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by 이홍

정연은 화들짝 놀라며 어깨를 움츠렸다. 미윤은 그런 정연을 보고 자신도 어깨를 움츠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물건이 떨어지거나 부딪칠 때 나는 큰 소리였다면, 누군가 가보겠거니 하고 가만히 앉아 있었겠지만, 들린 건 이장의 목소리다. 비명에 가까울 정도로 고함치는 소리가 조용한 마을을 쩌렁쩌렁 울린다.

우리는 시선이 마주치자마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슬그머니 고개를 돌린다. 자리에서 먼저 일어난 건 정연이다. 그는 뚜벅뚜벅 걸어가 조심스럽게 유리문을 옆으로 민다. 마치 밖에 있으면 안 될 것이 있는 듯.

답답한 마음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미윤은 정연이 고개만 빼꼼 내밀 정도로 틈만 낸 유리창을 확 밀어낸다. 놀란 집주인이 “어머!” 소리치는 사이, 신발을 대충 구겨 신고 대문 밖으로 나간다.

이장의 집은 정연의 집 바로 앞에 있다. 오래 사용하지 않은 뒷문을 묶어둔 자물쇠가 붉게 녹슬어 있다. 집 등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여기 서 있는다고 해도 알 수 있는 게 없다.

미윤은 허리를 굽혀 구겨 신은 신발 뒤꿈치를 밖으로 빼낸다. 그 사이 질질 끄는 소리를 내는 슬리퍼가 옆에 선다. 정연의 발톱은 언제 잘랐는지 모르겠을 만큼 길고 두껍다.

다시 허리를 세우면서 슬쩍 고개를 돌리면, 누구보다도 연못 마을을 사랑하는 현은이 나와 있다. 오래간만은 아니겠지만, 원래 가까운 곳에서 일어나는 소란은 언제나 즐거운 법이다.

나는 그대로 정연의 집 현관을 나선다. 마을 입구에 가까운 오른쪽 길을 돌아 이장의 집 앞으로 갈 생각이다.

정연은 발바닥이 대문 안에 붙은 듯 움직이지 않는다. 자신의 집에서 고개만 내밀고 있던 현은은 어느 순간 달려와서 내 뒤를 쫓는다.

“무슨 일이야?”

“저도 모르겠어요.”

큰 소리는 계속 난다. 그의 집 뒤에서 들었을 땐 혼자 떠드는 줄 알았는데, 가까이 가보니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작게 들린다.

어디서 들어본 적 있는 듯 낯설진 않은데 그렇다고 아주 익숙하지도 않다. 누구더라? 흐릿하게 인상이 떠오르기 전에 걷는 속도가 점점 더 빨라진다.

“저, 진정하시고요...”

“진정하게 생겼어? 이 집은 절대! 절대 안 팔 거라니까!”

바닥을 쿵쿵 구르며 화내는 희운 옆에서 몹시 수상하다는 표정을 지은 영연이 보인다. 맞은 편에서 어쩔 줄 몰라하고 있는 건 서울에서 온 여자들이다.

언제 왔지? 마을로 차가 들어오면 당연히 알아챌 거라고 믿었는데, 그렇지도 않은가보다. 하긴, 이 마을이 조용하긴 하지만 나는 원래 차가 많은 곳에서 사는 사람이고, 차 움직이는 소리 듣는 게 날아가는 새 우는 소리 듣는 것보다 쉽다.

너무 익숙해지면 잘 들리지 않는 법이지. 여자들 근처엔 차가 보이지 않는다. 회관에 세워놨나?

“나는 평생, 내 이 한 목숨이 다 할 때까지 여기 붙어 살 거니까 가, 이제.”

“그게...”

“가라니까!”

“아이고, 깜짝이야!”

미윤의 뒤를 따라오던 현은이 놀라서 소리 지를 정도로 희운의 목소리가 크다. 바로 앞에서 들은 여자는 동그란 안경이 콧대를 타고 조금 내려올 정도로 고개를 푹 숙여 사과한다.

“죄송합니다...”

“잠깐만. 당신 좀 이상해.”

옆에 서서 눈만 흘기며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던 영연이 희운의 어깨를 잡아 당기며 자신이 있는 방향으로 몸을 돌리게 한다.

그는 아내가 시키는 대로 몸을 돌리지만 고개는 그대로 앞을 향하고 있다. 어깨만 삐딱하게 돌아간 상태에서 영연을 마주 보지 않으려고 하는 행동은 누가 봐도 이상하다.

그래도 영연은 거기까진 눈감아 줄 모양이었나보다. 어이없다는 듯 웃음을 터트리지만 자기를 똑바로 보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 문젠 그 다음이다. 그는 눈동자만 굴려 아내를 쳐다보고, 어깨에 얹은 손을 쳐낸다. 마치 지저분한 파리를 쫓아내는 듯.

답지 않게 남에게 소리치는 행동이나 자꾸만 눈치를 보고 피하려고 하는 게 영 이상했는지 영연은 팔짱을 끼고 희운의 얼굴을 빤히 쳐다본다.

“이상해.”

“뭘 이상해.”

“당신 뭐 숨기는 거 있지?”

“숨기기는 뭘 숨겨! 빨리 저 여자들이나 가라고 해!”

“아니, 이 더운 날에 서울에서 여기까지 온 사람들을 물 한 잔 안 주고 쫓아내는 법이 어디 있어?”

“물은 무슨. 그것도 자격 있는 사람이나 마시는 거지, 남의 마을 없애려고 하는 사람한텐 여기서 나는 물 한 방울도 못 줘! 아니 안 줘!”

어머, 왜 저래... 어느새 미윤의 옆으로 다가온 현은은 입을 가리며 옆 사람만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작게 중얼거린다. 그 끝으로 묻어나는 흥미로움은 감출 수 없다. 아니면 감출 생각을 아예 하지 않거나.

얼핏 보면 부부싸움이 일어나기 직전이다. 하지만 영연은 주변을 둘러볼 줄 아는 사람이다. 사실 그런 눈치가 없다고 해도, 연못 마을에서 산 세월이 얼마인데, 여기서 희운에게 맞서 싸운다면 소문이 나는 건 반나절도 걸리지 않는다.

할 말을 가득 모아 뱉어내듯 한숨을 푹 쉰 영연은 동그란 안경을 콧대 위로 올리는 여자를 향해 말한다.

“뭐라고 하려 했는지 말해봐요.”

“예?”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했길래 저 양반이 저렇게 날뛰느냐고요.”

희운은 입을 꾹 다물고 서울 여자들을 본다. 그 어떤 것도 알리지 말라는 듯 노려보는 눈빛이 사납다.

그 모습을 보고 동그란 안경을 쓴 여자는 고개를 돌렸지만, 이목구비가 큼직하고 눈이 큰 여자는 아무렇지도 않게 손에 들고 있던 테블릿pc를 툭툭 두드리며 말한다.

“집이 한 채가 아니라 두 채이기 때문에, 저희가 앞서 말씀드린 보상금보다 더 많이 받으실 수 있다고 말씀드리려고 했습니다.”

“집이... 뭐요?”

“두 채요. 지금 이장님 댁은 집을 두 채 가지고 계세요.”

검지로 화면을 위로 밀어 올리다가 어느 부분에 멈춰서서 영연에게 보여준다. 뭘 보여줬을까. 아마도 집에 관한 거겠지.

눈으로 보고도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 못 알아듣겠다는 듯 희운을 향해 고개를 돌리는 영연의 표정이 멍하다.

“저번에 저희 쪽으로 보내주신 자료가 있어서요. 그때 물어보신 보상금액에 대해 따로 말씀드린다는 걸 잊었습니다.”

“그, 그래서 오늘이라도 전달 드리고자 직접 내려왔습니다. 저번에 말씀드렸어야 했는데, 죄송합니다.”

이목구비가 큼직한 여자가 말하니 동그란 안경을 쓴 여자도 용기를 얻었다는 듯 말을 잇는다.

희운은 빨갛게 손자국이 나도록 이마를 벅벅 긁다가 “에이, 씨발!” 하더니 집안으로 들어가 버린다. 넋이 나간 듯 멍하니 있는 영연의 상태를 살피려는데, 옆에서 누군가 내 옷을 당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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