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수동 인생공간 류재언 변호사
인연이라는 게 있구나 싶은 사건이 최근에 있었다. 둘째 출산 전 검진을 위해 산부인과 대기실에 앉아 있는데 어떤 아저씨가 내게 아는 척을 했다. 사투리 섞인 목소리와 함께 전달된 그의 얼굴은 15년을 순식간에 넘어 내게 다가왔다.
류재언: 호성아~ (정확히는 호쓰엉아~)
이호성: 재언이가? 맞나?
공부도 잘하고 공도 잘 차고 훤칠하기까지 해서 친구들에게 인기가 많았던 녀석은 협상을 전공한 변호사가 되어 있었다. 서로 다른 세상을 살아온 우리는 종종 만나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던 차에 나는 회사를 옮겨 8퍼센트의 CTO가 되었고 친구는 성수동 인생공간의 대표가 되었다.
나는 팀의 워크숍을 성수동 인생공간에서 진행했고, 친구는 8퍼센트에 세미나를 하러 와주기로 했다. 회사 이사 일정이 밀리면서 세미나가 한번 연기되었다. 한 달 정도 미국을 다녀온다고 해서 원래 약속했던 것보다 2달 뒤에 세미나가 진행되었다. 그때는 몰랐는데 다녀와서 물어보니 하버드 로스쿨에서 협상학 과정을 수료했다고 한다. 가서 많은 것을 배워 왔을 터이니 미루기를 잘한 것 같다. :)
지금까지 몇 번의 말랑말랑 세미나가 진행되었지만 그중 사람들의 기대가 가장 높은 세미나였다. 사실 개발자인 나는 협상의 여지가 없는 컴퓨터를 상대하기 때문에 협상과는 동떨어진 사람이라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회사에서는 프로젝트를 진행시키기 위해서는 크고 작은 협상을 하고 있고, 일상생활에서도 작게는 아내와의 설거지 협상, 아이와의 TV 보여주기 협상부터 크게는 집 계약에 관련된 협상까지 다양한 협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세미나를 통해 알게 되었다.
세미나는 휴식시간 없이 2시간을 꽉 채워 진행되었다. 중간중간 흥미로운 협상 사례와 생각지 못했던 협상 방안 그리고 강사님의 적절한 위트로 2시간이 길게 느껴지지 않았다.
강의에서 많은 것을 소개했지만 내게는 처음과 끝이 제일 인상 깊었다. 처음 소개한 것은 ‘요구’와 ‘욕구’의 차이다. 협상 대상자가 실제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이해하는 단계라고 하겠다.
예를 들면 팀원이 “다른 일을 하고 싶습니다”라고 ‘요구’ 한다고 가정해 보자. 그리고 그 사람이 하고 있는 일이 회사에 정말 중요한 일이라서 업무를 바꾸는 것이 힘들다고 해보자. 나는 어떤 대안을 찾을 수 있을까? 팀원의 ‘욕구’는 다른 일을 해서 "회사에서 더 인정받고 싶습니다." 일까? 아니면 "좀 더 개인의 발전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일까? 전자라면 그의 업무를 더 칭찬해 주고 돋보이게 하는 방향으로 대안을 마련할 수 있을 테고 후자라면 개인이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되는 무언가를 협상의 카드로 제시할 수도 있겠다. 이렇게 '요구'를 넘어 '욕구'를 고민하는 식으로 프레임을 바꿔보는 것은 간단하지만 강력한 도구가 된다.
다시 생각해 보면 협상의 상대방에게만 적용되는 것도 아니다. 내가 무엇인가를 '요구'할 때 "어떤 '욕구'에 기반해 그런 '요구'를 하는 것인가?" 를 항상 떠올려 봐야 하겠다.
세미나를 마무리하면서 마지막으로 제시한 키워드는 '신뢰'였다. 상대방과의 신뢰만 있다면 앞의 협상 공식들이 다 무의미해진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내가 신뢰하는 사람과의 협상은 스킬이 큰 의미를 갖지 않는다. 상대방이 내가 일방적으로 손해 보는 방향으로 협상을 진행시키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2시간을 꽉 채우고 세미나가 끝났다. 세미나 이후에도 열띤 질문이 오가는 '흥한' 세미나가 되었다. 세미나를 주최한 사람으로서도 기분 좋은 자리였다. 친구에게 세미나에 대한 피드백을 주면 좋겠다 싶어 회사에서 가장 많은 협상을 하시는 분께 물어보았다.
그동안 많은 계약을 진행하면서 체감적으로 느껴왔던 것들이
체계적으로 정리되는 기분입니다.
나 또한 협상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고민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했고 동시에 친구의 성장을 느껴보는 뿌듯한 자리이기도 했다.
함께 식사를 하러 나가는 길에 잠깐 대표님과 인사를 나누었다.
이효진: 강의 잘 들었습니다. 이런 친구분이 있으셔서 그런지 호성님 데려올 때 힘들었어요. 호성님이 아주 협상을 잘 하시더라고요.
류재언: 아 그러고 보니 회사 들어오기 전에 저와 이야기를 한 적이 있군요.
이호성: 아니에요. 그때는 이런 이야기를 제대로 안 해줬어요. ㅠ.ㅠ 제대로 들었으면 좋았을 텐데 말입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지금 8퍼센트와 나는 서로 만족하고 있으니 좋은 협상이 아니었나 하고 생각한다.
오늘 협상 강의가 8퍼센트가 앞으로 더 좋은 선택들을 해 나가는데 도움이 되길 바라며, 류재언 변호사도 인생 공간에서 멋진 일들을 만들어 가길 바란다.
본문에 강의에 대해서 더 많은 내용들을 담고 싶었지만 류재언 변호사가 직접 올리는 글이나 직접 하는 강의를 통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류재언 변호사의 협상 강의를 듣고 싶으신 분은jaeeon.ryoo@gmail.com 으로 연락을 부탁드린다. 그리고 8퍼센트에서 좋은 주제로 말랑말랑 세미나를 해주실 수 있는 분은 hslee@8percent.kr 로 연락 부탁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