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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순일 Dec 14. 2024

나쁜 치매와 좋은 치매

장모님에게 치매 판정이 내려진 때는 60대 초반이었다.

치매를 생각하기에는 너무나도 이른 나이

장모님의 반발은 대단했다.

총명하기가 이를 때가 없고

남자로 태어났으면 대통령이라도 할 것 같은 

그런 기세가 항상 등등하였으며

누구라도 맞붙을라 치면 감히 대적이 되지 못할 정도로

대단한 성격과 기질의 소유자였던 장모에게

치매는 도저히 인정하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그래서

약 처방도 감히 하질 못하였고

주변인인 우리들조차도 그래 치매는 아닐 거야 하고 

애써 부정하며 가볍게 넘기었지만

그것은 엄연한 실수였다.

일찍부터 

약을 통해 치매 관리를 하지 못했다는 후회는

지금도 곱씹어 보고 또 곱씹어 보지만

되돌릴 수 없는 사실이 되어 버렸다.

 그저 다혈질적인 성격 탓이라 여겼던 

장모님의 치매 증상은 하나씩 둘씩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그중에는 착한 치매와 나쁜 치매가 있다는 것을 알았는데...

제일 먼저 찾아온 것이

의심증이었다

물건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실수로 내가 어디에 두었는지를 

찾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훔쳐 갔는데

그 대상은 첫 번째가 사위

두 번째는 손녀들이었다.

죽일 놈 살릴 놈

죽일 년 살릴 년

이 말이 계속 입에서 맴돈다.

당사자의 결백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냥 마녀사냥과도 같은 의심증...

처음엔 정말 훔쳐 간 줄 알았다는..

이것은 

나쁜 치매다.

그다음은 집 밖으로 나가려 한다는 것

정확히 말하면 집에 가야 한다고 하신다.

막무가내다.

한번 시작하시면 

3시간 정도 멈추질 않고 문을 열라고 난리를 치신다.

이것은 나쁜 치매다.

온방을 돌아다니시며

가족들이 다 어디 갔냐고 난리를 치신다.

어두워지면 집에 들어와야지

왜 아무도 들어오지를 않냐고 불안해하신다.

계속해서 방문을 여신다.

이것도...

나쁜 치매라 생각한다.

그리고

맘에 드는 물건을 계속해서 챙기시며 짐을 꾸려 놓으신다.

나중에 숨겨 놓으신 가방을 열어보면

부엌칼을 비롯하여 온갖 물건이 다 나온다.

필요에 의해 가지고 가시려는 마음에 챙기셨지만

한참을 찾아도 없는 물건이 가방에서 나온다.

이것 또한 나쁜 치매다.

좋은 치매도 있다.

당신이 치매라는 사실을 모르신다.

어린 시절의 기억으로 돌아가서

엄마를 찾고 동생을 찾고 아버지를 찾는다.

지금의 우리는 없고

한창 자라나던 시절의 형제들만 기억을 한다.

사위인 나를 오빠라 생각하며

내가 말하는 지시사항은 잘 따르려 한다.

그 기억 속에 빠져 지내시는 모습

이건 좋은 치매라 해야 할까?

나쁜 치매든 

좋은 치매든

치매는 피할 수 있다면 피해야 하지만

그건 우리의 선택 사항이 아니다.

할 수만 있다면

주변 가족들에게 피해를 안 끼치는 

그런 치매 증상을 보였으면 좋겠다.

그건 나의 바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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