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빛이 스며드는 계절, 오월

오월의 연두빛이 나를 안아줄 때 Amor Fati

by 따뜻한 불꽃 소예

지금 이 순간, 오월의 햇살은, 무겁게 눌린 삶에도 빛을 스며들게 한다.


때때로 삶은 도무지 나아지지 않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그런 나날들 속에서도 어느 순간 나를 붙잡아주는 감각들이 있다.

오월의 햇살, 바람, 연두빛 나뭇잎...그리고 조용히 떠오르는 태양.


나는 오월과 유월을 가장 사랑한다. 이 계절 특유의 분위기가 너무 좋다. 연둣빛 녹음이 주는 청량함, 아침과 밤에 불어오는 살결에 탄력을 주는 듯한 정도의 서늘한 공기, 그리고 따갑지 않게 몸을 감싸는 햇살까지....

내 마음을 빛으로 가득 채우는 계절이다.


박경리 선생님은 [약이 되는 세월]에서 오월을 이렇게 묘사하셨다.

푸른 빛깔에서 오는 오월이 지닌 분위기, 휴식을 마련하는 그늘, 나는 그것을 좋아한다.
무슨 희망에서가 아니다. 젊음이 가질 수 있는 환희 같은 감정 때문도 아니다.
오히려 일정의 안정감에서 나는 오월을 좋아하는 것이다.


이 문장을 읽을 때마다 고개가 끄덕여진다. 오월은 환희보다는 '안정'에 가까운 계절이다. 만약 일 년 내내 오월이라면, 어쩌면 우리나라 자살률이 반으로 줄지도 모른다. 4월이 잔인한 달이라면, 5월은 그 잔인함을 다독여주는 계절이다.


하지만, 올해의 오월은 마냥 평온하지 않다.


아버지께서는 항암치료 중이시다. 1차 항암으로 힘든 시간을 겪으셨기에 오늘 맞으실 두 번째 항암 주사가 더욱 걱정된다. 그래도 이 길을 견뎌내시리라 믿으며 조용히 기도한다. 남편도 여전히 힘들다. 아픈 몸을 이끌고 소득세 신고기간의 업무를 감당하고 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내 마음은 여전히 무겁다.

헤드폰을 사고 싶었다는 남편은 결국 사지 않았다. 기계치인 나에게 짐이 될까 마음이 주저되었다고 한다. 나는 말했다.

'그건 당신이 죽는다는 가정에 더 무게를 두는 거잖아. 그냥 사! 음악에 심취하고 싶으면 사도 돼. 괜찮아'

그리고 덧붙였다.

'언제 죽을지 모르지만, 그냥 지금을 살자. 물론 내 마음도 복잡하긴 매한가지다.

회사도 살얼음판이다. 물량은 계속 줄고, 내부 고발까지 더해져 분위기는 다시 파콰드 시절처럼 서로를 의심하고 분열된 채 있다. 나는 물론 아무 일도 하지 않았지만, 다시 입을 다문 채 죄인처럼 지낸다.


밤이 되면 이 모든 숙제들이 밀물처럼 밀려온다. 그런데 어젯밤, 문을 열었더니, 서늘한 공기가 방 안을 채웠다. 살갗에 닿는 그 차가운 기운이 오히려 상쾌했다. 따뜻한 바닥 위에서 상쾌한 공기 속에 나는 깊은 잠에 들 수 있었다. 아침엔 부엌 창으로 햇살이 쏟아져 들어왔다. 마치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새로운 날이 시작되었어. 네 삶에 빛이 들어오고 있어.'

나는 조용히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며 기도했다.


삶은 여전히 똥멍청이 같다. 인생의 난제들은 하나도 풀리지 않은 채, 때론 더 무겁게 느껴진다.

아빠, 남편, 불안한 회사.

하지만, 칼 융의 말처럼 '삶의 감각은 고통과 어둠 속에서 피어난다.' 내 감각은 지금 피어나고 있는 중인지도 모른다. 오월의 연둣빛이, 바람과 햇살이,이 땅의 계절이, 나를 조용히 응원하고 있다.

Amor Fati - 운명을 사랑하라.

이 말이 이제는 글이 아닌 감각으로 와닿는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감사하다.


#오월의감각, #삶의감각, #브런치에세이, #일상속치유

keyword
이전 14화나는 정말 강해진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