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숨이 차 오르면 살아 있음이 느껴진다.

달리는 나를 살아낸다.

by 따뜻한 불꽃 소예

숨이 차오르는 그 순간, 나는 지금 -여기에 완전히 존재한다.


달리는 인생

얼마 전부터 러닝을 시작했다. 요즘처럼 해가 일찍 뜨는 계절이면 나도 덩달아 하루를 서둘러 시작하고 싶어진다. 예전 같으면 침대 위에서 휴대폰을 만지작거렸을 텐데, 요즘엔 바로 일어나 음양탕을 한 잔 마시고, 주섬주섬 옷을 갈아입는다. 러닝화를 신고 집을 나서면, 새로 이사 온 아파트 조깅 코스가 나를 반긴다. 큰 결심 없이도 밖으로 나갈 수 있어 좋다.


처음 뛰었을 때는 정말 몸이 천근만근이었다. 걷는 것도 벅찬 내가 달린다니, 상상도 못 했던 일이었다. 하지만 요즘엔 짧은 거리라도 조금씩 뛰어본다. 1분, 2분이라도. 심박수가 올라가고 숨이 차 오르면, 왠지 모르게 "살아 있다"는 실감이 든다. 그 느낌이 좋아 남편에게도 러닝을 권했다.


러닝은 단순한 신체활동을 넘어서, 내 삶의 고삐를 다시 내가 쥐어보겠다는 선언이자 저항의식이다. 그래서, 남편에게도 말했다. 그 몸속 암세포에게 알려줘. 니가 아무리 발악을 해도 나는 살아갈 거야." 남편 역시 달리는 순간만큼은 기분이 좋아진다고 했다. 모든 것이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서라도, 달릴 때만큼은 살아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요즘 읽고 있는 소노 아야코의 '약간의 거리를 둔다'에서 '인생은 때론 좋았고, 때론 나빴을 뿐이다'라는 문장이 유독 마음에 남았다. 물론 지난 몇 년간은 '나빴던 시간'이 좀 길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금 가장 아름다운 계절인 오월에 달린다. 나무들이 신선하고 상쾌한 냄새를 내뿜는 아침, 강렬한 햇살을 등지고 나는 길을 내딛는다.


달리다 보면, 현실의 번뇌망상이 마치 바람에 날아가듯 사라지는 기분이 든다. 바람 사이로 그 걱정이 흩어지기를 바라며 더 빨리 달리고, 불안과 화와 두려움을 이겨내겠다는 마음으로 더 강하게 발을 딛는다.


숨이 헉헉 차 오르면, 마치 내 핏속의 노폐물이 빠르게 씻겨 내려가듯 머릿속 잡념들도 내쉬는 숨결에 섞여 다 사라지길 기도하게 된다.


그렇게 한 20분쯤 달리고 나면, 집에 돌아오는 발걸음이 이상하게 뿌듯해진다.


언제까지 달리기를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때론 좋고, 때론 나쁜 인생을 조금이라도 더 좋아지게 만들 수 있다면, 나는 내일도 또 달릴 것이다.


사토 하루오 '오월의 노래'

초록빛 새잎이 반짝이면

휘파람새가 노래하고

꽃 향기 속을

나비가 춤춘다.

아, 오월이여

우리의 마음은

빛으로 가득 차오른다.

keyword
이전 15화빛이 스며드는 계절, 오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