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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일을 기다리며

- 내가 사는 이야기

by 이혜경 Mar 11. 2025

건강검진을 예약했다.

아이들이 어릴 땐 뭔가 의무감이 동반되어 열심히 건강검진을 받는 편이었는데 어느새 아이들이 성인이 되니 어느 만큼은 보호자로서의 의무감에서 해방된 탓인지 자꾸 검진을 미루게 된다.

그렇게 벼르던 검진을 예약했으니 말하자면 큰 결심을 한 셈이다.


오랜만에 하는 거 이왕이면 좋은 결과를 받자고 며칠 전부터 좋아하는 저녁 맥주타임을 끊었고 어제는 1시간 20분을 걸어서 퇴근했고 오늘은 볼 일 보러 가는 길에 5,000보를 걸었다.

저녁은 두부를 밥 삼아 오이, 참치, 김가루 고명에 계란프라이를 얹어서 비빔밥스러운 비빔두부(?)를 먹었는데 사실 시작은 인터넷 검색해서 찾은 '두부포케'였다.

점심엔 양배추와 사과를 채 썰어 섞은 샐러드를 먹었고 아침 첫 시작은 반숙란을 먹는 중이다.

내일 저녁은 오리고기 양배추찜을 먹을 작정이다.

맥주를 끊고 운동을 하고 식단을 조절하고.

이쯤 되면 거의 전쟁에 나가는 장수 같은 결의가 느껴져 스스로 웃음이 나기도 한다.


최상의 건강 상태가 되고자 하는 마음이 우선이지만 사실 이렇게까지 하는 건 최근 한 달 반 사이 몸무게가 2kg이나 늘어서 다리도 아프고 몸이 부대끼는 탓도 있다. 말하자면 겸사겸사다.

지난 연말부터 브런치에 글을 쓰는 동시에 내가 하고 있는 '정리수납'에 관한 책을 쓰기 시작했고 얼마 전에 책을 쓰는 일 자체는 마무리했다.

두 달쯤, 짧게는 두세 시간, 길게는 7~8시간 동안 꼼짝 않고 노트북만 봤더니 살이 절로 찌워졌다.

살과 바꾼 책이라고나 할까.

그래서 이참에 건강해지고 살도 빼고 두 가지 목적을 달성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 나의 문제는 여기서 시작되었다.

대개의 역사는 밤 또는 술로 빚어지는 일이 다반사이지 않은가

밤에 쓴 부끄러운 편지가 없었더라면 맺어지지 못했을 커플이 한 둘이 아닐 것이고, 술이 만들어 준 역사는 또 얼마나 많을 것인가 말이다.

요즘식으로 말하면 이건 F가 관장하는 영역일 텐데 MBTI는 ESTJ다. MBTI의 성향인지 그저 성격인지는 모르겠지만 보통 때의 나는 간결, 심플, 명확, 담백 이런 쪽을 선호한다.  

맥주라도 좀 들어가 줘야 조금씩 말랑말랑 해지고 객기 비슷한 것도 생겨서 사기충천도 해지고 할 텐데 며칠 금주상태인 나는 지금 머리도 마음도 몹시 뻣뻣하다.

이미 쓰는 건 완료된 책을 정말 출판되었으면 하는 출판사에 보내봤는데 일주일 만에 까였다는 연락을 받았다.

처음 책을 쓴 주제에 한 방에 될 거라고 기대한 것도 아니면서 기가 팍 죽는 건 어쩔 수 없다.

정신 차리고 플랜 B 플랜 C 열심히 덤벼봐야 하는데 머리도 마음도 뻣뻣한 자아 A가 자꾸만 냉정한 평가만 해대니 기운이 없다.

"괜찮아 또 해보면 되지 까이꺼" "넌 원래 잘하잖아"

맥주 마시고 말랑해진 자아 B가 마구 남발하는 무지개색 칭찬을 듣고 사기충천 해지고 싶다.

아우 진짜 갈증 난다.

4월2일 건강검진 끝나기만 해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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