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2.06
초심자 러너는 매일 똑같은 코스를 비슷한 속도로 달리는 것보다 변화를 주는 편이 낫다. 아직 근육과 심폐기능이 달리기에 최적화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오늘은 달리기를 하루 쉬고 대관령으로 갔다. 대관령 치유의 숲은 오봉산 자락에 있다. 오봉산은 해발 541m의 야트막한 산이다. 그렇지만 일대가 상수원 보호지역에, 백두대간이라 평범한 541m는 아니다.
골짜기 사이로 성난 바람이 불었다. 호수나 해변에 가면 강풍에 아이들이 감기에 걸릴 것 같아 산에 왔건만 오산이었다. 산바람은 맹렬했다. 그나마 나무가 우거진 지역이나 길이 꺾이는 곳은 잠잠했다. 산은 짐승이나 사람이 몸을 잠시 피할만한 공간을 남겨두고 있었다. 그러니 '나는 자연인이다'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산으로 가는 것이다. 바다에서는 세상을 등지고 살기 힘들지만, 산에서는 어떻게든 타인의 눈을 피해 자급할 수 있다.
가볍게 몸을 풀고 산에 올랐다. 준비 운동은 언제나 동적이어야 한다. 순서는 땅과 가까운 곳에서부터다. 발목과 무릎을 돌리고 허리를 풀어준다. 어깨와 목도 움직인다. 등산이 끝난 후에 하는 마무리 운동은 반대다. 위에서부터 아래로 내려가며 정적인 이완 운동을 한다.
오봉산에는 사람이 없었다. 한 무리가 주차장 옆 체험센터에서 단체 연수를 받는 듯했으나, 산 쪽으로는 아무도 오지 않았다. 끝없이 바람이 불었고, 소나무 숲이 쏴아아 소리를 내며 진동했다. 동고비가 나무 기둥을 거꾸로 타며 부지런히 먹이를 찾았다. 날이 추워 벌레도 없고 뱀도 보이지 않았다. 이따금씩 울음소리가 다른 새들이 날아다닐 뿐이었다. 눈으로 좇으려 해도 크기가 작아 번번이 놓쳤다. 러닝과 달리 등산은 보고 듣는 시간이 많았다. 느린 운동의 아름다움이었다.
산이 멋진 땅에 태어난 것은 큰 행운이다. 나는 등산하는 내내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산은 든든한 벽이다.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기대는 느낌이 든다. 그런 점에서 강릉은 참으로 근사하다. 산과 숲, 호수와 강과 바다를 품고 있다. 아무리 보아도, 아무리 거닐어도 강원도의 자연은 지루하지 않다.
잠깐 '지금 산불이 난다면 오봉산에서 어떻게 탈출하지?'라는 불안한 상상이 떠올랐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과민증 기질이 다분한 호모 사피엔스의 습관적 자아 실험 같은 것이다. 자아의 시뮬레이션 놀이를 진지하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나는 그럴 때 "지금 나의 에고가 생존 확률을 높이기 위한 유전적 반응을 보이고 있구나." 하고 생각한다. 그럼 곧 시뮬레이션이 종료된다.
아이들은 이동거리 4.62km의 등반을 무사히 따라와 주었다. 등반 고도는 377m, 운동시간은 1시간 48분이었다. 파리바게트에서 사간 피자빵과 호떡빵이 힘이 되었다. 등산은 몸에 큰 부담을 주지 않았다. 등산은 달리기에 비하여 지면 충격이 훨씬 적었다. 게다가 다양한 지형에 맞춘 발디딤을 하느라 근육과 관절을 고루 쓰게 된다. 몸을 보강하는 운동으로는 그저 그만인 것이다. 러닝과 등산을 일상적으로 할 수 있다니. 내 인생도 꽤 괜찮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