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양행 버스

단편소설

by 이겸

담양행 버스





나는 거꾸로 매달려 양팔이 축 늘어졌다. 함께 늘어진 이어폰에서는 뽕짝이 흘러나왔다. 천장에는 소지품과 사람들이 한데 모였다. 거기에는 빌린 CDP와, 찹쌀떡도 포함되어 있었다. 불과 몇 시간 전만 해도, 이런 일을 상상하진 못했다. 출발할 때는 모든 게 좋아질 거라고 믿었다. 버스보다 빠른 주마등이 스쳐 지나간다.


오월의 좋은 날, 나는 집에만 처박혀 있었다. 책상에는 구겨진 원고지가 쌓여갔다. 소파에 누워 티브이를 봤다. 뉴스에서는 담양군의 축제 현장이 나오고 있었다.

“응. 그래. 그렇다니까. 말을 못 믿는 병이 있나?” 전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냉장고 문이 열렸다. “소설 쓰고 있어. 작가야 작가. 곧 대성할 애라고” 엄마는 주변 사람에게 나를 긁지 않은 복권이라고 했다. 동네잔치를 연다고 했다.

“아- 엄마! 좀 끊어.” 나의 목소리는 날카로웠다. 엄마는 외출 준비를 했다. 꽃분홍 니트에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밥 차려 줄게 먹고 해.”

“내가 알아서 먹을게, 얼른 나가.” 그렇게 말했지만, 배는 꼬르륵했다.

“너 원고 내는 날이 5월 30일이라고 했지?”

“네.” 구겨진 종이 사이, 발화를 기다리는 나의 꽉 찬 원고지.

“이거 받아.” 엄마가 하얀 봉투를 쥐여주었다. 손맛은 원고지보다 두툼했다.

“아, 아냐, 됐어. 뭔 돈이야.” 안주머니에 있는 빈 공간을 떠올렸다. 그래도 받을 수는 없었다.

“너, 밖에 안 나간 게 벌써 한 달이 넘었어. 한 달. 작가만 아니면, 그, 그 모야. 그래, 히키꼬모리. 딱 그거잖아.” 엄마는 핸드백을 식탁에 올려두고 의자를 뺐다. “잠깐 앞에 앉아 봐봐.” 숨소리를 천장에 쏟았다.

“뭔데, 왜? 알아서 한다니까.” 엄마를 보는 척했다. 베란다 창 너머의 빨강 신호등을 봤다.

“엄마가 너 믿는다고 했지. 이런 말 하면 부정 탈까 봐 안 했는데, 괜찮아. 떨어져도.” 신호등은 정말이지, 더럽게 바뀌지 않았다. 나는 고개를 숙였고, 엄마는 달걀 프라이를 부쳤다. 엄마의 밥. 사실 그게 없었다면, 원고지는 꽉 채울 수 없었을 것 같다. 한 입, 한 입이 과거였다. 엄마의 요리를 좀 더 자세히, 오래 지켜볼 걸 그랬다.


오전의 소란, 달그락거리는 설거지 소리와 함께 사라졌다. 고무장갑은 얼마나 썼는지 모를 정도로 색이 바랬다.

“아- 물 새네 이거…” 설거지를 마치고 돌아섰다. 여전히 식탁 위에는 하얀 봉투가 있었다. 집어 들었다. 대충 걸쳐 입고 마트를 향해 걸었다. 베란다에서 보이는 신호등은 고장이 나 있었다. 차도 사람도 비보호 상태로 서로를 지나쳤다. 나도 지나쳤다. 그들이 나를 지나치는 건지, 내가 그들을 지나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냥 지나쳤다. 우리는 서로에 대해서 모두 무관심하다. 아니, 알고 싶어 하지 않는다. 엄마는 나에게 관심이 매우, 너무, 아주 많으신 거에 비해, 나는 아주, 너무, 전혀 없다. 적당한 관심을 가지면 정말 좋을 텐데. 저 신호등처럼. 색깔로 말이다. 서로가 괜찮을 때와, 아닐 때를 알려줄 수 있다면 좋겠다. 나는 횡단보도를 건너, 가장 가까운 마트로 향했다. 이 집주인은 내게 별로 친절하지가 않다. 엄마에게는 굉장히 밝은 목소리로 인사를 하던데, 나에게는 그런 적이 없다. 고무장갑만 사서 나가야겠다. 엄마에게 받은 용돈으로 사는 건, 내가 사 드리는 거랑 같은 거겠지.

“고무장갑 어디 있어요?” 머리를 긁적이며 물었다.

“저- 안 보여?” 주인은 심술 맞은 표정으로 무심히 가리켰다.

“어디요?” 코웃음을 쳤다. “아니, 사장님, 그렇게 대충 말하면 누가 압니까?”

마트 주인은 팔을 걷어 올렸다.

“따라와.” 마트 주인이 말했다.

“그건 반말이고요” 나는 이어서 말했다. “됐어. 안 살게.”

“너희 엄마는 정말 사람이 좋던데, 너는 어째 볼 때마다 밥맛이냐.” 마트 주인이 한숨을 쉬었다. “안 팔아. 나가.”

“나도 안 사.” 엄마만 몰랐어도, 경찰서에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마트 문이 굉음을 냈다. 지나가던 행인들이 고개를 빠르게 돌렸다. 주머니에 있던 손이 떨렸다. 다음 마트는 꽤 걸어야 했다. 터미널 근처에 있었고, 약 삼십 분은 걸어야 했다. 하얀 봉투를 쓰다듬으며 걸었다. 나일지도 모르는 봉투를 안았다. 열어보지 않았지만, 나를 위한 것 같았다.


터미널의 반쯤 지워진 홍보용 현수막이 보였다. 모델의 얼굴이 일그러져 있었다. 지하상가 입구로 향했다. 가게들을 지나가는데, 내 별명이 들려왔다. 나는 멈춰 섰다. 그리고 누군가 내 어깨를 쳤다.

“야! 잘 지냈냐?” 날 돌려세우는 사람이 말했다. “나 몰라? 표정이 왜 그래?” 그 사람은 얼굴을 들이밀었다. 오래된 동창 녀석을 우연히 만났다.

“이야… 여긴 어쩐 일이냐, 촌놈이.” 나의 행색을 스스로 살폈다. “반갑다.”

“나, 방금 내렸어. 어머니 생신 선물 좀 사려고. 넌 어디 가는 길이야?” 친구가 말했다. 수많은 인파 속에서도 우리는 섬처럼 붕- 떠 있었다.

“어. 뭐, 나도 그냥, 어머니 선물 사러 왔어.”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아니다, 이건 내 돈이니까. 선물이었다.

“이야… 평소에도 선물을? 아주 효가 넘치네” 친구가 말했다. “야 잠깐 커피 마실래?”

“나 늦었어. 담에 보자. 연락해. 언제 한 번, 밥 먹자. 술도 좋고. 나 갈게.” 나는 말했다. 이건 백지수표 같은 말이었다. 그러므로 거짓말이 아니다. 이런 대화는 언제 끝날지 모른다. 가장 좋은 모범 답안이었다. 나는 친구와 인사했다.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어줬다. 나는 세상이 참 좁다고 중얼거렸다. 상가에 걸린 옷들이 눈에 들어왔다. 엄마의 옷 사이즈를 기억 속에서 더듬고 있었다.

지하상가를 지나, 터미널 아래쪽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한 층만 더 내려가면 대형 마트가 있었다. 이곳은 모든 직원이 친절할 거라고 생각했다. 대기업이니까. 고무장갑 브랜드도 여러 개가 있겠지. 엄마가 좋아하는 핑크색. 옷은 아니지만, 뜯어지려고 하는 고무장갑을 바꿔놓고 싶었다. 물이 안 새는 걸로.

“안녕하세요. 혹시 고무장갑은 어디에 있나요?”

“A10번 기둥 앞에 있습니다. 고객님.”

“감사합니다. 거기에 고무장갑이 있는 게 확실한 거죠?” 나는 재차 물었다.

“네 고객님. 그곳에 가서 아래를 살펴보시면, 핑크색부터 초록색 노란색… 고무장갑이 쫙 있어요.” 분명 고무장갑은 촌스러운 꽃분홍색 하나였는데. 격세지감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거짓말하는 거 아니죠?” 나는 물었다.

“네.” 직원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도착한 그곳에는 고무장갑이 있었다. 형형색색 화려했다. 가격은 꽤 차이가 났다.

“뭣 하러 색깔을 집어넣지?” 문득 궁금했다. 아니, 쓸데없는 짓을 하는 게 궁금했다. 색깔만 넣고 가격은 올리려는 개수작을 참을 수 없었다. 엄마의 돈 이라서가 아니다. 포장지 뒷면에 나와 있는 고객센터로 전화를 걸었다. 클래식이 흘렀다. 휴대폰 통화 화면의 시간은 03:30 초가 지나고 있었다.

“네 정성을 다하… …” 상담원이 말했다. 나는 말을 끊었다.

“저기요. 이봐요.” 나는 말했다. “대체, 고무장갑에 색을 왜 넣은 겁니까?”

“네? 고객님? 그게 무슨 말씀 이십니까?”

“쫌만 기다려요.” 음 소거 버튼을 누른 채 밖으로 달려 나갔다. “이제 잘 들리죠? 일단 내가 궁금한 건. 왜 기존에 있던 멀쩡한 핑크색 고무장갑을 발전시키지 않았냐는 말이죠. 아시겠어요?” 이어서 계속 말했다. “핑크가 얼마나 색이 많은데. 그냥 핑크 말고 코럴, 핫, 밀키… 들었죠? 여보세요? 여보세요...”

상담사는 불러도 대답하지 않았다. 수화기 너머로 싸우는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상담사가 음 소거 버튼을 누르지 않았다.

“야! 이 병신 같은…”혼나고 있는 것 같았다. “죄송합…” 궁금증이 생겼다. 녹음 버튼을 켰다.

“그런 머저리… 처리… 못해서…” 상담사가 내려놓은 핸즈프리에 내 욕이 담겨 지지직거렸다. 몇 분이 지난 후,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렸다.

“네 고객님 오래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나를 욕하던 사람의 목소리였다. 아마도 상사인 것 같았다. “고객님?” 나는 녹음파일에 제목을 정하고 있었다. 제목은 ‘고무장갑의 변신은 무죄인가?’ 그렇게 정하고 나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답변해 보세요. 아까 제 질문.” 나는 물었다.

“고객님 어떤 것 때문에 그러시는지 모르겠지만, 회사 규모가 작아서 상담사 두 명이 운영 중입니다. 죄송하지만, 메일로 문의 주실 순 없으세요?”

“싫은데요. 그거 대답하는 게 어렵나?” 그리고 이어 말했다. “색 넣은 이유를 모르는 거죠? 그럼 그냥 모른다고 해요.”

“아뇨, 다 아는데요. 고객님께서는 지금 영업방해를 하고 계신다는 걸 알고 계십니까?” 목소리가 다소 격앙된 것 같았다.

“영업방해요? 고객을 욕한 건 괜찮고요? 저보고 병신하나 처리 못 하냐고 했죠? 명예훼손으로 갈까요 그럼?” 내 승리라고 생각했다. 그 상사 상담원은 잠시 말이 없었다. 전화를 끊었다. 고무장갑 코너로 돌아갔다. 비닐을 뒤집었다. 아래 주소를 살펴보니 담양공장이라고 쓰여 있었다. 마트 직원이 멀리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5월인데 공기가 차가웠다. 마트라서 그런 것 같았다.


끊었던 담배 생각이 났다. 편도선 때문에 끊었던 담배. 하지만, 불이 없었고 담배도 없었다. 아무 계단에 걸터앉았다. 시간을 봤다. 공장의 퇴근 시간이, 5시간 정도 남은 걸 알았다. 마침, 터미널이고 봉투가 있었다. 녹음해 둔 욕지거리도 있으니, 경찰과 가면 이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버스를 타기로 했다. 1층의 버스터미널로 향했다. 담배를 태우는 사람의 연기를 따라 걸어갔다. 사람들이 서로를 훑어가듯 지나갔다. 나도 그중 하나일까, 아닐까. 담배는 자신을 태우고 꽁초를 남기는 걸까, 아니면 새 담배도 떨어지면 꽁초가 되는 걸까. 악을 썼더니 관자놀이가 당겼다. 담양에 가서 담판을 보기로 했다. 차라리 잘 되었다. 간 김에 당당하게사과도 받고. 궁금증도 해결하고. 축제도 즐기는 거야. 그렇게 생각하면서 매표소를 찾아 헤매었다. 세월이 지난 기억을 더듬으며, 거대한 터미널의 대리석을 밟았다.

“저기요 혹시 매표…” 나는 묻고 또 물었다. 열댓 명을 붙잡고 물어봐도 알려주는 이가 없었다. 어쩌면, 그들도 모를 거라고 생각했다. 가지 말라는 뜻인가. 나는 가려고 했는데, 도와주지를 않네, 투덜거렸다. 이윽고 광장처럼 넓은 공간이 나왔다. 분수대에는 벤치가 둥글게 놓여있었다. 줄을 길게 선 모습을 발견했다. 벽에는, 각 지역의 시간표가 나와 있었다.

“담양, 담양, 다아아암양” 손가락으로 찾으며 중얼거렸다. “오케이!” 약 15분 뒤 가는 버스가 있었다. 줄은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았다. 새치기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줄을 선 인간들에게 빈틈은 보이지 않았다. 여전히 내가 낄 틈은 없어 보였다. 그냥 기다렸다. 그렇게 5분, 10분. 지네 같던 줄이 짧아졌다.

“담양요.”

“만 삼천오백 원입니다.” 간이 마이크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잠시만요.” 나는 하얀 봉투를 꺼냈다. 두툼하고 묵직한 무게에, 물이 새던 핑크색 고무장갑이 생각났다. 봉투를 열었다.

“어-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잠시만요.” 뒤에 선 줄을 보며 말했다. 불만이 섞인 야유가 터져 나왔다. 내가 기다려 달라고 한 이유. 봉투를 떨어뜨리거나, 계산할 금액을 잘못 꺼낸 게 아니다. 봉투에는 원고지가 들어있었다.

“와… 미치겠네, 진짜. 엄마… 아.... 엄마…” 봉투를 쳐다보며 연신 중얼거렸다. 엄마와의 아침 대화가 떠올랐다. 편지면, 편지라고 말해주지. 아니면, 조금이라도 같이 넣어주던가. 이게 뭐냐고. 다 엄마 때문이야 이건. 내 잘못이 아니야. 눈앞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저기요!” 누가 내 어깨를 치며 말했다.

“네? 죄송해요. 비킬게요.” 나는 말했다.

“아뇨. 그게 아니라, 저도 담양 가는데 혹시 차비 꿔 드려요?”

스티로폼 떡 팩을 들고 있는 사람이 말했다.

“네? 돈을 꿔준다고요? 첨 보는데요?” 매표소는 언성이 높아지고 있었다. “아! 거참 빨리빨리 좀 합시다. 차 놓치겠다고!” 등에서는 땀이 났다.

“아- 알겠습니다. 그럼, 제 표까지 두 장 부탁드려요. 감사합니다.” 떡을 들고 있던 사람은, 나에게 표를 주었고, 떡을 권했다.

“이거 하나 드셔볼래요?”

“아. 아뇨 밥을 잔뜩 먹고 나와서요.”

“떡이 세 팩이나 있어요. 제가 떡보라서요.” 입에 떡을 오물거렸다. “싫음 말고요.” 가방에 떡을 주섬주섬 넣었다. 버스에 올랐다.

“저기, 우측 창가인데 제가 창가에 앉을게요. 통로 앉으세요” 떡보가 말했다. “이 정도는 괜찮죠?”

“아, 네. 괜찮아요. 근데 저희같이 앉아서 가나요?” 나는 물었다.

“한 번에 두 장 사는데, 그렇죠. 싫음 물러요?” 떡보가 말했다.

“아뇨. 그냥 가요.” 나는 말했다. 시간은 대략 삼 분 정도가 남아있었다. 난 여전히 담배 한 대 태울 시간을 떠올렸다. 쩝쩝, 떡 씹는 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잠깐 꿈을 꾸었다. 반 정도 가려진 커튼, 논과 밭이 빠르게 스쳐 갔다.

얼마나 잠이 든 건지 모르겠다. 나는 고무장갑에 바람을 힘껏 넣어 풍선을 만들었다. 그렇게 백 개 정도 불었다. 집안을 가득 채웠다. 저녁에 돌아오는 엄마의 도어록 소리가 들리면 불을 꺼야겠다고 생각했다. 잠시 후 문이 열렸다. 발에 통통 쳐지는 고무장갑 풍선에 크게 웃으시는 모습을 보았다. 나는 봤다. 꿈에서도 다른 색깔의 풍선은 없었다. 내 생각이 맞았다. 그것들은 이상한 것들이다. 차라리…

“저기요.” 옆에 있던 떡보가 깨어 있는 날 불렀다. “이거 하나 먹을래요?” 또 떡이다. 떡. 그냥 하나 먹고 입을 다물까.

“아뇨.” 고개를 저었다. “떡 안 좋아해요.”

“세상에나… 떡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니…” 떡을 집어 먹었다. 나에게 고개가 고정되어 있었다.

“그게 접니다. 아무튼, 돈 빌려준 거 정말 고마워요.”

“별말씀을요. 저도 어릴 적, 차비를 잃어버린 적 있거든요.” 떡보가 말했다.

“담양이 고향인가요?”나는 물었다.

“아뇨. 대나무 축제에 가려고요”

“어라. 저도 볼일 보고 거기 가려했는데.” 답을 하고서, 각자의 앞으로 고개가 돌아갔다. 누구 하나 원치 않는 방향 같았다. 내가 고향이라고 하든, 저 사람이 고향이라고 하든, 했으면 끝날 일이었다. 갑자기, 내 입으로 찹쌀떡 하나가 쑥 들어왔다. 나는 떡보를 쳐다봤다. 씩 입꼬리를 올리더니, 자기 입으로도 찹쌀떡을 하나 넣었다. 생각보다 맛이 좋았다. 단팥의 향이 진하게 퍼졌다. 쫄깃한 떡이 치아 사이를 비집고 들어갔다. 숨기에 좋은 곳이다. 모두가 무한 생성되는 찹쌀떡을, 입에 물고 있는 세상이 온다면 좋겠다. 어떤 식으로든 평화가 올 것 같았다. 이렇게 한없이 씹고 있다 보면, 내가 왜 담양에 가는지를 잊게 되는 것 같다. 뉴스에서 대나무밭을 봤을 뿐인데. 그곳이 담양이라는 리포터의 말을 들은 것뿐인데. 용돈이라고 생각한 봉투를 받았을 뿐인데. 안 하던 짓을 했을 뿐인데. 고무장갑의 물이 새는 걸 발견한 것뿐인데. 새 고무장갑을 사러 나간 것뿐인데. 마트에서 불친절로 싸운 것뿐인데. 엄마의 선물을 사는 동창을 만난 것뿐인데. 큰 마트에서 고무장갑의 역겨운 색상을 발견한 것뿐인데. 고객센터의 통화에서 욕을 들었을 뿐인데. 공장이 담양에 있는 것뿐인데. 떡보가 내 표를 사줬을 뿐인데. 그래서 난 지금 버스를 탄건가. 왜 사줬냐고 말하고 싶었다. 표를...

“혹시, 임금님과 당나귀 귀 아세요?” 떡보가 물었다. 버스 천장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네 그거 대나무숲에서 당나귀 귀라고 외치는 거 아닌가요?” 쩝쩝 소리가 들렸다.

“네. 맞아요. 그거.” 떡보가 말했다. “해보고 싶었거든요. 살면서 꼭.”

“뭘요? 그거, 소리 지르는 거요?”

“네. 소리를 버럭버럭 질러서 목이 쉴 때까지. 살면서 한 거짓말들을 다-, 모두 다-, 말할 거예요. 진짜 대박이죠?” 떡보는 나를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그걸 다 기억해요?” 떡을 먹고 있는 얼굴을 쳐다봤다. “몇 개 없나 보네.”

“그게 아니라, 가슴에 박혀있는 거짓말을 하나 뽑잖아요? 그럼, 그 구멍에서 술술 다른 거짓말들이 흘러나온대요. 그러니까 하기 쉽죠. 목만 괜찮으면.” 나는 그게 무슨 말인지 몰랐으나 알았다. 구겨져 있던 내 원고지들이 생각났다. 내가 거짓을 쓰는지, 거짓 같은 진실을 쓰는지. 항상 고민했으니 말이다.

“저는 작가인데, 작가가 아닙니다.” 갑자기 말을 하고 싶었다. 별 이유는 없다. 그냥 말했다. 여기가 대나무숲은 아닌데 말이다.

“헐. 대박. 작가셨어요? 어쩐지, 운동복이 잘 어울린다고 했지. 내가 보는 눈이 좀 있어서요.” 그리고 이어서 말했다. “내가 돈 빌려줬으니까, 책에 싸인도 해줘야 해요. 꼭이요.”

“저기… 내 말은, 작가가 아니라고 한 건데요.” 목소리를 낮췄다. “아직 등단을 못 했어요” 떡보는 창문의 커튼을 젖히더니 밖을 보기 시작했다. 나도 그냥 밖을 쳐다봤다. 나는 이걸 바란 게 아닌데, 요새 들어 운이 참 없다. 만들어져 있는 원고도 내일 오전에는 우체국에 가져가야 하는데. 나는 지금 어딜 가는 건지. 병신. 원고를 보낼 돈도 없었다. 써 놓은 원고를 보내지 않으면 도움이 될 것이다. 써 놓은 원고를 보내서 당선된다 하더라도, 그다음 원고를 또 보내지 않아도 되니 다행이다. 미래의 걱정거리가 줄었다. 담양. 태어나서 처음 가보는 곳이네. 그래, 좋다. 나도 숲 깊숙이 들어가서, 목이 나가게 만들어야지. 누가, 내게 말을 걸어도, 대화하지 못하게 될 테니까 말이야. 대나무를 실제로 본 적 없었지만. 죽순은 먹어봤어. 그게 그거 아닌가. 그거 아닌가. 아닌가…

“잠시 고민 좀 했어요. 작가인데 아닌 게 뭔지에 대해.” 떡보가 말했다. 날 보고 있었다. “그 말은 즉. 본인이 글을 쓰고 있지만, 아직 등단하지 않았고, 책도 안 냈다는 말이잖아요? 그런데, 작가라는 게 자격증이 따로 있어요? 그냥 자신의 글을 쓰면 작가가 아닌가 해서요. 아- 물론 내가 작가는 아니지만. 전 학교 선생님이에요. 초등학교.” 떡보는 차분해 보였다.

“흠… 그런가요? 아무튼 그렇게 말해준 건 고마워요. 하지만, 이 바닥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이해관계가 있어요.” 나는 무언가 어려운 걸 쉽게 설명하려는 것처럼 말했다. “그런데, 선생님이 평일에 놀아도 돼요?” 떡보는 창문을 쳐다보고 있었다. “미안해요. 그냥 물어본 건데, 괜히…”

“아니에요. 퇴사. 하지만 이유는 말 안 할래요.”

“제가 괜히…” 사과하려 했으나, 떡보는 눈을 감아버렸다. 휴대폰을 꺼냈다. 배터리가 5% 정도 남아있었다. 지금의 나 같았다.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금방이라도 꺼질 것 같은 관심의 간당함. 사춘기 청소년처럼. 엄마의 고무장갑을 찾아 헤매는 주변인의 질풍노도는, 담양을 가서 담판을 지어야 끝날 것 같았다.


“잠시 후 우리 버스는 휴게소에서 약 10분간 정차합니다.” 버스 안내 방송이 울렸다. 불은 켜지고, 사람들은 눈을 떴다. 하나, 둘 현실로 돌아오고 있었다. 꿈. 그것은 손에 잡히지 않으며, 잔인하고, 또 읽고 싶은 책 같았다. 넘기고 또 넘겨도 계속되는 이야기처럼.

“저기요. 화장실 안 가세요?” 나는 떡보를 흔들어 깨우며 말했다. 그러나 떡보는 자는 척을 하고 있었다. 눈동자가 눈꺼풀 아래에서 계속 움직였다. 혼자 일어섰다. 버스 기사님에게 휴대폰 충전을 여쭤봤다. 케이블이 없었다. 주변을 둘러봤다. 철이 한참 지난, ‘Be The Reds’ 빨간 티셔츠를 입은 사람이 스피커 앞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딱 봐도 나이가 있어 보였다. 나는 다가가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죄송하지만, 혹시 충전 좀 할 수 있을까요?”

“충전? 내가 왜?” 빨간 티 입은 사람이 말했다. “농담. 퀴즈 맞히면, 내가 충전도 해주고 선물도 주지.”

5월의 크리스마스. 빨간 옷을 입은 사람이 선물을 준다니, 영업이 신박하다고 표현하고 싶었다. 단지 이분도 삶의 배터리가 간당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가 충전해 주기를 바라는...

“좋아요.”

“그럼 내가 틀어주는 노래를 듣고, 가수를 맞추면 된다.”

“네.”

가게에 들어가 휴대용 CD플레이어를 들고나왔다. 하얀색 이어폰 줄을 주머니에서 꺼내어 정리했다.

“귀에 꽂아.” 빨간 티 입은 사람이 말했다. “자- 튼다.” 어느 여인의 목소리가 구슬프다. 어디선가 들어 본 노래였다. 그때 떠올랐다. 엘레지의 여왕. ‘헤일 수 없이 수많은 밤을... “ 가사가. 엄마 대신 공감이 되었다. 방문이 닫힌 내 방안, 나는 항상 어둠 속에 있었다.

“이… 이미자!” 눈을 질끈 감았다. “동백 아가씨!” 손뼉을 여러 번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대답하셨다.

“오. 나이쓰, 좋았어. 젊은 사람이 이런 것도 알고 기특하네!” 그리고선 다시 가게로 들어갔다. 내 손에 보조배터리를 쥐여주셨다.

“이걸로 충전하고, 씨디피도 빌려줄게. 나중에 지나갈 때 꼭 줘.” 표지가 없는 CD를 줬다. “내가 구운 씨디 한 장 줄게. 신곡이여. 버스 간다야.” 빨간 티 입은 사람은 말했다.

“네? 이걸 그냥요…? 이 은혜를 어떻게. 제가 나중에 꼭 한 번 찾아올게요. 이거 드리러요.” 오늘 두 번의 백지수표를 썼다. 인사를 여러 차례 드리고 버스로 향했다. 가슴이 붉게 물들었다.


돌아온 버스 안은 어두웠다. 모두 커튼을 닫고 있었고, 버스 앞쪽의 티브이도 꺼져있었다. 기사님은 승객들을 기다리며 스트레칭하고 계셨다. 좌석에 앉으려고 들어갔다. 떡보가 보이지 않았다. 자리에는 비닐이 뜯어진 찹쌀떡이 있었다. 버스 앞문이 푸슈- 하는 소리가 나며 닫혔다.

“저기 기사님!” 나는 소리쳤다. “여기 한 사람이 안 왔어요.”

“아까 옆에 분? 친구 차 타고 간다고 하시던데.” 무언가가 가슴을 여러 번 눌렀다. 말이라도 해주고 가지. 그래도 두 시간은 봤는데, 말도 섞었는데, 찹쌀떡도 줬으면서. 돈은 어떻고. 무언가 들어왔다가, 사라졌다.

꿈이었지만, 고무장갑은 터지지 않았고, 질겼다. 고무장갑은 쉽게 버려지지 않았다. 그제야 조금은 깨달았다. 엄마의 닳은 고무장갑을. 나는 잊고 있던 엄마의 편지가 생각났다. 커튼을 열어도 떡보는 보이지 않았다. 버스는 카랑한 소리를 내며 시동이 걸렸다. 이어폰을 꽂고 재생 버튼을 눌렀다. CD는 여러 가지 가수들이 믹스된 일명, 뽕짝 같은 노래였다. 나이가 지긋이 든 어르신들이 듣는 음악. 한 편으로는 다행이었다. 가는 내내 잠이 올 것 같았다. 무언가 쿵짝쿵짝하는 노래라도 나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버스는 속도를 올렸다. 사람들은 다시 눈을 감았다. 커튼은 닫혔다. 주머니에 구겨둔 편지를 꺼냈다. 커튼 사이로 빛이 새었다. 원고지에는 엄마의 글씨가 가득했다. 한 자, 한 자, 꾹꾹. 손가락의 서툰 필압이 눈에 밟혔다. 나는 첫 글자부터 침을 꿀꺽 삼켰다. 천장과 편지를 여러 번 반복하며 봤다. ‘엄마야. 너에게 참으로 오랜만에 편지를 쓴다.’ 분명 몇 시간 전에 봤던 엄마인데, 엄마라는 단어를 글자로 보면, 왜 눈이 자주 흐려지는지 모르겠다. ‘사실, 너 몰래 원고 봤어. 미얀… 하지만, 엄마는 그 글에서 아주 큰 우주를 봤단다. 배 아파서 너를 낳은 날이 생각난다. 선생님께 너무 아파서 죽고 싶다고, 독약 놔 달라고. 나의 뱉은 말이 얼마나 큰 실수였는지 새삼 깨달았단다.’ 나는 이때부터 글씨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또 천장을 봤다. 잠깐 팔에 눈을 긁기도 했다. 커튼이 닫혀 있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너도 포기하지 말기를 바란다. 하지만, 정말 독약이 필요할 정도의 고통이면 내려놓거라. 너보다 세상에 중요한 건 없단다. 그건 순리이고 진리란다. 잊지 말거라.’ 몸이 마구 진동했다. 버스의 진동인지 잘 모르겠다. 아무튼 떨리고 또 떨렸다. ‘p.s 어제 꿈에서 네가 사고가 났어. 걱정이 되더라. 부디 몸 조심히 해라. 집에서도 말이야. 그럼 이만 줄일게.’ 결론은 사랑한다는 것으로 끝나는, 아름다운 문장. 엄마의 편지. ‘사랑한다. 내 새끼.’ 나는 허리춤에 있는 안전벨트를 맸다. 몸이 부르르 떨려서 착용하는 게 어려웠다. 편지를 접었다. 다시 봉투에 넣었다. 사랑은 넣지않았다. 가두는 게 아니다. 나에게 오던, 누구에게 가던해야 한다. 고무장갑에 불어넣은 나의 것도 다시 풀어줘야지. 다 풀어줘야지. 담양에 가면, 공장에 도착 후 고무장갑을 사서 다시 돌아가야겠다.


음악은 요란한 뽕짝으로 바뀌었다. 쿵짝쿵짝- 빠르게 반복되는 박자에 우스꽝스러운 전자피아노가 중간에 화음을 넣고 있었다. 그리고 하이라이트는 가수들의 목소리가 하나같이, 헬륨 풍선을 마신 듯이 하이톤이었다. 이히-이히- 쿵짝-쿵짝. 쿵. 짝. 쿵. 짝. 그러다,

쾅!. 세상이 돌고 돌았다. 계속 돌았다. 허리가 끊어질 것 같았다. 물건과 사람들이 뒤섞여 돌았다. 눕혀진 믹서기처럼. 천장을 보고 머리가 돌았다. 삶의 언덕을 뛰어넘은 걸까. 그런 꿈같은 생각을 했다. 버스가 멈췄다.쿵짝 소리는 더 이상 나지 않았다. 아니, 사라졌다. 소리도, 사람도, 욕심도, 거짓도, 진실도. 모두.


나는 거꾸로 매달려 양팔이 축 늘어졌다. 함께 늘어진 이어폰에서는 뽕짝이 흘러나왔다. 천장에는 소지품과 사람들이 한데 모였다. 거기에는 빌린 CDP와, 찹쌀떡도 포함되어 있었다. 불과 몇 시간 전만 해도, 이런 일을 상상하진 못했다. 출발할 때는 모든 게 좋아질 거라고 믿었다. 버스보다 빠른 주마등이 스쳐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