의 시대에 고통 받는 동시대인들의 처절하고 슬픈 외침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모두가 힘들고 괴로운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87년 대통령 직선제 개헌 이후 30년 만에 헌법을 개정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께서 내놓은 개헌안은 정작 국민의 삶 면면을 변화시킬 단초를 놓치고 있습니다. 국회헌법개정특별위원회 자문위원회의 안은 성평등에 대한 내용을 구체적으로 강조하고 있지만, 대통령안은 여전히 여성을 보호의 대상으로 규정하는 데 그치고 있습니다. 멀쩡한 성인을 보호해야 한다는 말은 그 사람을 동일한 법적, 인격적 주체로 보지 않고 언제든 이류 국민이 될 수 있다는 선언으로 들립니다. 제 말은 결코 삐딱한 시선이 아닙니다. 수 십 년간 이뤄져온 여성보호 정책은 결과적으로 여성혐오의 화살이 되어 여성의 삶을 겨누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15년생 딸이 저와 같은 삶을 살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더불어, 13년생 제 아들이 제 남편과 같은 삶을 살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제 딸이 ‘미투’를 외치거나 제 아들이 ‘여성혐오’를 외치길 원하지 않습니다. 소설 82년생 김지영은 목소리를 잃어버렸습니다. 세상과의 대화를 단절하는 것이 소설 속 82년생 김지영의 저항이었지만, 현실의 82년생 김지영들은 거기서 그치지 않을 것입니다. 엄마가 되어 고통스럽다고 말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엄마가 되어 당당하고 자랑스럽다 말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섰습니다. 정치권은 수많은 82년생 김지영들의 목소리에 화답해야 합니다. 불충분한 개헌안도 모자라, 개헌을 저지하려는 정치인들의 세력 놀음에 우리 삶을 맡길 수는 없습니다. 82년생 김지영들은 심판할 것입니다. 기본권 충분히 보장한 ‘성평등 헌법’으로 국민의 삶을 보장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