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은과 정연이 사는 집 사이에는 빈집이 하나 있는데, 누가 살던 곳인지는 몰라도 깔끔하게 정리가 되어 있다. 사람이 사는 듯하진 않지만, 불과 몇 주 전만 하더라도 누군가 머물렀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빚쟁이한테 들켜서 야반도주라도 한 거 아니야? 낮은 담벼락 안으로 보이는 집 상태는 그렇게 착각하기 충분하다. 반 정도 열린 현관문 안으로 어지럽게 흩어진 신발만 보인다.
내가 어릴 때 이 집엔 어떤 부부가 살았다. 그때만 해도 여자 나이 스물다섯 살이 넘어가면 노처녀 소리를 들었으니, 어린 내가 아줌마 아저씨라고 부르던 그 사람들의 나이는 아마 서른 초중반이었을 거다.
아이가 없는 집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그 집 여자가 전생에 덕을 쌓지 못해서 애를 못 낳는 거라고 흉봤다. 결혼하면 애를 낳아야 하는 게 당연하던 시절.
그 부부가 다른 곳으로 이사간 이유는 모른다. 나이가 들어서 짐작해보건데, 사사건건 간섭하고 이래라 저래라 하는 소리를 듣기 싫어서였을 수도 있겠다. 애를 가지지 못하는 건지, 가지지 않는 건지 모를 아줌마는 주변의 시선을 부담스러워 했다.
놀라운 점이라면 그 당시 드물게 아저씨가 자기 아내를 끔찍하게 아꼈다는 점이다. 그들은 온다 간다 하는 말도 없이 어느 날 사라져 버렸다. 마을 사람들은 이런 예의 없는 경우가 어디 있냐며 자신들이 했던 간섭은 까맣게 잊은 채 부부를 욕했다.
그 뒤로 계속 비워져 있었을까? 그렇다고 하기엔 관리가 잘 되어 있다. 부부가 떠난 이후 줄곧 비워져 있었다면, 열린 현관문이나 안으로 보이는 신발이 저렇게 깨끗할 순 없다.
앞으로 걸어가면서도 시선은 빈집에 머물렀다. 고개를 돌리다 못해 아예 몸을 틀어야만 했을 때 다시 앞을 보았다. 정연의 집이 가까이 보인다.
어머니는 정연을 보고 기구한 팔자라고 말했다.
그는 어린 나이에 결혼했는데, 남편은 하루에 한 마디 하는 게 전부일 정도로 무뚝뚝하고 말수가 적었다. 하지만 당시 보기 드물 정도로 아내를 챙기는 마음이 컸다.
빈집에 살던 부부를 보면 세상에 저런 부부가 영화 속이 아닌 실제로 있었구나 놀랄 정도였다면, 정연이 결혼할 땐 아주 적긴 하지만 시골에서도 연애 결혼을 하는 사람이 있던 시절이었다.
유별난 정연 부부를 유독 눈꼴시려워 견디지 못하던 건 정연의 시어머니였다. 나이가 많고 적고를 떠나서 하나뿐인 귀한 아들이, 그것도 제 애비를 닮아서 말 한 마디 들으려면 열 번 이상 질문해야 했는데, 어디서 어떻게 사는지도 모르는 계집애한테 눈이 돌아가서 있는지도 몰랐던 시내의 꽃가게에서 꽃을 사다가 아내한텐 주고, 낳아서 고생하며 기른 지 엄마한텐 안 주고.
정연의 남편이 귀하게 자란 외동아들이라는 부분부터 이미 시집살이는 예정되어 있었다고 할 수 있겠다. 정연의 부모도 그 사실을 알았을 텐데 말리지 않은 이유가 뭘까. 둘 중 하나겠지. 그런 사소함을 신경 쓸 만큼 귀하게 키운 딸이 아니거나, 말려도 소용 없다는 사실을 잘 알거나.
어머니는 전자라고 예측했다. 정연네 집은 옆 마을에서도 알아주는 딸부자집이었기 때문이다. 맞이도 아니고 막내도 아니었다. 사이에 낀 딸이었고, 특별히 눈에 띄는 구석도 없는 몇 번째 딸.
집안의 대를 이을 것도 아니고, 농사일을 도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밖에 나가서 일한다고 해도 혼자 입에 풀칠할 정도만 버는데 옆에 끼고 있으면 축나는 게 귀한 쌀밖에 더 있겠나. 우연히 만난 적 있는 정연의 부모님은 짧은 말 한 마디에도 딸을 어떻게 대하는지 티가 났다. 니 남편 아니면 누가 너 같은 걸 데리고 살겠냐는 말에 화를 내는 건 정연이 아닌 정연의 남편, 즉 그들의 사위였다.
나는 이 사람을 결혼할 때가 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이 사람을 사랑하기 때문에 결혼하기로 마음 먹은 것이고, 만약 이 사람이 결혼하기를 거부했다면 나는 이 사람을 생각하면서 먼 미래에도 다른 여자와 결혼하지 않았을 거라고.
그 순간 골목 일대가 조용해졌던 기억. 지나가던 사람이나 주변에 살며 집으로 향하는 정연의 부모에게 인사하려고 고개 내민 사람이나 약속한 듯 입을 다물었다.
넘치고 넘쳐나는 딸에게 늘 하던 말을 했을 뿐인데 반박을 받은 정연의 부모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그쳤지만, 하나뿐인 아들이 말을 길게 하는 모습도 처음인데 그게 엄마가 아닌 다른 여자를 향한 사랑 고백이라는 사실을 듣고도 믿지 못하는 정연의 시어머니는 귀신이라도 본 듯 안색이 파랗게 질렸다.
엄청나게 시집살이를 겪는다는 사실은 아는데, 자세한 것까진 모른다. 가서 들어보면 알겠지.
미윤은 기왕 이렇게 된 거 정연의 집으로 찾아가 그의 입장도 들어보려고 한다. 현은처럼 혀 끝에 걸리는 말이면 그대로 다 뱉어내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는 보상금에 대해 할 이야기가 많을 거다. 아마도.
정연의 집 마당은 시멘트로 덮여있다. 잘 다듬어진 잔디와 아이들이 언제나 가지고 놀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장난감이 있던 걸로 기억하는데. 더 이상 마당을 뛰어놀 아이가 없어서 치우기 편하도록 바꿨나?
마당 한 가운데 우뚝 솟은 수도꼭지는 마치 집 꾸미기 게임에서 잘못 둔 아이템처럼 이상하고, 주변과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집은 ㄱ자로 되어 있고, 불투명한 시트지가 발린 유리창은 옆으로 밀어서 열고 닫는다. 대문 외엔 이렇다 할 현관문이 없어서 유리문을 옆으로 밀고 들어가면 된다. 그런데 대문까지 제대로 닫혀있지 않다니.
미윤은 속으로 혀를 내두르며 안으로 들어갔다. 낮은 담벼락 아래 말라비틀어진 화분 다섯 개가 나란히 놓여 있는 게 보인다.
신기할 정도로 기척이 느껴지지 않는다. 집에 없나? 가까이 가서 유리창을 두드릴까? 사실은 안에 있는데, 미끄러운 욕실에서 나오다가 노크 소리 듣고 넘어지면 어떡해? 나는 큼큼 목을 가다듬었다.
“계세요? 저 미윤인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