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by 이홍

아무도 없는 듯 조용하다. 혹시 어디 나가셨나? 정연은 차가 없어서 마을 밖으로 나가려면 버스를 타거나 다른 이웃의 차를 빌려 타야 한다. 중간에 현은의 집에서 잠시 그의 수다를 들어주긴 했지만, 연못 마을은 아주 넓진 않기 때문에 다른 집에서 차가 움직이면 소리가 그대로 다 들린다. 하지만 차 움직이는 소리는 듣지 못했는데.

다시 불러봐야 할까? 아니면 이대로 걸음을 돌려 열린 대문 밖으로 나갈까? 고민하고 있는 찰나, 녹슨 쇳소리와 함께 불투명한 유리문이 열린다.

“미윤이?”

“안녕하세요.”

“어, 그래, 잠시만.”

얼굴만 빼꼼 내밀고 불안하게 주위를 둘러보는 정연. 마당 가운데에서 더 다가오지도 못하고 뒤돌아 나가지도 못하는 나를 보고 가까이 오라고 손짓하면서 하는 말은 잠시만 기다리란다.

그는 누군가와 통화하고 있는지 오래 전 유행하던 기종의 스마트폰을 귀에 대고 있다. 나는 일단 오라고 손짓했으니 가까이 다가간다.

혹시 입모양이라도 읽을까 걱정됐는지 뼈마디가 툭툭 불거진 손으로 조심스럽게 입을 가리는데, 미윤은 그 모습에 어이가 없다. 무슨 대단한 이야기를 한다고 입을 가려? 게다가 안 보이게라도 가리면 말도 안 하지, 무슨 비밀을 말하고 있는지 몰라도 입 근처로 올라온 손이 부들부들 떨리는 건 확실하게 보인다.

조금 있으면 힐끔거리며 눈치도 볼 듯해서 못 본 척 고개를 돌렸다. 속으론 비웃음이 슬슬 나왔지만 어쩌겠는가, 원래 저런 사람인 걸.

정연은 소심하다. 아니 소심하다기 보단 지나치게 조심성이 많다. 살아온 세월을 생각하면 그에게 어울리는 건 소심이나 조심성이 아니라 억척스러움이다. 거의 유일한 버팀목이었을 남편을 일찍 보내고, 자식 둘을 키우면서 시어머니까지 모셨으니 당연히 성격이 드세질 수밖에 없다. 아마 그의 삶이 어떤 식으로 이어졌는지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 나와 같이 느낄 거다.

목소리까지 낮추며 속닥거리고 있는 그는 결국 안방으로 들어간다. 문까지 닫는 걸 보고, 여기 있으라는 건지, 밖으로 나가라는 건지 모르겠어서 일단 앉아있기로 했다.

주변에 산이 있는 연못 마을은 서울에 비하면 더운 축에도 끼지 못한다. 그렇다고 해서 에어컨이 켜진 남의 집에 있을 수 있는 상황을 구태여 거절할 필욘 없다.

미윤은 대충 거실로 보이는 곳에 앉는다. 이 집엔 소파도 없다. 티브이는 최신식이고, 화면은 한눈에 다 담기 어려울 정도로 넓지만, 그걸 보기 위해 편안하게 앉을 수 있는 자리는 쿠션이 다 꺼져서 한때 바닥에 까는 매트였지만 이젠 그 역할을 하지 못하는 지저분한 천조각 하나가 전부다.

거기에 누워서 잠도 자고, 식사도 하고,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모양이다. 언제 빨았는지 모를 누런 커버를 두르고 있는 베개는 푹 눌려있고, 거적대기인지 이불인지 모를 것은 벽 가까이로 밀려 있다.

그 자리에 앉고 싶지 않다. 집주인이 주로 머무는 공간이라서 예의를 차리려고 하는 게 아니라 그냥 거기에 닿고 싶지 않다.

방석 하나 놓이지 않은 맨바닥에서 주변을 둘러본다. 이 집은 꾸몄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있는 대로 살았다고 하면 맞을까?

방금 전 나름대로 인테리어에 공들인 현은의 집을 보고 왔기 때문에 느끼는 감정이라고 하기엔 정연의 집은 어수선하고 더럽다. 망가진 물건의 수명을 억지로 늘리기 위해 엉성하게 고친 기계가 털털거리며 큰 소리를 내는가 하면, 하루 이틀 쌓인 게 아닌 먼지가 새까맣게 앉은 선풍기 날개는 겨우 돌아가고 있다.

무언가 들어 있을 거란 생각은 들지 않는 택배 상자는 거실 구석에 잔뜩 쌓여 있고, 보기만 해도 벌레가 살고 있을 거란 추측이 가능할 정도의 젖은 상자도 많다. 게다가 아침 식사로 김치찌개를 먹었는지, 창문이 꽉 닫혀 있는 집안에 김치 군내가 풀풀 난다.

그냥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불쑥 고개를 들어 나를 괴롭히고 있을 때, 정연이 안방에서 나온다.

“미안해. 아들이랑 통화하느라고.”

말은 그렇게 하면서 여전히 나를 보지 않는다. 거실에 우두커니 앉은 나를 지나쳐 바로 부엌으로 향한다. 이쪽을 힐끔거리며 무언가 확인하고 싶은 눈치다. 자꾸 시선이 느껴져 쳐다보면 하면 안 될 짓이라도 했다가 들킨 사람처럼 화들짝 놀라서 고개를 돌린다.

말할까 말까 고민하는 듯 입술을 우물거릴 때마다 볼에 깊게 파인 주름이 울렁거린다. 눈동자가 불안하게 흔들리는 걸 보고, 미윤은 또 모르는 척하기로 한다.

“커피라도 줄까? 그런데 우리 집엔 믹스...”

“아뇨, 안 주셔도 괜찮아요.”

“그래도 손님인데, 마실 거라도 대접해야지.”

“그럼 물 한 잔만 주시겠어요?”

커피는 아까 마셨다고 말하려다가, 솔직히 그건 마신 게 아니라 입만 잠깐 대본 거란 생각에 입 다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정연은 꽃무늬 색이 바랜 접시 위에 색이 덜 우러난 보리차를 올려서 가져온다.

목이 마르진 않지만 일단 내밀어주는 걸 한 모금 마신다. 맛도 밍밍하고, 차갑지도 않다. 이제 막 냉장고에 넣은 모양이다.

정연은 일단 다가와 내 앞에 앉았지만, 어쩐 일로 왔냐, 혹시 마을 회관에서 지내는 게 불편하지 않냐 같은 인사치레도 하지 않는다. 대놓고 눈치 보진 않지만, 누가 봐도 눈치 보고 있는 모습이긴 하다.

이 상태에서 보상금에 대한 얘길 하면 절대 입 열지 않을 게 뻔하다. 미윤은 미적지근하다 못해 물비린내가 나는 듯한 보리차를 마시려다가 컵을 내려둔다. 그리고 눈치만 보고 있는 그에게 조심스럽게 묻는다.

“혹시 옆집에 사람 살았어요?”

“어?”

“아, 제가 마을을 워낙 오래 떠나있었잖아요. 그래서 온 김에 여기 저기 둘러보려는데, 요 옆집에 꼭 누가 살던 것 같아서요. 제가 알기로는...”

“그래, 예전에 미윤이 네가 여기서 살 땐 아이 없는 부부가 살았지.”

정연은 뜬금없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단 표정으로 경계하고 있지만, 맞장구는 쳤다.

“세상에, 결혼하고도 애를 안 낳다니. 요즘이야 뭐, 젊은 것들 다 그러고 산다지만... 그 부부는 말도 안 하고 이사 가버렸잖아? 한 동네에 살았으면 떠난다고 말 한 마디라도 할 법한데, 하여간...”

정연은 혀를 쯧쯧 차며 자기 몫으로 가져온 보리차를 꿀꺽꿀꺽 마신다. 그리고 미윤을 바라보는데 경계하는 눈초리가 많이 누그러진 상태다.

“그 다음에 사람 없다가, 얼마 안 됐을걸? 아직 오 년도 안 됐으니까. 태어나기를 서울에서 태어나서 지금까지 서울에서만 살았다던데. 그쪽도 부부였어. 뭐라고 하더라? 귀농하겠다고 하던가? 그래서 왜, 저기 연못 근처에 집 두 채 있고, 그 뒤에 논 있잖아. 거기도 같이 살 생각으로 왔대. 그러다가 없어졌다?”

“없어져요?”

“그래! 어디 쫓기는 사람처럼! 어느 날 보니까 없어졌다니까! 그런데 웃긴 건 가끔 집에 오긴 하는 거 같아. 어느 날은 현관문이 열려 있고, 어느 날은 닫혀 있고 그래. 사실 저 집도 애가 없거든. 애 없이 농사 지으면서 산다는데 그게 말이나 되는 일이니?”

정연은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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