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현은은 석혁의 침묵이 못마땅한 듯 집요하게 캐묻는다.
“그러니까 아저씨는 아저씨 자식들이 아저씨를 모실 거라고 생각하시냐고요.”
“지들이 그러겠다고 하잖어.”
“그걸 믿어요? 이건 순진하다는 말도 못해요. 그런 건 나이 어릴 때나 듣는 말이지, 나이 먹고 그렇게 행동하면 멍청하다는 소리 듣는다고요.”
“그만 좀 해.”
“그리고 애들이 그렇게 아저씨 생각헀으면 이미 모셔갔지, 지금까지 있었겠냐고요. 그거 다 보상금 탐나서 그런 거라니까.”
석혁이 대차게 노려보지만, 현은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그러자 듣다 못한 정연이 조심스럽게 한 마디 얹는다.
“아무리 그래도 어르신인데, 말씀이 너무 지나치신 거 아녜요?”
“무슨 소리야? 나야말로 진심으로 아저씨 생각해서 말하는 거지. 자식이라는 것들이 지 애비 돈만 쏙 빼먹을 게 눈에 뻔히 보이는데, 가만히 있으라고?”
“그게 아니라, 그렇게 지나친 추측은 하지 말자는 거죠. 정말로 편안하게 모시고 싶은 마음이면 어떡하려고 그러세요.”
정연의 말을 들은 현은은 어이가 없어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그를 빤히 바라보다가 벌렸던 입을 다문다.
솔직히 현은이 그렇게 석혁을 생각하는 사람은 아니다. 말하는 투만 봐도 그렇고, 평소엔 잘 챙기지도 않고, 술을 입에 달고 산다는 이유로 종종 사람 취급도 안 한다. 그런데 집 파는 얘기가 나오니까 갑자기 그를 무척 생각하는 듯 말하는 게 웃겼다. 나도 웃긴데, 평소 현은의 태도를 알고 있는 마을 사람들은 얼마나 웃기겠는가.
“저도 솔직히... 팔 수 있으면 팔아버리고 싶은 심정인데.”
그렇게 말한 정연은 혼자 화들짝 놀라서 눈을 크게 뜨고 아랫입술을 세게 깨문다. 속으로만 생각하려고 했는데 얼떨결에 입 밖으로 흘러나온 모양이었다. 그러나 이내 당당한 표정을 짓는다.
원래 소심하기 짝이 없는 사람이다. 누구 한 사람 붙잡고 신세한탄 하고 나서도 괜한 소릴 했나 걱정 들어서 밤새 뒤척거릴 사람인데. 그러니 울컥 튀어나온 말을 주워 담을 수도 없고 그럴 능력도 없다. 차라리 당당한 척하는 게 나을 거란 판단을 내린 거다.
그 다음이 가관인데, 싸움이 날 게 뻔해도 말리지 않던 희운이 그건 아니라는 듯 손을 휘적거리며 말한다.
“아휴, 그만들 하세요. 여기서 집 팔고 싶어 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안 그래요?”
미윤은 시선을 피한다. 그의 말은 강요나 다름없다.
“다들 이 마을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마음이 똑같은데, 누가 없어지는 걸 바라겠냐고요.”
정연은 이장의 가식적인 말투를 들으며 그를 힐끔거린다.
“하지만 서울 여자들 말로는...”
“그러니까 고향을 함부로 버리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어이가 없다. 이장 집에서 집을 파네 마네 하는 문제로 세상 뒤집어진 듯 싸운 걸 여기서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단 말인가.
미윤은 자신도 모르게 풉 하고 튀어나오려는 웃음을 참았다. 어금니에 꽉 씹힌 입 안쪽 살이 아렸지만, 힘을 풀면 어이가 없는 상황에 깔깔 웃어버릴 듯했다.
그 사이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난 건 현은도, 정연도 아닌 눈이 퉁퉁 부은 영연이다.
“뭐야? 그럼 집 얘길 왜 했어?”
“집 얘길 하긴 누가 해. 사람 많은데 창피하니까 좀 가만히 있어.”
“가만히 못 있어!”
“아니, 저 여편네가!”
“당신이 그런 식으로 미리 알아봤을 줄 알았으면 나도 첫째한테 얘기 안 했지!”
“뭐? 애한테 뭔 얘길 했어!”
“뭘 얘기하긴! 니 아빠가 곧 집 팔아버릴 거라고 했으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했지!”
“그런 걸 나랑 상의 한 마디 없이 말하면 어떡해?”
“당신은 언제 나랑 상의하고서 그 서울 여자들한테 말했어?”
빽빽거리는 두 사람의 목소리가 높아진다. 석혁은 이 자리에서 더 얻을 것도 없고, 자기 할 말은 다 했으니 됐다는 듯 냉장고를 열어 맥주 세 캔을 챙긴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회관 밖으로 나서지만 그를 말리는 사람은 없다.
나는 짜증이 올라오다 못해 담배가 간절해진다. 빨리 끝내고 다들 나갔으면 좋겠단 생각은 했지만, 이런 식으로 귀청 따갑게 떠드는 소리를 듣고 싶었던 건 아니다.
타인을 향한 비난이 담긴 말은 아무리 낮추고 조심스럽게 꺼내도 듣는 귀에 날카로운 상처를 남기는 법이다. 그런데 목소리를 높이고 있으니,머리끝까지 짜증이 절로 차오른다.
하지만 미윤은 조용히 있는다. 저런 난장판에 끼어들고 싶지 않다. 현정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자리에서 일어나 부엌으로 들어간다. 곧 고소하고 달달한 믹스 커피 냄새가 풍기지만 그가 들고 나오는 잔은 하나다.
아니다. 부엌 밖으로 나오는 듯하다가 다시 안으로 들어간다. 차라리 싱크대에 기대 서서 커피를 마시겠다는 심보다. 저걸 다 마시면 컵만 덩그러니 남겨놓고 밖으로 나갈 게 뻔하다. 당연히 사용한 컵을 닦을 생각은 하지 않겠지.
이장 부부는 다시 목소리를 높이며 싸우고, 현은은 정연에게 아까 한 말이 뭐냐고 따져 묻는다.
“근데 팔 수 있으면 팔고 싶다는 게 대체 무슨 말이야? 그런 막말하는 거 아니지. 여기서 나고 자란 자식들 생각은 안 해?”
“그 자식들 생각하니까 팔고 싶다는 거예요. 안 그래도 우리 애들 지금 돈 들어가야 하는 일 천지인데, 엄마 된 사람이 도움도 못 주고. 얼마나 속상한지 아세요? 그리고 우리 애들은 정말로 내 걱정 많이 해서 탈이에요. 여기까지 매번 찾아오게 하는 것도 미안한데, 차라리 잘 된 일이지.”
“그 애들은 여기가 고향이야, 고향.”
“도대체 언제적 얘기야...”
“뭐라고?”
“그건 여기 근처에 살면서 이 근방에서 돈 벌어 먹고 사는 사람이나 고향 타령하는 거지. 그리고 우리 애들은 여기서 산 세월보다 저 멀리 서울 가서 산 세월이 더 길어요.”
“그래서 집 팔고 서울로 가겠다는 거야, 뭐야. 여기 도로 들어서면 무덤도 싹 다 없어져! 누워계시는 시어머니 생각은 안 해?”
“그래서 더 팔고 싶어요! 아주 흔적도 없이 싹 밀려버리면 좋겠다고요!”
개판 오 분 전이다. 미윤은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향한다. 빼먹지 않고 챙겨든 스마트폰을 보며 변기에 앉아 버틸 생각이다. 이른 시간에 빨리 다 나가버리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