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1.06
소풍 철의 테마파크는 줄을 서러 가는 곳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짧은 줄을 찾아 탐색해 봐도 무소용이다. 티 익스프레스 앞에 길게 늘어선 줄은 놀이기구를 타기도 전에 의욕이 꺾이게 만든다. 그러니 줄이 짧을 거란 기대를 내려놓고 소신껏 줄을 서는 수밖에 없다.
웨이팅이 익숙하지 않은 강원도 사람인 나는 결국 늘 그렇듯 또 주토피아를 어슬렁거린다. 판다월드도 패스하고 평범한 동물원으로 향한다. 물개와 물범 공연은 자유관람방식으로 바뀌어 있었고, 플라이 윙스는 쉬는 날이었다. 나는 원숭이를 보러 갔다. 일본원숭이가 서로 털을 다듬어 주는 모습을 좋아한다. 한참을 지켜보아도 지겹지 않다. 긴팔원숭이는 계속 잠을 잤고, 망토원숭이는 체육관이 문 닫아서 의욕이 꺾인 헬스장 마니아 같은 기운을 내뿜으며 서성댔다.
사막여우와 카피바라를 끝으로 주토피아를 한 바퀴 돌고 나면 어딘가 여기서 끝내기에 아쉽다는 느낌이 든다. 기왕 에버랜드까지 왔으니 뭐라도 하나는 타고 가자는 욕심이 생긴다. 나는 동물을 좋아하니까 '로스트 밸리'와 '사파리월드' 중에 고민한다. 로스트 밸리는 초식 동물 위주고, 사파리 월드는 육식 동물이다. 좋아, 이번에는 사파리 월드다, 지난번에 로스트 밸리를 갔으니까. 매번 고심하는 척 하지만 사실 두 개를 번갈아 다닐 뿐이다.
대기줄은 100분. 이 정도면 양호하다. 에버랜드는 나무 멍을 때리기에 적합하다. 내가 가을철에 좋아하는 에버랜드 나무는 '낙우송'이다. 낙우송? 아리송한데?나무 이름이 낯설 수 있다. 낙우송은 언뜻 보면 메타세쿼이아를 닮았다. 그런데 가까이 다가가 보면 열매가 확연히 다르다.
메타세쿼이아는 계란형의 솔방울을 떨어뜨리지만, 낙우송은 밤처럼 생긴 열매를 매달고 있다. 여러 겹의 껍질로 감싸져 있는 낙우송 열매(솔방울)는 무척 귀엽다. 기념품으로 한 두 알 가져가고 싶을 정도다. 낙우송의 매력은 바늘처럼 가느다란 잎에 색이 든다는 점이다. 푸른 잎이 황갈색으로, 가을이 깊어질수록 적갈색으로 변한다. 그러다 땅에 툭.
나는 사파리 버스를 기다리며 낙우송 잎이 바람에 흩날리는 것을 지켜보았다. 까마귀가 바람을 타고 날아다녔다. 그러다 까마귀가 낙우송 가지에 앉으면 잎이 흔들렸다. 내년 봄에는 낙우송 가지에 연두색 새순이 돋을 것이다. 낮잠 자는 곰 등 위에 밝은 적갈색 낙우송 잎 몇 개가 떨어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