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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som Jun 22. 2024

오늘, n번째 퇴사를 합니다.

7년 차 직장인, 이렇게 살아도 될까?

"재직 기간이 짧아서.. 왜 퇴사하시는 거예요?"


이번 이직, 20번 정도 면접을 보면서 매번 듣는 질문이었다.

직장생활 7년 차에 벌써 n번째 이직이었다. 면접 때 잦은 이직은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게 당연했다.

이번 회사를 다니면서 이번엔 못해도 꼭 5년은 버텨야 한다고 생각하고 들어왔기 때문에 더 민망할 뿐이었다.


"회사가 어려워서 팀이 없어지다 보니 새로운 회사를 알아보게 됐습니다."


거짓은 없었지만 그간의 잦은 이력이 실제 이유까지 퇴색되게 만들까 늘 조심스러웠다.

나름 대기업 계열사라고 생각해서 들어갔던 회사였건만 이렇게 3년도 안되어서 사업을 접고 회사가 위태롭게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게다가 사업이 잘 안 되고 내부에서 시도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아서 내 스스로 자신감도 많이 깎인 시간이었다.

그게 면접 때 나타나는 것 같아 난생처음으로 주눅들며 이직 준비를 했었다.



이직 경력을 말해보자면,


첫 이직 사유는 천재지변 같은 것이었다. 회사에서도 유명했던 '일진' 대장 팀장에게 집단 괴롭힘을 당했고, 괴롭힘을 못 이긴 내가 윗선에 면담을 하며 운이 좋게 다른 본부로 옮길 수 있었다. (그 팀장은 워낙 그 이력이 화려해서 회사에서도 더 이상 감싸주지 못하고 내보내야 하는 상황이 되어 회사를 나가게 되었다) 괴롭힘의 정도가 심한 편이었어서 첫 사회생활에서 나는 항상 녹음기를 켜고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길 것 같으면 모든 상황을 문서화하는 습관이 생겼다.


그래,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천재지변이었지만 그 후 이직은 나의 선택이었다. 집을 사게 되면서 연봉을 높여야 하는 상황이었고, 연봉을 더 올릴 수 있는 회사로 옮기게 되었다. 그리고 그곳에서는 지는 산업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볼 수 있었고 이 산업에서 오래 못 있겠다는 생각을 해서 옮기게 되었다. 평생직장은 아니더라도 사회 초년생 때 업계 커리어 기초를 잘 다져두는 게 좋다는 말을 들었기에 과감하게 선택했다.


그리고 이동한 곳은 처참하게 정리되기 시작했다. 내 나름대로는 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생각했으나 지금 돌아보면 얼마나 오만한 선택들이었는지 새삼 느낀다.


난 내가 능력이 충분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야근을 좋아하진 않지만 모르는 걸 알기 위해서는 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회사에서 나를 찾는 경우가 많으면 일종의 희열까지 느꼈다. '나는 회사에 필요한 사람이야.' , '나는 능력 있는 사람이야.' 나의 효능감을 그런 것에서 찾았다. 실제로 여러 번의 이직을 하며 나의 연봉은 거의 2배 가까이 뛰었고, 처음 있던 회사에서 이 연차에 받을 수 없는 많은 돈을 받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 회사에서의 경험은 나의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숨 쉬듯 가스라이팅 하는 상사와 그런 상사의 술자리 아양을 받아주며 감싸는 대표까지. 아, 회사 생활은 성과보다 아부가 더 중요한 건가?

그렇지만 나는 처음에는 늘 하던 대로 할 수 있다는 마음가짐으로 일을 했다. 부정적으로 생각하면 일하기가 쉽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열심히 하고 1년이 지났을 때 팀원들은 나에게 '혼자 일하지 마라', '열심히 하는 건 좋지만 너무 열정적이다'라는 평가를 주었다.

(우스운 건 같이 일했던 동료분들에겐 좋은 평가를 받았고 성과로는 S로 최상위 평가를 받았다는 것)

뭔가 내 안에서 탁하고 끊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디자인을 요청했을 때, 제품의 명칭이나 세일 금액 등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의견을 냈을 때 안된다 하며 나를 귀찮게 여기던 기억들이 떠올랐다.


'아, 열심히 성과 내보려고 해도 소용이 없는 곳도 있구나!'


그때부터였던가, 나는 일을 할 때마다 해봤자 무슨 소용이 있는지부터 생각하게 됐고

안 될 이유만 찾아 이야기하는 불평불만 인간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이것은 일종의 고해성사이자 나의 마음 치료를 위한 일지이다.

그렇게 부정적인 가치관으로 1년을 넘게 살아보니 모든 일에 회의적이고 무기력해졌다. 이대로 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원래 어떤 사람이었지? 이젠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다시 성과를 내는 일을 해보려고 하니 두려웠다.


'예전에는 도대체 어떻게 내가 일을 했지?'

'이렇게 했는데 안되면 어떻게 하지?'


회사에서 부정적인 생각을 했을 뿐인데 알게 모르게 그 가치관은 나의 일상을 잠식해 버렸다.

나를 갉아먹던 귀찮음, 무기력함, 부정적인 생각은 내 마음의 여유를 없애버렸다.

자연히 말이 거칠어지고 표정이 우울해졌다. 주말이면 무기력하게 누워있게 되었고 무엇인가 새롭게 도전하는 게 의미가 없어졌다.


그러나 나는 이번에 이직에 또다시 성공했다.

이번에 업계도 바뀌고 직무도 도전적인 영역이 포함되었다.

할 수 있을까 보다는 어떻게 해야 할지 연구하고, 나는 지금 어떤 마음인지 조금 더 객관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일지를 쓴다.

전 회사에서 느꼈던 인간에 대한 경멸을 새로운 관계로 회복하기 위해서 솔직하게 내 마음과 마주해보려고 한다.



최근 꾸준히 운동을 하면서 난생처음으로 근력량이 정상범위로 올라왔다.

건강검진 때 얼마나 기뻤던지.


꾸준히 운동을 하게 된 것처럼 매일매일 조금씩 해내는 내 모습을 기록하며

사람 때문에 힘든 일이 있는 날도, 업무 때문에 힘든 일이 있는 날도 솔직하게 기록해 보자.

그리고 그 안에서 답을 찾아가는 시간을 쌓아가며 내가 잘 살고 있는지 그때 평가해보려고 한다.

초년생이라고 하기엔 경력이 꽤 있고, 경령이 많다고 하기엔 부족한 그런 애매한 직장인에게 이런 고민이 있고

이런 사람도 살아간다는 걸 함께 공유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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