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왔다고 좋아했던 게 어제 같은데, 우리 동네의 가로수 나뭇잎들은 벌써 우수수 떨어지고 있다. 모든 것이 익어가고 화려했던 가을은 이제 가려나보다. 사실 나는 가을과 겨울을 싫어한다. 수족냉증이라 손발이 너무 차가워지고, 작년 우리 집안의 모든 불운이 가을에 시작되어 겨울에 절정이 되어서 인지 그 계절동안 너무 처량했고 아팠기에 싫게 느꼈던 거 같다. 아름다운 외부 환경과는 달리 너무 비극적이었던 내 현실이 극명하게 대조가 되어서인지도 모르겠다.
그간 살면서 가을이라는 계절에 대해 생각해 보지 못했는데 올해는 가을이라는 계절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가을은 모든 것이 충만해지고 익어가는 계절이다. 보름달처럼 꽉 찬 계절이다. 내 삶에 충만했던 적이 언제였던가? 더할 나위 없이 좋았던 때가 언제였던가? 이번 가을을 보면서 마치 내게 자신은 올 한해 해야 할 일들을 모두 충만하게 했노라 하면서 온갖 아름다운 색을 뽐내고 자신이 내어줄 수 있는 최상의 것을 내어준 뒤 우아하게 퇴장을 하는 듯 보인다. 구질구질하게 그 자리에 연연해하지 않고 깔끔하게 안녕하고 사라진다. 그래서 이 계절이 더 아름답게 느껴지는지도 모르겠다. 구질한 인간 세계와는 확연한 차이를 보여주는, 클래스가 다른 자연이다.
가을이 가고 나니 겨울이다. 마침 어제가 입동이었다. 올 겨울엔 새로운 다짐을 해본다. 이번 겨울엔 더 단단해지리라. 해월(亥)이라는 글자가 사실 갑목이라는 씨앗을 품고 있다. 겨울눈이 추운 겨울 동안 단단하게 힘을 응축하였다가 따뜻한 봄이 오면 그 응축된 힘을 폭발적으로 발휘해 새싹을 튀우듯이 겨울에는 씨앗으로 힘을 웅축시켜야 한다. 나 역시 자연처럼 그렇게 해보리라. 올 겨울 동안 씨앗이 단단해지듯, 내 내면의 씨앗을 품어 단단히 만들어 나가리라, 또 다시 화이팅해야 할 내년을 위해서 말이다. 그렇게 멋지게 시작하면 내년 가을에는 나도 더할나위 없는 충만감을 느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