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원

단편소설

by 이겸

초원


(호랑이가 뛰어나오며 내레이션이 흐른다.)

“한 편의 비디오
사람의 미래를 바꾸어 놓을 수 있습니다.
공익광고협의회”

한때 영화 재생 전, 이런 문구가 흘러나왔다.


나는 그날의 비디오를 재생했다.

서울의 구석, 임대아파트.
방범창 너머 들어오는 햇살은 없었다.
그래도 뚜렷한 사계절은 찾아왔다.
봄이면 꽃내음이 불었지만,
겨울이면 집 앞에서 밟혔다.


난닝구 차림의 아저씨는 높이 날았다.
우린 장난처럼 알 켈리의 노래를 불렀다.
“I believe I can fly…”

콘크리트 바닥에서 파리처럼 터졌다.

그 상흔은 모래와 섞여 거름이 되었다.
친구들과 그곳을 뛰어넘으며 놀았다.
옆에서 자란 민들레도 꺾어다 놓지 않았다.

평범하게 덮인 일상의 죽음.


초등학교 4학년, 처음 접한 영화 제목은

〈아메리칸 히스토리 X〉
연석에 으깨진 주인공의 이빨을 보며, 길거리를 배웠다.
일 년 열두 달, 스물네 시간.
집 주변은 범죄와 자살, 술꾼과 강도가 장악했다.
조용한 날은 암고양이가 날 서게 울부짖었다.
“저 암쾡이는 왜 이렇게 시끄러워.” 옆집 아줌마의
뾰족한 소리는 방충망을 뚫고 들어왔다.


나의 할렘 시절, 탈출구는 영화였다.
500원을 아껴 오락실을 가지 않았다.
쪼그려 케이스 뒤 시놉을 반복해 읽었다.
그 한 편이 내 하루였기 때문이다.
한 시간을 고민하다 집어 들고 동전을 내밀었다.
“이제 골랐어ㅡ?” 아저씬 제일 평화로웠다.
항상 눈을 감고 고개를 끄덕이셨다.
모든 걸 다 아는 사람처럼.

초원비디오에서 아저씨의 삶을 대여했다.


잠이 들기 전까지 재생했다.
낯선 삶을 체험했다.

영화의 안. 집 밖의 삶.

브라운관과 나의 거리를 좁혔다.

반납 시간은 하루,
겪은 시간은 며칠.
빼낸 테이프는 뜨거웠고,
삶의 데이터는 쌓여갔다.


동전이 없는 날에는 동네를 돌았다.
그네 아래를 팠고, 자판기를 뒤졌다.
얼추 500원은 금방 모였다.
슬리퍼를 신고 앞발이 빠지게 달렸다.
문이 닫혀 있는 날, 소년은 길을 잃었다.
주변을 기웃거리는 동네 양아치들에게
손쉬운 먹잇감이 됐다.
나의 동전과 삶은 분해되었다.
오락기의 버튼 같은 구타 소리가 들렸다.

빼앗겨버린 기대는 멍자국 보다 깊었다.


영화와 삶은 다르지 않다.
과장된다 느끼면 아직 도달하지 못했고,
부족하다 느끼면 너무 앞서가서 문제다.

늘 두 가지의 굴레에서 맴돈다.


비디오 속에 테이프를 깊이 넣고 돌렸다.
빠르게 감기는 소리에 미래가 스친다.

사랑과 분노.
기쁨과 슬픔.
폭력과 좌절.

인간의 모든 걸 아저씨는 알고 있었겠지.
고작 500원, 내 수업료.

“고마워요, 아저씨.”


삶은 인생이 되어갔다.

나의 삶은 비디오, 아저씨의 인생은 초원.

삶이라는 야생에서 인생의 초원을 찾았다.
영화 같은 삶이 아니라, 삶이 모인 영화처럼.


플라스틱 테이프를 본다면,

인생은 재생된다.


그게 어떤 영화든, 첫 장면은 늘 같다.

‘한 편의 비디오가 사람의 인생을 바꾼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