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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 넷에 입학한 미쿡 대학교, 드디어 개강이던가!

by jaeyi


남편' 장기주

-개강

어느새 개강후 2주가 지났다. 과 동기는 스물다섯명으로 그중 중장년층은 나를 포함해서 네명이고, 나머지는 10대후반부터 30대 초반까지 다양한 연령대이며 홍일점인 여학생도 한 명 포함되어 있다. 나를 뺀 모든 학생들이 백인인 것에 비해 다행히도 인종차별등에 관련된 우려했던 점은 찾아볼수 없었다. 하지만 수업은 예상했던대로 난항을 이어가고 있다. 교수의 말을 반 이상은 이해하지 못하고 내 말 또한 교수나 동기들 모두 대부분 알아듣지 못하는 등 서로 난처한 상황이 이미 여러번 발생된 것이다. 또한 미국에 오기전부터 수업내용을 녹음하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 꽤 성능 좋은 녹음기를 준비해 갔지만 규정상 녹음은 안된다는 답변을 받고는 더욱 의기소침해지고 말았다.


하루하루가 긴장의 연속이다. 살면서 이렇게까지 팽팽하게 긴장된 나날을 보낸적이 있었을까 싶기도 하고 내가 이 기나긴 마라톤을 과연 무사히 끝맞출수 있을까 하는 걱정스러움이 앞서기도 했다.



아내' 김재이

-노파심

'따르르릉' 새벽시간인데 전화벨이 잠시 울리고 끊긴다. 친정 엄마인듯 하다. 급한 일이 아니면 신호음을 몇 번만 확인하고 끊으면 적당한 시간에 우리가 전화를 다시 하겠노라 알려 드린 후 처음 울린 전화벨이다. 한국과 미국 시차를 매번 확인하고 전화를 걸어야 하는 것은 연로하신 엄마에게는 어려운 절차일듯 하여 나름 머리를 맞대고 세워드린 묘책인 것이다. 미국 도착 후 안부전화를 한번 드리고는 나또한 정신이 없는 통에 소식을 더이상 전하지 못했던 터라 기다리다 못해 전화를 하신 듯하다. 하지만 이른 새벽 시간이라 아침이 되면 전화를 해야겠다 하고는 언제나 그렇듯 또 까맣게 잊고 말았다. 며칠 후에나 겨우 생각이나 서둘러 전화를 드리니 급하게 묻는 첫마디가 장서방은 학교 잘 다니냐라는 물음이다. 우리 부부를 알고 있는 누구나 궁금해하고 또 누구나 걱정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니 연로하신 엄마는 더 염려하고 계셨으리라.

'응, 엄마. 학교 다닌 지 일주일째인데 적응 잘하는 것 같아. 벌써 친구도 사귀었데요'


그제야 엄마는 안도의 한숨을 쉬고는 공짜 전화라고 그리 일렀는데도 믿지못하시며 ‘그래 그래. 잘 다니면 됐다. 이제 그만 끊자 끊자’ 하시며 전화가 조금이라도 길어질까 못내 불안해하며 안절부절이시다. 엄마와의 짧은 통화를 끝내고 거실로 나가보니 공부하고 있는 줄 알았던 남편이 그새 소파에서 깊은 잠에 빠져있다.

"자기야. 내일 주말이니까 일찍 자도 되잖아. 방에 들어가서 자요"

"머리가 아프네"


여간해서는 어디가 아프다는 말을 안 하는 남편이다. 약을 챙겨 먹이고 침대에 눕는것을 보고는 불을 끄고 거실로 나와 켜져있는 컴퓨터도 마저 껐다. 남편이 학교에 나간 지 딱 한주를 보냈던 터였고 처음 맞는 주말인 것이다. 긴장이 풀리며 몸살이 난 듯하다. 힘든 내색 하나 없이 아무리 성격 좋은 남편이라지만 이 낯선 곳에서 다르게 생긴 얼굴과 전혀 다른 언어로 혼자 덜렁 이방인인데 어찌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까. 나오기 전 잠든 남편의 얼굴을 살짝 내려다보니 어느새 입술이 부르튼것을 발견하고는 마음이 저며왔다. 그리고 문득 엄마의 마지막 당부가 떠오른다.

'힘들게다. 잘 챙겨주거라'


매일 아침 도시락을 싸서 보내고 수업을 끝내고 돌아오는 남편의 표정만 몰래 살피며 첫 일주일 동안은 이렇다 하게 학교 생활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묻지 못했다. 이야기할 거리가 생기면 스스로 해주겠지 하며 사실 나 또한 남편의 학교생활이 걱정되어 내심 초조한 하루하루를 보내 었던 것이다. 그리고 드디어 십여일이 지난 어느 날 같은 과 폴이라는 젊은 친구와 함께 밥을 먹게 되었다는 말을 시작으로 그 몇일후부터는 대여섯명이 그룹을 지어 점심을 먹게 되었다는 이야기와 함께 말문이 본격적으로 트이기 시작했던 듯 하다. 그제야 나는 남편 몰래 가슴을 쓸어내렸던 듯 하다.

'휴.. 왕따는 아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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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Red Wing MN



-하루

남편이 학교에 나가기 시작하자 나는 비로소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하루 종일 같은 공간에 머무는 것은 남편도 나도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제주에서도 한 울타리 안에 항상 함께 있기는 하였지만 그곳에서는 엄연히 각자의 공간이 정확히 구분되어 있었다. 집은 내 공간이었고 마당을 가로질러 있는 공방은 남편의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하루 24시간 내내 남편과 함께 이 작은 공간안에서 복닥거리며 생활하다 보니 여간 불편한것이 아니다. 그만큼 남편의 개강의 의미는 나에게 혼자만의 시간이 주어진다는 자유의 신호탄과 같이 느껴지는 것이었다. 물론 남편도 내색은 안 했지만 나와 같은 해방감을 느꼈을 것이라 짐작한다.


개강 이후 나의 하루는 아침 6시면 눈을 뜨고 밥을 얹고 커피를 내리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이후 창문을 열고 환기를 시키며 남편이 간단한 아침식사를 하는 것을 지켜봐 주는 것도 잊지 않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편의 점심 도시락을 싸서 등교길을 마중하고 나면 비로소 한숨을 돌릴수가 있었다.



그렇게 집에 혼자 남게 되면 나는 지체없이 작은 방에 들어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집중력이 좋은 날에는 점심식사도 잊은채 꼼짝 않고 앉아 늦은 시간까지 작업을 이어가기도 한다. 지금으로서는 가족과 고양이들에 대한 걱정과 그리움을 잊을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그림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문득 핸드폰을 열어 바탕화면에 여전히 등록되어 있는 제주도의 날씨를 습관처럼 확인한다.

‘제주시 한경면, 날씨 맑음, 낮 최고 기온 30도'



2014 Jeju Island



https://www.instagram.com/jaeyi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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