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울 속 돌멩이를 줍는 데에 몰두했던 때가 있다. 시험을 본 날이면 결과에 상관 없이 손발을 물 속에 담궜다. 차갑고 투명하게 비치는 바닥에서 유난히 눈에 띄는 돌들을 건져 올렸다. 동글동글한 조약돌, 아주 흰 돌, 날카롭지만 퍼즐 조각 같이 생긴 돌. 옷이 젖는 것도 마다하지 않고 티셔츠를 주욱 내빼고 수집한 돌들을 담았다. 이호에게 가져가면 그는 자신의 방 뒷편 텃밭 테두리에 돌들을 하나 둘 나열했다. 돌 박물관을 차린 기분이 들어 나쁘지 않았다.
"나비 효과라는 말, 알지."
"응."
"네가 개울에서 가져온 돌들이 있던 자리가 비워졌으니, 시간이 흐르면 어떻게 변할 지 아무도 알 수 없어."
"일단 이호의 텃밭이 진열대가 된 결과는 확실해."
"이번 시험은?"
"망쳤어."
"또 그랬구나."
그는 네 살이나 어린 내가 이름만을 부르는 것을 지적하지 않았다. 관계는 호칭이나 숫자에 한정되지 않는단 말을 했다. 그는 오히려 자신을 규명하는 이름과 '나와 너'같은 둘만의 관계 사이에서 지목하는 호칭에 더 의미를 두었다. 나는 일부러 답을 틀렸다. 교무실로 불려간 적도 많았다. 그럴수록 답지에 정답 바로 옆 오답 번호를 적었다. 정답 번호로 규칙을 만든 수열에 따라 답지를 채우기도 했다. 답지 번호들을 왼쪽으로 한 칸만 이동하면 모두 정답이 되었을 때, 교무실에 가서 '시험은 장난이 아니다.'라고 혼난 후였다. 시험문제를 풀고 남은 시간에 오답을 교묘하게, 조화롭게, 그리고 아름답게 배열했다. 부모님은 한창 혼내다가도 시간이 지나자 나를 포기했다.
학교에서 친구는 없었다. 문제를 틀린 적이 없으나, 맞춘 적도 없는 괴짜에게 사람들은 다가오지 않는다. 호기심으로 몇차례 말을 건 이들은 있었다. 난 그들에게 흥미가 없었다. 하교 후 가는 장소는 두 가지로 정해졌다. 개울, 아니면 옆집.
리무진 한 대가 그의 집 대문 앞을 가로막았다. 미성년자로써의 마지막 시험을 마친 뒤, 유난히 따듯한 겨울이었던 해, 물은 얼지 않았으나 발이 얼어붙을 정도로 차가웠던 개울에서 돌을 주워간 날이었다. 이호는 차에서 내려 피로한 얼굴로 나와 마주쳤다. 순간 오래 전, 그가 범상치 않은 존재라는 상상의 나래를 펼쳤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예상이 들어맞을거라는 기대와 함께 상기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곧 성인이 되겠네. 축하해."
"법적으로는 그렇겠지. 어른이 되긴 멀었어."
"왜 그렇게 생각해?"
답 대신 물에 젖은 돌멩이를 손에 들어 보였다. 이호는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처음 보는 웃음이었다. 내가 누군가를 이렇게 웃게 할 수 있구나. 이 순간은 꽤나 오랫동안 나의 마음에 머물렀다.
"나비효과가 일어나기 시작한거 같아. 처음이거든. 이렇게 웃는거."
"떠나는거야?"
"텃밭을 잘 부탁해."
그 땐 마지막을 잘 마무리 할 수 있어서 다행일 뿐이었다. 이호는 언제나 이 곳과 동떨어진 모습이었고, 어디론가 훌쩍 떠나도 이상하지 않았다. 희수가 어느샌가 보이지 않았을 때에도 그리 이상하지 않았다. 태연하고도 평소와 같았던 이호의 태도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간 쌓인 편지를 읽자, 그와 그렇게 작별하자고 생각하며 손을 흔들었다.
'세연에게,
9살 생일 축하해. 너는 여전히 조용하지만 제멋대로고, 재미있는 사람이구나. 사실 내 일기를 몰래 다 읽은 것도 알고 있어. 하지만 엄마가 너는 일기를 보여줘도 될만한 사람이라고 신뢰했을거라는 생각이 들어. 앞으로는 일기를 보여줄테니 유자차와 함께 읽어도 돼.'
이호의 일기는 평범해 보였다. 그 속에서 암호를 찾기 전이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비밀을 이토록 빨리 알아챈 사람은 내가 유일하다고 했다. 하지만 그 말은 신빙성이 없었다. 그의 일기를 본 사람은 희수와 나, 둘 뿐이었으므로. 앞으로 또다른 누군가가 일기를 읽는다면 알아챌 가능성이 다분했다. 신기하리만치 이호가 어디에서든 존재감이 옅다는 사실을 안 건 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