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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랑코끼리 이정아 Mar 23. 2024

9년 만에 인도에 온 딸들

남인도 해안마을 로컬 골목길의 세 모녀


"그때는 어려서 안 보였고 몰랐던 것들이 나이가 들어서 다시 와보니까 보이네, 인도가 다르게 보여"


두 딸이 엄마, 아빠가 다시 살고 있는 인도에 다니러 왔다가 한국으로 돌아갔다. 바쁜 한국에서의 시간을 쪼개고 쪼개어다시 안 올 기회라고 생각하고 어렵게 시간을 맞춰서 2주 동안의 일정을 보내고 인도이다.


중1부터 고3까지, 초6부터 고3까지 각각 6년, 7년 동안 살았던 인도에 8년, 9년 만에 오게 된 것이었다. 중고등 시절을 온전히 보냈던 나라에 예전 나이셈법으로 스물여덟, 스물아홉이 되어서 다시 방문한 인도였다. 명목은 부모님 집 방문이었지만, 실질적인 목적은 인도 추억여행이었다.


다시 와 본 인도는 아이들에게 어떤 나라였을까?


그 시절엔 학교, 집, 한인교회 말고는 다닐 데도 없이 청소년 시절을 보낸 딸들이다. 외출이래 봤자 주말에 엄마, 아빠와 식당에 가서 밥을 먹거나 영화관에 가거나 바람 쐬러 바닷가에 다녀오는 정도가 전부인 생활이었다. 자기네끼리 기껏 가는 곳이래야 백화점 정도였었다.


"언니는 교회도 안 다녔는데 6년 동안 여기서 뭐 하며 살았어?" 다양한 학교 활동과 주중엔 학교 밴드, 주말엔 교회 찬양팀으로 바빴던 동생의 질문에 "그림 그리고 음악 들으며 사부작거리면서 지냈지. 특별히 불편하거나 심심한 적은 없었어" 집순이 언니의 대답이었다.


아이들끼리 가서 놀 곳이 마땅찮으니 방과 후에 학교에서 시간을 보내거나, 오늘은 이 집, 내일은 저 집, 다음 날은 우리 집, 친구네를 돌면서 놀던 아이들이었다.

오전 8시쯤에 학교에 가서 방과 후 다른 일이 없으면 4시 반쯤 귀가를 했다. 다행히 연년생 자매들이라 서로 친구가 되어주었다.


지금처럼 스마트폰이 있던 시절도 아니어서 생각해 보면 참 무료한 청소년 시절을 보냈을 것도 같지만 그래도 미국국제학교를 다닐 수 있어서 학교 안에서의 다양한 활동이 그나마 아이들의 숨통을 트이게 한 것 같다. 한인교회가 있어서 주말에도 심심하지 않을 수 있었다.


15년 전보다 많이 깨끗해진 첸나이이지만, 그때보다 불편한 점이 제법 줄어든 인도이지만, 한국에서, 미국에서 수 년동안 살다가 다시 와 본 인도가 그 나라들과는 차이가 너무 나서인지 딸들 눈에는 크게 변화가 안 보이는 듯했다.


여전히 정전이 되고, 도로는 혼잡하고 시끄럽고, 차가 멈추면 걸인들이 손을 내밀고, 먼지가 날리는 포장 안 된 도로변 길은 지저분하고, 이제는 신발은 모두 신고는 다니지만 하루를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가난한 인도 사람들의 모습은 깨끗하고 편리하고 세련된 한국과는 많이 다른 나라로 보이는 듯했다.


남인도 첸나이의 흔한 풍경


며칠 추억의 장소를 다니다가 딸들 모교를 방문했었다. 아무나 출입이 안 되는 높은 담장 너머의, 바깥세상과는 많이 다른 모교를 돌아다니며 작은딸이 말했다.


"그때는 어려서  보였고, 안 보여서 몰랐던 인도가 보이네"라고.


인도라는 나라는, 첸나이라는 도시는 불편했고, 너무 덥기만 했고, 청소년기 아이들이 살기에는 너무나 재미가 없었고, 먹고 싶은 한국 음식을 마음껏 못 먹는 나라였지만, 운전기사가 데려다주는 차를 타고 아무나 출입이 안 되는 시설 좋은 미국국제학교에서, 바깥세상과는 많이 다른 공간에서, 세계 각국의 아이들과 선생님들과 추워서 겉옷을 걸쳐야만 되는 에어컨 아래에서 담장 밖은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알지 못하고, 알 필요도 없는 천진한 선진국 아이들과 부잣집 인도 아이들이 그들만의 영역에서 살고 있었다.


이 나라에서, 마실 물도 귀하고, 전기도 없이 사는 사람들이 많은 인도에서, 자기들은 최상의 것을 누리며 청소년기를 보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때보다는 환경이 많이 나아졌지만 여전히 딸들 눈에 인도는 그런 나라였다.


다시 온 인도, 딸들 눈에는 10여 년 전보다는 발전하고 있는, 깨끗해졌고, 편리해졌고, 활기차게 변한 인도가 보이는 것이 아니라 그 시절 자기들의 인도에서의 삶이란 것이 구별된 특별한 삶이었다는 사실이 이제야 보인다고 했다.


전에는 인도에 가보고 싶지 않냐고 물어보면 "굳이 또 뭐 하러 가?"라고 했던 딸들이 다시 와 본 인도를 떠나면서 다시 또 오고 싶다는 말을 했다.


딸들에게 인도는 청소년기의 6~7년과 성인이 되어서 경험한 보름간의 시간이 합쳐져서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의미로 각인이 된 것 같다. 기회가 되면 또 오고 싶다고, 꼭 다시 오겠다고 했다.


과거의 인도와 현재의 인도가 만나서 미래의 인도를 생각한 것 같았다.


딸들은 자세한 설명을 하지 않았고, 엄마는 세세하게 되묻지도 않았지만

"어렸을 때는 안 보이던 것이 다시 와서 보니까 인도가 다르게 보이네"라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엄마는 충분히 알 것 같다.


힘든 나라에 본인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아빠의 직장 때문에 따라와서 그 긴 시간을 누구보다 잘 살고 간 딸들이 새삼 고맙고, 미안했지만 부러 가고 싶지는 않다고 말했던 인도에 또다시 오고 싶다고 말하는 딸들이 다른 의미로 또 고맙고 미안했다.


아무나 쉽게 해보지 못할 경험, '인도 살이', '다시 와 본 인도'가 딸들에게 새로운 경험추억이 된 것 같아서 다행이다.

아빠가 다시 오는 바람에 딸들의 인도 방문이 가능했고, 동창들의 부러움을 사는 일이 되었다.


어려서 제대로 안 보였던 인도, 나 역시 그때는 안 보였던 인도를 다시 경험하며 소중한 시간들을 보내보리라는 결심을 하는 계기가 되었다.


"엄마! 내년에 또 와도 되지?"


되고말고, 아빠가 내년까지는 인도에 있지 않을까? 만약에 아빠가 귀국을 하더라도 또 오면 되지 뭐가 문제일까?

인도는 우리 가족에게는 언제나 와도 되는 그런 나라인 걸.


두 딸의 9년 만의 모교 방문(AISC 첸나이 아메리칸 인터내셔널 스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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