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소설의 기반: 미지의 여인(1883)

<이반 크람스코이(Ivan Kramskoi)의 미지의 여인(1883)>

(지은이 주: 피할 수 없는 내 소설의 슬픈 기반이다. 허구의 세계에서 소설가는 영혼적으로 거만하고 부도덕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림 속의 '미지의 여인'처럼 고급 마차에 앉아 세상을 도도하게 내려다볼 필요도 있다. 매춘부라고 비난받아도 좋다. 하지만 그 눈빛 속엔 우리 모두의 묘한 슬픔이 고여 있다. 그 슬픔은 神(God)도 인정하지 않는 영혼의 묵직한 슬픔으로 너무나 짧은 시간의 생애적 고뇌를 말한다. 거만함도, 부도덕도, 도도함도, 매춘부도 아름다움이 가면 같이 소멸된다는 재생적 슬픔이 그녀의 눈빛에 희미한 잔상으로 아른거린다.)

이반 크람스코이, 미지의 여인, 1883, 캔버스에 유채, 75.5x99cm, 트레티야코프 미술관.jpeg 이반 크람스코이, 미지의 여인, 1883, 캔버스에 유채, 75.5x99cm, 트레티야코프 미술관

러시아 화가 이반 크람스코이(Ivan Kramskoi, 1837.6.8~1887.4.6)의 1883년 작품 미지의 여인(Portrait of an Unknown Woman)은 단순한 초상화가 아니다. 그것은 한 인간이 짊어진 슬픔의 운명, 말해지지 않은 내면의 서사를 고요하게 응시하게 하는 거울이다.


그녀는 마차 위에 앉아 있다. 도시의 겨울 공기 속, 단정한 복식과 당당한 자세는 외면의 품위를 말해준다. 그러나 시선은 다르다. 그 눈빛에는 설명되지 않는 거리감과, 타인을 향하면서도 결코 닿지 않는 고독이 스며 있다. 마치 세상 속에 있으되, 세상으로부터 이미 한 발 물러나 있는 존재처럼.


이 여인의 슬픔은 사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어떤 구체적 비극인 죽음, 이별, 몰락이 아니라, 오히려 그 모든 가능성들이 이미 삶 속에 잠재해 있다는 사실에서 비롯된 ‘운명적 슬픔’이다. 인간이 인간으로 태어났다는 것, 그 자체가 이미 상실과 단절을 내포한다는 진실 말이다.


크람스코이는 그녀의 이름을 지워버림으로써, 오히려 그녀를 우리 모두로 확장시킨다. “미지의 여인”이라는 익명성은 특정 인물을 지우는 대신, 인간 존재 전체의 상징을 부여한다. 우리는 그녀를 알 수 없기에, 오히려 그 안에서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녀의 눈빛은 묻는다.
“나와 당신 역시 이 세계 속에서 낯선 자가 아닌가?”


이 그림의 진정한 비극성은 눈물의 부재에 있다. 울지 않는 얼굴, 그러나 이미 울음을 초월해 버린 듯한 정적. 그것은 슬픔이 감정을 넘어 존재의 상태로 굳어졌음을 의미한다. 슬픔이란 일시적 감정이 아니라, 인간이 시간 속을 살아가며 필연적으로 체험하는 ‘존재의 음영’ 임을 드러낸다.


그래서 이 작품은 우리에게 위로를 주지 않는다. 대신, 더 근원적인 인식을 남긴다. 인간은 이해받지 못한 채 살아가며, 완전히 이해할 수도 없는 타인 속을 스쳐 지나간다는 사실. 그리고 그 속에서조차 우리는 끝내 자신의 존엄을 지키려는 어떤 품위를 간직한다는 사실이다.


결국, 미지의 여인은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슬픔은 피해야 할 감정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운명이 우리에게 부여한 가장 깊은 개인적 증거일 것이다.

소설가는 이를 잡고 또 잡아야만 하는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고희단상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