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1894년 잘츠부르크. 시외 근교 호텔.
허름한 석조건물 외관에 유리창들이 반짝였다.
손님들이 이곳을 찾는 이유는 역사와 전통 때문이었다.
300년이 넘는 전통. 일하는 직원들까지도 고개를 꼿꼿하게 들게 했다.
그만큼 자존심과 신뢰를 걸었다.
로비는 낡았지만, 넓고 늘 깨끗했다.
나는 여기서 일하는 신참 데스크 직원이었다. 들어온 지 3일 차. 명부 작성도 어릴 적 처음 접한 뉴턴의 방정식을 배우는 것 같았다. 그랜드피아노만 한 지배인이, 로비에서 날 항상 지켜보기 때문이었다. 그는 항상 검정 턱시도슈트를 챙겨 입었다. 튀어나온 배는 단추를 튕겨낼 것 같았다. 그래서 직원들은 지배인을 돼지펭귄이라고 불렀다. 어제는 열쇠보관 고리판에 호수를 잘못 걸었다. 지배인의 종 같은 목젖을 봤다. 하얀 장갑에 감춰둔 손을 빼, 제3법칙에 따라 되갚아주고 싶었다. 그런 상상은 나만 하는 게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셔츠칼라 사이에 숨겨져 있는 목을 180도 비틀어, 엉덩이까지 목젖을 당겨버리는 일. 완벽하게 계산된 처단, 로비에 쓰러진 뚱뚱한 펭귄의 배를 밟고, 젠틀한 인사를 날리는 일.
기괴한 생각이 들지 않도록 해주는 직원도 존재했다. 데스크의 선배, 그는 늘 평온한 냄새를 풍겼다. 마치, 한 번도 매를 맞아본 적 없는 것 같았다. 제1법칙에 따라 살아가는 동상 같은 사람이었다. 아침 조회를 끝나고 들었는데, 펭귄이 남극으로 휴가를 간다고 했다. 물론, 진짜 남극이겠냐만. 직원들의 발목에 걸린 눈알 모양의 족쇄가 사라졌다. 펭귄처럼 대소변도 아무 때나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선배는 발이 그대로 있었고, 화장실도 안 갔다.
"선배님, 기쁘지 않으세요?" 나는 데스크에서 처음으로 말을 걸어봤다.
"글쎄, 모든 건 제자리로 돌아오니까" 선배는 혼자 말하듯이 조용히 대답했다. 그리고는 각자 다른 곳을 보며 서 있었다.
근무 4일 차. 남극 같던 로비에, 빙하가 녹고 있었다. 다들 물을 만난 물개처럼 헤엄쳤다. 어제 직원들과는 180도 다른 태도였다. 전환 속도는 마치 제2법칙 같아 보였다. 그 중심에는 자유라는 알이 존재했다. 그 원초적인 알이, 펭귄의 둥지에서 부화하지 못하고 있었다. 어쨌든 며칠 겪은 바에 의하면 이렇게 정의 내릴 수 있다. 그들은 인내가 대단하거나 미쳐 있거나. 둘 중 하나였다.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던, 목표가 있던 위대한 수학자들은 둘 다였다. 나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호텔 정문은 언제나 활짝 열려 있었다. 아무도 나가지 않았다. 나는 데스크에 서 있다.
그날이 떠올랐다. 오스트리아-헝가리 빈 대학교에서 수학을 배웠었다. 숫자의 아름다움에 반해서 그녀와 결혼하기로 다짐했다. 공부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녀와 매일 산책하며 사색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난제인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에 대한 황금 지도가 머리에 펼쳐졌고 나는 학업을 뒤로했다. 방에서 5년 동안 아무도 찾지 못한 엘도라도를 찾아 은거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 길을 지도 위에 정리해 냈다. 아주 오랜만에 집 앞 잔디에 누워 하늘을 바라봤다. 세상을 바꿨다고 생각했다. 공기는 선선하고, 꽃내음이 불어왔다. 먹구름이 다가오는지는 모른 채. 교수님은 길을 잃은 것 같다고 했고, 나는 목을 졸랐다. 경비에게 쫓겨난 후, 다시는 빈 대학에 갈 수 없게 되었다. 이혼 후, 빈둥대는 삶을 살았다. 우연히 술집에서 만난 사촌 동생의 소개로 일하게 됐다. 세상이 계산한 일일까? 사촌은 빈으로 수학을 공부하러 떠났다.
데스크에 서서, 이런 상상들을 즐긴다. 남자와 여자 그리고 관계, 남자와 남자 그리고 거래, 여자와 여자 그리고 수다같이, 피타고라스의 정리처럼 맞아떨어지는 일. 수학의 시각으로 호텔을 보며 시간을 때웠다. 그러다 한 가지 흥미로운 발견을 했다. 내가 관찰해 본 바로는, 열쇠 중 유독 1303호만이 닳은 자국 없이 빛이 났다. 노란 금박이 선명했다. 머리가 회전하기 시작했다. 장기 수선, 내부 결함, 천장 누수 그리고 살인 사건. 펭귄이 없는 걸 틈타, 당장이라도 올라가 보고 싶었다. 그런데 미동도 안 하는 선배가 걸렸다. 나는 상상만 할 뿐이었다.
"선배님, 1303호는 왜 키가 그대로인가요?" 나는 키를 빼지 않고, 만지작 거리며 말했다.
"5년 전 인가, 10년 치 방값을 미리 낸 손님이 있어" 선배는 내 손목을 살짝 들었다.
"그게 누구죠? 언제 오나요?" 4일 만에 처음 눈에 힘이 들어갔다. 오랜 시간 방을 빌리는 건,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얼굴만 알아, 일 년에 한 번 오시려나, 특정한 날이 아니라 모르겠네." 선배는 로비를 응시하며 대답했다.
"선배는 얼마나 일하셨어요?" 나는 머릿속에 깃털펜을 올리며 물었다.
"한 5년 즈음 됐지, 그건 왜 물어?" 앞만 보던 선배는 고개를 돌렸다. 깃털펜은 빈에서 잘츠부르크로 날아오고 있었다. 5년이라는 기회와 함께.
근무 5일 차. 아침부터 저녁을 관찰했다. 선배는 언제쯤 밥을 먹고, 화장실에 가는지 모르겠다. 늘 내 시야에 있다. 빈틈을 찾지 못하면, 나는 5년 전의 난제처럼 길을 찾지 못할 것 같았다. 마치 작은 피라미드 앞, 거대 스핑크스 같았다. 선배의 입은 떠 놓은 물을 마실 때만 열렸다. 화학 공식만 알면, 잠을 재우는 약이라도 타고 싶었다. 유리컵 가득 호기심을 따랐다. 표면장력 같은 생각은 흔들리고 있었다. 과연 저기는 어떤 곳일까. 점심시간에 청소부를 만났다. 구역을 효율적으로 청소하는 방법을 계산해 줬다. 어느 정도의 힌트를 얻고 싶었다. 하지만 그곳에는 들어갈 수 없었다. 그들도 들어가지 못한다고 했다. 하지만 한 가지, 그 문 앞을 지나가면, 벽을 두드리는 소리가 가끔 들리는 것 같다고 했다. 마음은 벌써 1303호 문고리를 잡았다. 벌써 손잡이를 돌렸다.
부 지배인이 피아노를 마구잡이로 연주했다. 직원들은 치아를 물며 뒤로 고개를 뺐다.
"너 들어온 지 며칠 됐지?" 선배가 처음 말을 걸었다.
"5일 차 되었어요" 대답을 하면서, 선배의 움직임의 미동이 있는지 살폈다.
"흠, 원래 13일 차가 넘어야 알려주는 건데, 지배인님이 없으니 알려줄게" 선배는 손으로 턱을 비비면서 말했다. 듣자 하니, 내가 13일 차가 되는 날이 펭귄이 돌아오는 날이고, 신입 신고식을 행하는 날이라고 했다. 그걸 왜 미리 알려주냐 묻자, 선배는 꼴불견인 전통은 사라져야 한다고 했다.
"신고식이 뭔가요 선배?" 나는 상체가 붙을 정도로 다가가며 물었다. 그러나 선배는, 입을 다물었다. 다시 정문을 응시했다. 나는 손을 떨며, 꽉 접었다.
근무 12일 차. 다시 로비가 얼어붙는 듯, 곳곳에 서리가 보였다. 정문이 열릴 때마다 들이치는 바람에, 촛불들이 움츠려 들었다. 요란하게 북 치는 소리가 정문에서 들렸다. 찌르는 빛에 눈이 감겼다. 깜빡 꺼리는 잔상들이 로비를 번지게 했다. 정문 유리창 너머, 소문으로만 듣던 자동차가 한 대 서있었다. 생각보다 크고 광이 났다.
"오셨다. 맞이할 준비해라" 선배는 정문 쪽으로 걸어 나가며 말했다.
나는 1303호 키의 반짝임을 슬쩍 보고 선배의 뒤를 따라 걸었다. 호텔 대 부분의 직원들이 로비에 모였다. 마차보다 작은 공간에서 트렁크가 쏟아지듯 나왔다. 직원들은 하나씩 짐을 들고, 로비 안 쪽으로 사라졌다. 자동차는 북소리를 내며, 정문 앞 오솔길을 따라 사라졌다. 그 순간의 마음과, 감정의 기울기, 지금까지 쌓인 날들의 합. 자동차의 멀어지는 속도를 알게 했다. 허망의 미적분을 했다. 눈을 감았다.
선배는 뒷짐을 지고 말없이 돌아갔다. 나는 문 앞에 서있었다. 그 길의 끝을 계속 바라보고 있었다. 호화 자동차를 타는데 짐만 내리고 사라졌다. 직원들이 짐을 들고 객실로 옮기지 않았다. 데스크 뒤편, 간이 창고에 넣어두고 있었다. 내 계산과 짐작이 틀렸다. 아니, 상식적으로 계산밖에 없는 일이었다. 펭귄의 짐일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것 빼고는 답이 없었기 때문이다. 내일 남극탐험이 끝나는 날이기도 했다. 하지만, 5분도 안 되는 시간이 지나자 관심이 사라졌다. 어차피 내가 이곳에 오게 된 숙명. 제출 기한이 1일 남은 1303호의 비밀을 스스로 풀어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펭귄 녀석이 오기 전에.
저녁이 오자, 하늘이 밝게 번쩍였다. 데스크에서 바라본 오솔길 도로가, 끝까지 보였다가 사라졌다. 마차의 옆모습은 작은 폭포 같았다. 하늘에서 철판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말들은 앞발을 들며 이빨을 보였다. 직원들이 달려 나갔다. 우산을 펴고 문을 열었다. 기다란 지팡이가 튀어나왔다. 반짝이는 구두가 땅에 내렸다. 구겨짐이 하나 없는 정장이 내렸다. 모두 고개를 숙였다가 올렸다. 두 손은 여전히 배꼽에 있었다.
"백작님이 오셨군" 선배는 정문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 말했다.
"그럼 저분이... 맞나요 선배?" 머리에 펜을 들며, 선배에게 물었다.
"아니, 그분은 이미 몇 달 전에 왔다 가셨어. 그게 왜 궁금한 거지?"
"1303호에 비밀이 있을 것 같아서요." 나는 데스크 앞으로 몸을 기대며 물었다.
"비밀? 하하, 상상력이 지나치군" 선배는 고개를 흔들었다. 뒤를 돌면 키가 있다. 그러나 쉽게 잡을 수 없었다.
근무 13일 차. 온실 같던 로비는 사라졌다. 직원들은, 어제와 다르게 걸었다. 팔을 흔들지 않거나, 바닥만 보거나, 천장만 보고 다녔다. 같은 동선을 왕복하는 패턴 같아 보였다. 어제의 값과 오늘의 값이 다르다. 맹점을 발견했다. 선배는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멈춰야 할 것 같았다. 그러나 이 문제의 논점을 알아야 했다. 점심시간에 나는 청소부를 찾았다.
"일은 잘 되세요?" 식사를 하는 옆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청소부는 빵을 입에 넣고 고개를 저었다. 이내 눈도 감아버렸다. 나만 멈추지 못했다. 만나는 직원마다 1303호에 대해서 물었다. 머릿속에서 깃털펜을 아무리 굴려도 알 수 없었다. 그 방의 주인과 백작, 펭귄의 교집합을 찾을 수 없었다. 만약 있다면, 호텔에 오는 인간들 일 뿐이라는 걸 떠올렸다. 자리로 돌아갔다.
로비에는, 다시 냉기가 돌았다. 바닥이 얼어있고, 직원들의 숨에서는 입김이 나왔다. 남극의 빙하라도 떠 온 듯했다.
"선배, 언제 돌아왔나요?"
"추워지니까 와 있더라. 제자리로 온 거지" 선배는 장갑을 당기며 대답했다.
직원들은 다시 얼었다. 부화하지 못한 채, 온기를 잃어버린 알들은 로비를 굴렀다.
뒤를 돌아봤다. 여전히 숫자는 반짝였다. 1303. 소수였다. 1과 나머지 나로만 풀 수 있는 열쇠. 나는 아직 얼지 않았다. 부화도 원하지 않았다. 그 열쇠의 숫자가 새것인 이유, 밝히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그곳에 시체가 나뒹굴던, 정부의 비밀 프로젝트 공간이던, 금괴가 가득한 금고가 있던, 나랑은 아무 상관없다. 그저 문을 열어보기만 하면 된다. 그리고는 마음속에 그 장면을 묻을 거다. 깃털펜은 아직 빈에서 잘츠부르크로 날아오는 중이었고, 머리에만 있는 암산들이었다.
데스크 뒤쪽이 소란스러웠다. 직원들이 창고의 가방을 옮기고 있었다. 도우라는 손짓을 봤다. 승강기로 짐들을 넣고 있었다. 타본 적 없는 공간, 나는 잠시 끌려갔다. 승강기 도우미가 손을 뻗어 가로막았다.
"거기 앞에 두고 가세요" 도우미는 말했다. 승강기에 눈을 뒀다. 나와, 열쇠, 그리고 승강기. 이 세 가지의 삼위일체가, 나를 구원할 페르마. 완벽하게. 1303의 소수를 정수로 만들 기적...
데스크로 돌아왔다. 한 사람이 키를 받고 있었다. 선배는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리고 성의껏 인사를 했다. 나도 따라 고개를 숙였다. 손님은 가방을 들고, 데스크 뒤로 사라졌다.
"단골손님이신가 봐요?" 나는 엄지로 가리키며 말했다.
"응, 너한테도 몇 번 말했을 텐데. 단골이라고." 선배는 고개를 끄덕였다. 선배는 여전히 돌 같았다. 풀어낼 수 없는 저 머리. 나는 턱을 고정한 채 정문만 봤다. 한 가지 생각을 곱씹었다. 나에게 말했다던 단골이 누구일지 생각했다. 눈에 힘이 들어갔다. 고개가 돌아갔다. 열쇠보관 고리판을 봤다. 거기엔 내 키가 없었다. 승강기로 향했다. 문을 잡았고, 도우미가 막았다. 돼지펭귄의 목젖이 종처럼 울렸다. 모든 직원들이 로비로 향하고 있었다. 나의 발은 움직이지 않았다.
승강기 도우미가 자리를 비켜줬다. 주변을 살피며 올랐다. 문을 밀어 닫고, 다이얼을 한 칸씩 음미하며 돌렸다. 끝까지 돌렸을 때, 층은 8번째 칸에서 멈춰 있었다.로비는 빙하가 녹은 것 같았다. 웃음소리가 호텔 안을 울렸다. 멈춰있던 건 나 혼자뿐이었다. 모자란 5칸. 나는 또 길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