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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행 Nov 23. 2022

느릅나무_나의 고향 늠름한 나무

소춤나무, 가유, Japanese Elm, 榆

느릅나무


내 자식은 굶주림을 참지 못해 뒷산으로 느릅나무 껍질을 벗기러 갔습니다.
이미 오래됐지만, 언제 돌아올지 알 수 없습니다.


분류

현화식물문 > 목련강 > 쐐기풀목 > 느릅나무과 > 느릅나무속  

서식지

산지의 경사 지대, 계곡  

학명

Ulmus davidiana Planch. var. japonica (Rehder) Nakai  


단대동에서 살던 내가 산성동 창곡중학교로 등교하려면 단대공원 높은 언덕을 올라야 했다. 당시 주택가 뒤편 산으로 올라가는 비탈길은 헤아릴 수 없는 돌계단으로 되어 있었다. 당시 어린 기억에 등굣길이 참 까마득한 산길을 오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런 길을 오르면 가쁜 숨을 고르게 하는 곳은 늘 정상에 있는 키 큰 나무였다. 그 늠름한 나무를 기점으로 해서 학교는 내리막길에 있어 항상 그 나무를 목표로 쉬지 않고 올랐던 기억이 있다. 

야산에는 다른 나무들도 듬성듬성 있었지만, 대부분 가시 돋친 아까시나무거나 송진이 밖으로 새어 나온 리기다소나무였다. 평소에는 전혀 떠오르지도 않았던 기억이 생각난 것은 수십 년 후 다시 그 나무를 보고서다. 그리고 그 나무가 느릅나무임을 뒤늦게 알아볼 수 있었다.


단대동 논골에서 산성동 넘어가는 고개 느릅나무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이 아닌 주택만 들어찬 논골이었고, 복숭아꽃이나 살구꽃, 아기 진달래는 볼 수 없었던 그저 그런 주택들로 다닥다닥 붙은 동네였다. 살면서 누구에게나 고향에 대한 향수는 아련하게 남아있고 두고 온 시골집에 대한 노스탤지어는 항상 어느 아름드리나무 밑에서 동무들 웃음소리를 회상케 한다. 

하지만, 단대동 산골에 새로 마을이 생기면서 살던 내게 나무와 함께 할 수 있는 그런 유년의 풍족한 기억은 없었다. 단지 성북동 메마른 골짜기를 배회하던 비둘기가 나무 한 그루 변변한 곳이 없던 지역을 한 바퀴 휘돌 뿐이었다. 어쩌면 이곳도 내가 태어나기 전 이곳은 나무로 빽빽한 산이었겠지만, 도시가 생기며 나무는 잘리고 새들은 보금자리를 잃고 쫓기는 신세가 되었다. 그 자리를 단대동 비둘기가 날아다닌다.


수고로이 오를 언덕 위로 정자가 있고 그 지붕 한참 위로 느릅나무가 있다.


가을 물들기 시작하는 느릅나무 잎


나무에 대한 기억의 결핍은 고향이란 단어에 이질감을 불러오므로 쥐어짜듯 유년의 기억 속에서 더듬어 찾은 나무가 바로 이 느릅나무다. 그리고 느릅나무라는 이름은 침대에서 아이들을 눕히고 재우기 위해 읽어주던 책에서 보았다. 전래동화 중 바보온달과 평강공주를 읽어줄 때다. 책에는 바보 온달이 가족의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산속으로 지게를 지고 가는 장면이 그려졌다. 평강공주가 온달을 찾아왔을 때 노모는 말했다.


“내 자식은 굶주림을 참지 못해 뒷산으로 느릅나무 껍질을 벗기러 갔습니다. 이미 오래됐지만, 언제 돌아올지 알 수 없습니다.”


바보온달과 평강공주 이야기는 삼국사기에 나오고 느릅나무 이야기도 나온다. 가난한 집에서 온달이 늙은 어머니의 굶주림을 해결하기 위해 산에 오른 것은 느릅나무 껍질을 벗겨내기 위함이었다. 


느릅나무 잎은 타원형 또는 도란형으로 길이 3-10cm, 폭 2-6cm. 가장자리에 겹톱니가 있다.


느릅나무 껍질은 예로부터 가난한 백성에게는 배고픔을 달래주던 구황식물이었다. 느릅나무 껍질을 벗겨내면 부드러운 속껍질이 나오는데 찧으면 누런 콧물처럼 끈적끈적해지고 말랑말랑해진다. 이것을 먹으면 제법 요깃거리가 되어 백성들은 흉년에 대비하여 평소에 느릅나무 껍질을 보관해두었다고 한다. 느릅나무는 껍질뿐만 아니라 어린잎도 맛이 순해서 사람들은 봄철에 나오는 어린잎을 나물로 먹거나 곡식 가루와 섞어 떡을 쪄서 먹기도 했다. 


열매는 5-6월에 익으며, 길이 1.0-1.5cm고, 날개가 있다.
느릅나무는 낙엽 큰 키 나무로 높이 15-25m 이르며 줄기껍질은 어두운 회색이다.


비단 느릅나무가 배고픔을 채워주는 것만은 아니었다. 나무껍질을 말린 것을 유피라고 하여 비염과 천식을 치료하는 한약재로 쓰였다. 종종 느릅나무를 코나무로 부른 이유가 느릅나무를 차로 달여서 복용하거나 코안을 세척하면 호흡기 질환에 효과가 탁월하기 때문이다. 염증에 약효가 있는 느릅나무 껍질로 사람들은 상처치료나 염증이나 고름이 날 때 약으로 사용할 수 있는 나무였다. 예부터 내려오는 약효는 현대의학에서도 검증되어 천연 약품의 재료로 사용하는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느릅나무는 빠르게 생장하면서도 재질이 견고해 집을 짓거나 여러 도구로 사용할 수도 있었다. 



느릅나무는 높이 자라면 20~30m를 넘고 줄기 둘레도 보통 한 아름을 넘어가고 가지마다 잎사귀가 풍성하여 수형이 아름다워 마을의 정자나무로 크고도 남음이 없다. 느릅나무를 알아보는 것은 나뭇잎이 좌우대칭이 아니라 잎맥을 중심으로 한쪽이 일그러져 있고, 가을에 열리는 열매는 작은 동전 크기에 가운데 씨가 있어 불룩한 모양이다. 그래서 처음 엽전을 만들었을 때 느릅나무 열매와 닮았다고 하여 엽전을 느릅나무 유(楡) 자를 써서 유전(楡錢)이라고 했다. 


어린 가지는 갈색을 띠며, 흰 털이 빽빽하게 난다.


요즘은 느릅나무를 탄천에서 자주 보게 된다. 엄밀히 말하면 참느릅나무다. 느릅나무는 세계적으로 북반구 온대지방에 많이 분포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느릅나무속에 느릅, 비술, 당느릅, 중느릅, 왕느릅, 난티, 참느릅 등 7종이 서식한다. 이중 느릅나무가 제일 키도 커서 늠름하다. 그에 비하여 참느릅나무는 잎도 작고 아담한 모양이다. 학명에도 작은 잎을 가진 느릅나무라는 뜻이 있고, 참나무 중 잎이 작은 참나무를 졸참나무라고 부르듯 좀참느릅이라고 부른다. ‘참’이란 단어에서 유추하듯이 나무가 야무지고 굳세다. 


느릅나무가 봄에 꽃 피고 열매를 맺을 때 참느릅나무는 가을에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작지만 튼실한 열매는 가지를 뒤덮을 정도로 잔뜩 열려 바람에 날아가 여러 곳에 싹을 틔울 준비를 한다. 그래서 느릅나무 종자가 쉽게 상한 데 비해 참느릅나무 종자는 추운 겨울에도 살아남을 수 있고, 탄천이나 높은 산에 참느릅나무가 더 많이 볼 수 있다. 그런 야무진 특성 때문에 느릅나무가 Japanese elm이라고 부른다면, 참느릅나무는 Korean autumn elm이라고 부른다.


참느릅나무는 느릅나무보다 더 늦은 가을까지 나뭇가지에 열매가 남아있다.


느릅나무와 참느릅나무의 구분은 늦가을에 확연히 두드러진다. 봄에 열매를 맺는 느릅나무에 비해 가을에 열매를 맺는 참느릅나무는 늦가을 나뭇가지에 열매가 남아있어 참새 같은 작은 텃새들이 자주 찾아든다. 또한, 느릅나무 껍질은 암갈색으로 세로로 많이 갈라졌다면, 참느릅나무껍질은 가로세로 갈라지며 너덜너덜한 느낌이다. 

느릅나무의 어원은 아무래도 늠름한 수형을 볼 때 늠름나무에서 올 법 한데 그런 유래를 담은 이야기는 없다. 더구나 느릅나무 꽃말이 위엄인데 늠름나무라고 하면 꽃말과 일맥상통할 것 같다. 다른 말로는 나무껍질을 먹기 위하여 물에 담그면 흐믈흐믈하여 늘어지는 데 이 모습을 표현하는 단어가 ‘느름해진다’고 느름에서 느릅으로 변했다고 한다. 아무래도 우리 민족은 배고픔을 달래며 모든 것을 먹는 것과 연계시켜 나무 이름을 지었다고 생각 드니 늠름보다는 느름에서 온 것 같다는 서글픈 생각도 든다.


탄천변에 자라난 참느릅나무


참느릅나무는 가을에 꽃을 피우며, 작지만 튼실한 열매는 가지를 뒤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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