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자식을 낳지 않고 살 거라고 말하는 정연의 목소리는 무겁게 들린다. 시신을 보여주지 않으려고 할 만큼 처참한 모습의 남편을 멀찍이 두고 시어머니께 가야 하는지 집에 둘만 남은 자식들에게 가야 하는지 고민하는 순간부터, 남편에게 땅을 팔고 차를 사자고 했기 때문에 사고가 난 거라는 죄책감은 감히 꺼내보지도 못할 감정이 되었겠지.
애를 낳지 않겠다고 말한 게 진심이든 아니든, 그 말을 꺼낸다는 자체가 남편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을 꺼내볼 수 있는 거란 생각을 한다. 미윤은 굳이 더해줄 말이 없어서 고개만 끄덕였다. 죄책감이고 뭐고 내 착각이라면 마는 거고.
정연은 여전히 깊은 생각에 잠긴 눈을 바닥으로 향하며 중얼거린다.
“그래도... 이미 낳은 걸 어떡해. 잘 키웠으니 됐다고 생각해, 나는. 큰애도 그렇고 작은애도 그렇고, 시간 날 때마다 시골 사는 부모 찾아오고 연락하는 게 어디 쉬운 일이니? 가뜩이나 길도 좋지 않은데. 오는 건 좋은데, 와서 얼굴 보고 얘기하는 건 좋은데, 왔던 길이랑 다시 가야 할 길을 생각하면 영 마음이 안 좋아.”
“......”
“사실 그래서 이사를 가야 하나 생각은 했어.”
“이사요?”
“그게, 생각만 했다는 거지. 진짜로 가려는 게 아니라. 오해하진 말고.”
오해하고 말고 할 게 없단 말을 하려다 입을 다문다. 지나온 세월을 생각하고 있자니 하고 싶은 말이 목 끝에 간질간질하게 걸리는 모양이다.
정연은 소심하다. 살아온 삶을 보면 ‘억척스럽다’는 말이 떠오른다. 그의 행동 때문이 아니라 당시 마을 어른들의 반응이 그랬다. 사람이 저렇게 억척스럽게 산다고. 그의 성격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단 걸 알면서, 오히려 동조하면 동조했지, 아니라고 하는 사람은 없었다.
“근데 이사는 뭐, 내가 하고 싶다고 하면 할 수 있나? 돈이 있어야지. 자식들 여기까지 오는 거 힘들다고 다른 준비도 없이 무작정 올라갔다가 오히려 부담 주면 어떡해. 사람이 나이가 들수록 스스로를 챙길 줄 알아야 하는 거야. 자식한테 기대겠다는 생각으로 살면 점점 추하고 초라해져. 그걸 아니까 내가 자식들 사는 근처로 가기가 힘든 거야. 집값이고 뭐고, 좀 비싸야지.”
“수도권이 좀 그렇죠.”
“게다가 올해 우리 손주가 고등학교 삼학년이거든. 우리 첫애가 똑부러졌는데, 어쩜 그렇게 자기 엄마를 쏙 빼닮았는지, 학교에서도 공부를 그렇게 잘해서 다 장학금 받아서 대학 간다고 생각한대. 아휴, 내 딸도 그냥... 엄마한테 부담 안 주겠다고 그렇게... 내가 학교를 제대로 다녀본 것도 아니고, 자식들이 나한테 손 벌려가며 학교 생활한 거 아니지만... 등록금만 낸다고 끝이 아니라는 건 알지. 하다못해 배고프면 라면이라도 먹어야 할 텐데, 이제 갓 성인된 애들이 라면으로 배가 차겠어?”
“그렇긴 하죠.”
“만약 배가 찬다고 해도 나는 싫어. 애들이 잘 챙겨 먹었으면 했으니까. 뭐 하나를 먹더라도 든든하게 먹어야 하고 싶은 일도 잘하는 거지. 그래서 몇 푼 안 되는 돈이라도 꼬박꼬박 쥐어주고 그랬는데... 요즘엔 몸이 예전 같지 않아. 돈 벌어야지 하고 움직일 땐 모르다가 다 끝나고 앉으면 그 자리에서 사흘 앓고 그런다니까.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덜컥 자식들 옆으로 가면 어떡해.”
느리게 눈을 감은 정연은 마치 꿈속에 잠긴 듯 낮고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주변이 조용함에도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들리지 않을 목소리다.
“미윤이 너는 모르겠지만, 내 부모가 그랬잖아. 나야 뭐, 돈도 없고 남편도 그렇게 죽었으니까 버린 자식 취급했지. 그 덕에 몹쓸 꼴은 안 당했잖아. 첫째 언니였나? 그렇게 돈 타령을 했대. 그 언니가 똑똑하고 야물딱져서, 여자가 일해서 돈 벌기 힘들었던 시기에도 벌이가 있었거든. 그렇게 모은 돈을 다 뺏어갔다던가, 뭐라던가... 연락 잘 안 해서 자세한 건 모르는데 하여간 그렇대. 나는, 어후, 그렇게 사는 거 생각하기도 싫다, 정말.”
그런 얘긴 처음 듣는다. 연못 마을처럼 좁고 사는 인구가 별로 없는 지역에선 아주 작은 일도 큰 소문이 되어 번진다.
정연의 남편이 정연을 무척 아꼈다는 사실은 마을 사람들이 다 알고 있다. 하지만 정연의 친정집에서 일어나는 세세한 일까지 관심 가진 사람은 없다. 왜냐하면 그런 관심을 가지기도 전에 정연의 남편이 차사고로 죽었기 때문일 거다.
“우리 딸은 손주가 고등학교 삼학년이라고 했잖아? 우리 아들은 이제 곧 결혼해. 사실 결혼한거나 다름 없다고 생각하고 살 정도로 오래 만난 여자친구가 있는데, 얼마나 착하고 성실한지. 내가 세상에 그 애만한 여자가 없다고 할 정도였다니까. 결혼은 언제 하나... 은근히 기다리고 있는데, 둘이 드디어 같이 살겠다고 하더라고. 또 내가 아들 장가가는데 빈손으로 보낼 순 없잖아. 우리 딸 결혼할 땐 내 몸이 이렇진 않았거든. 오늘 일하고, 내일 일하고, 그 다음날까지 일해도 아픈 적이 없었어. 여자애가 빈손으로 시집가면 시댁에서 얼마나 미워하는지 아니? 있는 살림, 없는 살림 박박 긁어서 우리 딸 손에 쥐어준 이유가 그거야. 요즘은 남자애들도 마찬가지잖아. 게다가 그렇게 오래 만났는데 예의는 차려야지. 사실 그래서...”
머뭇거리던 정연은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가까이 다가온다. 미윤은 반사적으로 뒤로 물러서려다가 멈칫했다. 말하는 그의 입에서 단내가 풍긴다.
“나는 보상금 좀 기대하고 있어.”
“아...”
“손주도 챙기고 아들도 챙기려니까 애매하긴 해서 망설였거든. 그런데 세상에, 그 많은 돈을 주고도 거기에 돈을 더 얹어준다잖아. 솔직히 반대하는 사람들은 좀... 이해가 안 가긴 해. 이 마을에 뭐가 있다고... 미윤이 너, 이런 얘기 내가 했다고 말하면 안 된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저기 저... 알잖아, 들으면 집으로 득달같이 달려와서 뭐라고 할 사람들.”
일단 두 명은 확실하게 집을 팔 생각이 있다는 거다. 이런 일은 사람 수가 많아야 좋다. 최대한 말로 설득하는 게 최고지만 이도 저도 안 된다면 쪽수로 밀어붙이는 방법도 있으니까.
정연은 일단 말하고 난 뒤 찜찜함을 느꼈는지 우물쭈물거렸고, 미윤은 이 집을 나서면 다음으로 어디 가야 할지 생각하느라 조용하다.
침묵이 길어질 듯한 예감이 들던 그때, 갑자기 이장 집이 있는 방향에서 큰 소리가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