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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랑코끼리 이정아 Sep 25. 2021

가을은 중년이다.

나이가 들면서 미용실 가는 일이 세상 가장 귀찮은 일 중에 하나가 되어버렸다. 새치 머리가 정수리를 하얗게 덮고 귀밑이 눈에 거슬리게 희어지면 그제야 움직이게 된다. 움직이는 김에 염색도 하고 커트머리가 웬만큼 단발로 길어서 끝만 살짝 펌도 했다. 새치도 검게 감추고, 스타일도 바꾸고 나니까 한결 기분은 가벼워졌다.


집으로 내려오는 발걸음 사이로 바람에 날리는 노란 낙엽들이 보였다. 새치와 길어진 머리카락을 방치그 시간 동안에 어느새 여름은 물러나고 가을이 내려앉아 있었다.

새벽엔 꽤 서늘하다 싶을 때가 있더니 가로수도 그랬나 보다. 나는 얇은 이불을 걷어냈고 가로수는 잎을 떼어 내고 있다.


코로나 때문에 세상은 느리게 움직이는 것 같았지만 자연은 내가 눈치를 못 챘을 뿐이지 사람이 사는 세상과는 상관없이 저들만의 루틴대로 태양을 따라서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었다. 시간도 흘렀고 가로수의 시간도 흐르고 있었다.

하얀 새치가 길어 나와서 검은 머리를 덮었고 초록잎은 갈색이 되어서 가지를 덮었다. 어느새 가을이 되었다.


펌을 한 머리와 집게핀이 제법 예쁘게 어울린다며 딸이 뒷머리 사진을 찍어줬다."잘 나왔네" 했더니 "얼굴도 안 보이는데 뭐가?", "다시 찍어줄게" 란다. 20대 중반, 한창 예쁠 나이의 딸은 '얼굴이 안 찍혀서 마음에 든다'는 말을 이해 못 할 나이이다.

작년에도 그 작년에도 클로즈업해서 찍는 사진은 안 찍게 되었지만 간혹 찍힌 그때 사진을 보면 "이 때는 젊었었네"라는 말이 나온다. 내년의 오늘도 그런 말을 할 게 분명하지만 지금의 나는 화장 안 한 얼굴을 가깝게 그대로 찍히는 건 별로 안 내킨다.


여름이 지나면 가을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고 하면서, 여름은 청량하가을은 우아하다고 하면서, 초록잎은 상큼하붉은 낙엽은 화려하다고 하면서, 그렇게 여름도, 가을도 아름답다고 말하면서, 20대는 당연히 예쁜데 50대는 왜 사진 찍기도 싫어질 만큼 나이가 드는 나를 스스로 가두게 되는 것일까?


가을이 아름다운 이유가 봄의 상큼함과 여름의 청량함을 치열하게 보냈기 때문이고, 고고한 겨울을 맞을 것이기 때문이라면, 중년인 나도 충분히 아름답다고 받아들여야 한다. 중년인 내가 아름답지 않을 이유는 없다. 그럴 이유는 없다. 내년에 보면 분명히 젊었을 지금의 나는 이제부터 당당히 카메라 렌즈에 맞서기로 한다.


나는 50대이다. 중년이다. 아름다운 계절, 가을이다. 산뜻한 봄을 지냈고, 열정적인 여름도 보냈다. 품격 있는 겨울을 맞을 우아하고 화려한 가을을 보내는 중이다.


나의 50대, 60~70대의 내가 젊고 예뻤다고 말할 50대, 파이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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