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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 Dec 26. 2022

감기로 잃고 얻은 것들

병상 위 2주를 떠나보내며

바람이 차갑게 불어 롱패딩을 꺼내 입은 날이었다. 갑자기 잔기침이 들었다. 아니야, 나 어제까진 컨디션 괜찮았어. 콜록거리는 목구멍이 말라오던 다음 날에는 평소처럼 러닝을 했다. 몸 상태에 대한 걱정이 엄습했지만 괜찮은 척 신발끈을 매었다. 점점 몸이 으슬으슬 댔다. 어, 이상하다. 하루를 살아내려 바삐 움직이던 몸을 병원으로 옮겨 걸었다.

 초기 감기. 코가 막히고 기침이 거세졌다. 연말이라 할 일이 많아 걱정이 되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할 수 있는 건 약을 부지런히 먹고 푹 쉬는 것뿐이었다. 일주일 정도는 쉬어야겠다고 일터에 연락을 했다.


 하루, 이틀, 삼일이 지나 일주일이 흘렀다. 이 정도 되면 다 나아야 하는 거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기력은 점점점 떨어졌다. 심지어 항생제 부작용으로 먹은 것이라면 족족 쏟아냈다. 설사가 심해 기본적인 식사도 쉽지 않았다. 제대로 먹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침대에만 몸을 뉘어 지내다 보니 우울감이 늘었고 눈물도 잦아졌다. 쏟아내는 시간들. 병상 위의 세계에서 일주일은 영겁과 같았다. 일상적으로 하던 모든 것들이 너무나도 그리웠다.


쏟아내는 시간들. 병상 위의 세계에서 일주일은 영겁과 같았다.




 그리고 다시 일주일. 몸이 점차 나아졌다. 우울감이 멱살을 잡고 뒤흔든 건 빼고.

 한때 운동 습관을 만들며 마음에 새기던 것이 있다. 나라는 인간은 운동으로 미리미리 땀을 빼지 않으면 눈물로라도 짠 기운을 빼내야 한다고. 운동으로 부지런히 에너지를 순환시키지 않으면 일상 속 작은 일에도 쉽게 울음을 터뜨리게 된다는 말이다.


 뼈가 시리도록 추운 날이었지만 해가 드는 시간을 따라 걸었다. 오랜만에 엄마 옆에서 팔짱을 끼고 대화했다. 그동안 일과 독립출판 프로젝트와 공연 준비까지 내달리던 나날들이었다. 매일 저녁 11시, 12시에 집에 오는 탓에 가족과 함께 있는 시간들에 소홀했다. 이렇게 갑자기 아팠던 이유가 마치 '주변 사람들도 좀 돌보고 살아라'는 우주의 시그널이었던 걸까 싶었다.

 아프면 알게 된다. 함께 사는 사람들에게 알게 모르게 얼마나 많은 빚을 지고 사는지. 먹는 것이든 입는 것이든 자는 것이든, 이곳은 가족과 함께라서 편하게 누릴 수 있는 공간이다. 특히나 엄마의 공을 너무나 절실히 느꼈다. 매일 죽을 끓여주고 쌓인 빨래를 해놓는다. 매일 출근도 한다. 연말을 맞아 오랜 친구들과 모임이 있으면 성실히 가서 놀기도 열심히 논다. 그런 엄마를 먼발치에서 바라보니 새삼스럽게 대단하게 느껴졌다. 또 너무나도 감사했다. 당연하게 느껴지던 것들이 더 이상 당연하게 보이지 않았다.


 어제는 크리스마스였다. 크리스마스를 핑계 삼아 고마운 마음을 전하려 가족들에게 편지를 썼다. 촌스러워도 어쩔 수 없다. 나는 편지가 좋은걸. 돈이든 선물이든 마음을 전하는 방법은 많지만 나에게 마음을 전하는 방법은 편지가 최선이다. 앞으로는 주고 싶은 좋은 선물도 사줄 수 있는 경제적 여유가 있었으면 좋겠기는 하지만. 여유로울 때 쉽게 줄 수 없는 그런 작고 소중한 마음이 있기도 하니까.

 카페에 들러 딸기 라테 한 잔 곁에 두고 엄마와 언니에게 전하고 싶은 말들을 썼다. 몇 번이나 코를 풀었다. 감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감기로 인해 잃고 얻은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 잃은 것은 나의 모래성 같은 2주 치 일상. 얻은 것이라면 다시 쌓아 올리는 무기한 모래성 일상, 그리고 더 중요한 건 주변 사람들에 대한 감사함이다.

 건강할 때는 절대 모르는 것들이 있다. 앞만 보고 내달릴 땐 결코 못 보는 것들이 있다. 이제는 좀 더 주변을 살피며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툭하면 잊어버릴지도 모르지만. 나는 또다시 모래성을 쌓아가지만.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것들이 너무나 많다. 일상의 아주 작은 순간에도 감사하며 제때 마음에 새기며 살아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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