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의 이야기
나때는 그러지 않았어. 아이는 무조건 있어야 하는 거지. 내가 농사 얘기하면서 애 낳아야 한다고 말하긴 했지만, 솔직히 애한테 농사시킬 건 아니더라도 훗날을 위한 대비는 해놔야지. 내가 평생 사는 건 아니잖아. 내가 죽으면 제사는 누가 해줘? 지금은 해야 한다면 밖에 나가서 폐지 줍는 시늉이라도 할 수 있지만, 그것마저 못하고 드러누워버리면 어떡해? 적어도 밥 먹고 살 수 있을 정도의 돈은 필요하잖아.
나는 자식 낳는 것도 미래에 대한 투자라고 생각해. 물론 키울 땐 힘들지. 그래도 혼자 쓸쓸하게 늙어 죽는 것보단 나으니까.
다들 오래 같이 살겠다고 서약하고 결혼하지만, 실제로 늙어 죽을 때까지 같이 있는 부부가 어디 있니? 나도 내 남편이랑 결혼할 땐 평생 함께 살 줄 알았어. 그래, 솔직히 그때만 해도 애 낳을 생각은 크게 없었지.
그냥 나를 그렇게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기나 했나, 내 부모도 나를 그렇게 아끼지 않았어. 평생 그 사람 하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 지금까지도 그랬지만, 앞으로도 내 인생에 그런 사람은 없을 거야.
애 낳은 건 원해서 낳은 게 아니라 시어머니가 하도 닦달해서 낳았지. 여자가 남자 집안에 들어왔으면 대를 이을 생각으로 노력해야지, 뭐하고 있는 거냐고.
지금이었으면 어림도 없는 말이지만 그땐 아니었잖아. 남편은 영 못 마땅해했어. 나랑 둘이 있는 시간을 즐기고 싶다나? 그때 내가 뭐라고 했는지 아니? 이제부터 쪼글쪼글 다 늙어 죽을 때까지 평생 보고 살 텐데 뭘 그러냐고...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시어머니한테 미운 소리 듣기 싫었어. 빨리 낳고 빨리 기른 다음 우리끼리 알콩달콩 살자고 설득했지. 사실 설득이라고 할 것도 없이 그 사람은 내가 하자면 하는 사람이니까. 그런데 그렇게 갈 줄 누가 알았겠니.
그래도 내 자식이니까 예뻤지. 가만히 보면 그 사람 얼굴이 보이는데, 그게 너무 가슴 설레고 좋은 거야. 나는 은근슬쩍 셋째 얘기를 꺼냈는데 남편은 싫다고 했어. 애 낳는 게 쉬운 일도 아니고, 키우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데 딱 둘이면 된다고. 사실 남편은 하나면 됐다고 했는데, 아무래도 하나만 있으면 애가 심심할 거 같아서...
웃긴 건 낳고 나니까 내가 겪었던 일을 그대로 애들이 겪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다는 거야. 나는 사람한테 부대끼면서 자랐잖아. 첫째도 아니고, 막내도 아니고, 그렇다고 특출나게 뭔가 하나를 잘하는 애도 아니고.
그림자처럼 살았지. 부모가 나를 볼 때 눈빛이 있어. 얘 이름이 뭐였더라, 생각하는 눈빛. 그들이 나를 어떻게 대하는지 알고 있기 때문에 속상하지도 않았어. 오히려 내 이름을 바로 말하면 놀랄 정도였지.
근데 내 자식은 그렇게 키우기 싫은 거야. 그때 당시에 남편한테 땅이 있었는데, 시어머니는 거기에 농사지으면서 먹고 살길 바랐어. 나는 그게 싫었지.
요즘이야 농사한다고 하면 나라에서 일할 사람 구해주고 그러는데, 그땐 농사 안 하는 사람이 없고, 죄다 밭 일구고 논 갈아가며 살았으니까. 사람 구할 돈이 어디 있어? 그래서 그때는 무식하게 애만 줄줄 낳은 거야. 그거 대충 키워놓으면 농사할 때 손 하나라도 거들 테니까.
나는 내새끼 그렇게 키우고 싶지 않았어. 당연히 그런 취급을 받으며 살아야 하는 줄 알았는데, 남편이 그렇지 않다는 걸 알려준 거야.
농사 말고 다른 거 하자고 했지. 땅 팔아서 중고차 사자고. 트럭을 사면 뭘 하더라도 될 거라고. 알잖아, 이 마을 교통 험악한 거. 참 웃기지. 내가 하는 말이면 받아주는 거 아니까 어릴 때 못 부렸던 고집 한번 세우고 싶었나봐.
그 땅 팔았을 때, 시어머니가 얼마나 울던지. 그 귀한 걸 팔았다고. 누가 보면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땅을 판 줄 알았을 텐데, 그거 우리 남편이 일해서 조금씩 사둔 거였거든.
지금 생각하면 그냥 농사나 지으면서 살 걸 그랬어. 그럼 우리 남편도 지금쯤 나랑 같이 늙어갔을 텐데...
흔하지도 않은 차 사고로 죽었잖아. 안전벨트 하라곤 하지만, 그때 누가 그런 걸 했겠어. 가슴 조이고 답답하니까 안 했지. 그 사람 꼭 나한텐 해주고, 자기는 귀찮다면서 안 했는데 그게 문제였지.
사고가 났는데 나한테 절대 남편을 안 보여주는 거야. 시어머니는 사고 소식 듣자마자 쓰러져서 병원 가고, 애들끼리 집에 있고. 그때 우리 둘째가 막 국민학교 들어갈 때였거든.
듣기로는 사람이 차 밖으로 튕겨져 나갔다는데, 나는 그게 가능한가 싶으면서도 머릿속이 막 복잡한 거야. 당장 드러누워서 내 남편 보여달라고 울어야 할지, 시어머니가 계신 병원에 가야 할지, 애 둘만 남은 집으로 돌아가야 할지...
그때는 너무 바빴어. 그렇게 남편 죽고, 돈 버는 일은 고스란히 내가 해야 했거든. 근데 무슨 기술이 있어야지. 집에서 빨래하고 설거지하는 것도 지금이나 사람 불러다가 돈 쳐주고 쓰는 거지, 그때는 집에 여자가 있으면 그거 다 여자가 해야 하는 일이었어.
덜 자란 애들을 안 먹일 순 없잖아. 그래서 시내로 나갔지. 그땐 버스비도 아까워서 그냥 아침 일찍 일어나서 걸어갔다가 걸어오고 그랬어. 겁도 없지, 가로등 하나 제대로 서 있지 않던 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 줄 알고...
나는 내가 그렇게 일해서 돈 벌어오면 시어머니가 애들 챙기겠거니 생각했다? 그런데 그 양반이 마을 돌아다니면서 사람만 보이면 붙잡고 며느리 잘못 들여서 내 귀한 아들 죽였다고, 사람 잡아먹는 년이라고 욕하고 다녔다는 거야.
애들은 또 그걸 말도 안 하더라. 첫째가 중학교 들어가면서 도시락을 싸가는데, 하루는 내가 일하던 식당에 사람이 많이 찾아온 거야. 끝나고 너무 힘들어서 버스 타고 집으로 왔지. 들어오는데 김치 냄새가 막 나서 보니까, 글쎄 우리 큰애가 부엌에서 김치 썰어서 자기 도시락에 넣고 있는 거야. 시어머니는 보이지도 않고, 둘째는 세상 모르게 잠들어 있고. 그러니까 큰애가 작은애 재운 다음에 자기 도시락 싸고 있던 거지.
세상 천지가 뒤집히는 기분이 뭔지 그때 처음 알았다. 아이한테 내가 해줄 테니까 들어가서 자라고 말하고 도시락 반찬을 싸는데, 눈물도 안 나는 거야. 그래, 그땐 그랬지. 애들이 농사 거드는 거 싫어서 농사하지 말자고 했는데, 결국 그거 때문에 남편은 죽고, 애들은 자기 앞가림하려고 하고. 그 작고 어린 게...
그 뒤로 바로 식당 관두고, 집에 눌러앉았어. 가끔 할머니들이 구해오는 일감 있으면 옆에서 돕고 얼마 받아서 한 끼 먹고 그랬지.
그래도 시어머니가 그렇게 욕하고 다녀서 도움된 건 있었다. 한두 번이면 모르겠는데, 입에 침이 마르도록 욕하니까 오히려 내가 불쌍하다는 식이 된 거야.
그 점을 잘 이용했지. 막 나라 커간다고 젊은 애들 다 서울로 올라가던 시절이라, 남의 집 농사에 손이 부족할 때가 많았어. 거기 가서 일하고 돈 받고...
시어머니가 나를 죽도록 괴롭혔지. 자기 아들 잡아먹은 년이라고. 온갖 생트집 다 잡아가며 짜증내는데, 그래도 견디고 살았다. 애들 때문이 아니라 남편 때문에. 그 사람을 키운 부모인데 어떻게 화를 내겠어.
마음이 왔다갔다하는 건 어쩔 수 없었지. 차 사고를 내가 낸 것도 아닌데 이렇게 참고 살아야 하는 이유가 뭘까 싶다가도 입장 바꿔서 내 아들이 그런 일 당했다고 생각하면 저 정도 반응은 양반이지 싶고...
그러다가 노인네가 병을 얻어가지고 쓰러졌는데, 그거 병원 보낼 돈이 없어서 내가 똥기저귀까지 갈아주고 그랬어. 평생을 욕만 하다가 죽기 전에 딱 한 마디 하더라. 자기가 그렇게 모질게 굴어서 미안했다고.
근데 그때는 마음이 왔다갔다하는 것도 없었어. 연못 마을 근처에 묻혔는데, 나는 묻어놓고 찾아간 적이 없어서 이젠 어딘지 기억도 안 나.
방금 전까지 둘째랑 통화했는데, 어휴... 애비 없이 자란 게 안타까우면서도... 만약에 내가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 애를 낳았을까, 싶어. 첫째도 그렇고... 그냥 애 낳지 말고 남편이랑 둘이 살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