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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랑코끼리 이정아 Aug 20. 2021

나만의 작은 실내 정원

"엄마는 아침마다 거기서 뭐 해?"

"엄마? 얘네들 자리 좀 바꿔 주려고.."

"그게 그건데 자리를 왜 자꾸 바꿔?"

작은딸과 나의 대화이다.

딸의 눈에는 초록 이파리만 소복한 거실 한 귀퉁이의 화초인지 풀인지 모를 저게 뭐라고 엄마가 저러나 싶은가 보다.


귀국을 하고 집으로 이사를 한 날은 1월 초, 한겨울이었다. 집 정리를 끝내고 볕이 들어오는 창가에 앉았는데 집에 화초가 없는 게 못내 아쉬웠다.

아직은 인도 체질이던 그때, 한국의 겨울 매서운 바람이 두려워서 거의 집에서만 지냈었다. 창밖에도 초록잎 하나 보이지가 않는 게 참 이상했다. 1년 내내 여름인 나라에서 너무 오래 산 때문인지 한국의 죽은 것 마냥 앙상한 겨울나무 풍경이 어색하기만 했다.


3월쯤이었나 보다. 아직 추울 때였다. 남들보다 더 추웠던 때였다. 초록색 하나 집에 들이자 싶어서 아직은 손끝이 아리고 볼이 따가운 길을 제법 걸어서 동네 화원을 다녀왔다. 큰 화분은 천천히 들이기로 하고 구경 간 김에 몇천 원짜리 작은 화초 몇 개만 집어서 들고 왔다.

분갈이를 해야 하는 흙 화분은 번거로워서 흙을 털어내고 모두 수경으로 키웠다. 법랑 주전자, 유리볼, 기름병, 와인 잔 등등 안 쓰는 주방 용기들이 모두 나왔다. 뿌리를 물에 담갔더니 잘 자랐다.


남들이 보면 그냥 초록 이파리들이다. 물병에 담긴 아이비, 스킨답서스, 테이블야자 몇 뿌리가 전부이다. 그런데 내가 눈뜨면 가장 먼저 하는 것이 쟤네들 병에 물을 채워주는 일이다. 딸이 보기엔 항상 같은 모습, 같은 자리 같지만 매일 위치도 바뀌는 초록이들이다.


작은딸이 아토피 피부염과 전쟁을 치르던 그때, 딸도 엄마도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그때, 화초를 참 많이 키웠다.

흙을 밟고 살면 좋다는 어른들 얘기에 주택으로 이사 갈 계획도 세웠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있었고, 차선으로 15층에서 5층짜리 아파트의 2층으로 이사를 했다. 

베란다 가득 화분을 들였다. 큰 나무부터 작은 야생화까지 빈틈없이 가득 채웠다. 그 당시 우리 집 베란다는 작은 화원이었다. 민달팽이가 살 정도로 쾌적한 환경이 되었다.


딸의 아토피 때문에 키우기 시작한 화초들이 딸의 아토피 치료에도 도움을 주었고, 나도 치유해 주었다. 몸도 마음도 지쳐있을 때 초록잎 만지는 일이 유일한 해방구였다.

'반려식물'이라는 새로운 말이 생겼다. 그때는 없던 말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베란다 가득 초록 화초들은 나에게는 분명히 반려식물들이었다.


그때의 기억 때문인가 싶다. 화초들만 보면 마음이 편해진다. 보잘것없는 초록 식물 몇 개가 지금도 내게는 반려식물이다. 보는 것도, 만지는 것도 힐링이 된다. 화초들만 보면 무의식 중에 남아있는 그때의 감정으로 돌아가는 것 같다.

어린 시절의 우리 집 마당, 예쁜 꽃밭을 바라볼 때처럼 편해진다. 마음이 좋아진다. 초록 이파리 몇 개가 뭐라고. 


그래서 오늘도 언제나처럼 일어나서 물 한잔 마시고, 아침 기도를 끝내고, 제일 먼저 초록 이파리들을 살펴다. 채우고, 용기의 먼지를 닦고, 시든 이파리는 잘라내고, 내 눈에 좀 더 조화롭게 이리저리 자리를 새로 잡아준다. 블라인드는 볕이 잘 들게 고정해 둔다.


누구나 자기만의 힐링 포인트가 있다. 내게는 초록잎 만지는 일이 그것이다.

아침 시간 5분. 나만 아는 힐링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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