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구간 불곡산길 - 경기옛길 낙생역길, 불곡산 옛이름 성덕산
성남 누비길 네 번째 구간 불곡산길은 불곡산을 중심으로 시점인 태재고개에서 종점인 동원동까지 8.8㎞ 거리다. 형제봉과 불곡산 정상을 넘고 부천 당고개와 휘남에 고개를 넘어 탄천과 그 지류인 동막천을 건너는 길로 누비길 중 가장 난이도가 낮은 축에 속한다. 4구간 전체 노선이 8.8㎞라지만 탄천 구간을 빼면 숲길 등산로는 5.7㎞에 불과하여 가족 단위나 학생들 남녀노소가 가볍게 산책하며 오르기 좋은 길이다. 불곡산 일대 등산로는 대광사나 골안사 방면 등 여러 도심권에서 접근할 수 있는 등산로 있어서 평일에도 사람이 많다.
불곡산 정상에 오르기 전 낮은 봉오리인 형제봉까지 가는 길은 경사가 완만하고 길 폭이 넓어 오르는 길이 힘들지 않고 평이하다. 그래서 누비길 다른 구간과 달리 지나가는 사람도 많다. 등산객으로 보이는 차림새의 사람들은 별로 보이지 않고 집안일 끝내고 산책하러 나온 동네 주민이나 공부하다가 머리 식히러 올라왔을 법한 학생들도 제법 보인다.
숲에 들어선 지 얼마 안 되어 형제봉에 다다른다. 정상은 나지막하고 널찍하여 한 바퀴 두루 둘러보면 그래도 봉우리라고 소나무 여러 그루가 무성하게 잘 자라고 있다.
형제봉 정상에는 성남에서 이천까지 이어진 경기 옛길 중 하나인 영남길과 만난다. 경기옛길은 경기도에서 조선 시대 한양과 지방을 연결하는 교통로 중 경기도를 지나는 주요 도로망을 복원했다. 도에서 각계 전문가와 옛 문헌기록을 조사하고 고증도 하여 옛길을 복원했다 한다. 그런데 근현대사 도시가 개발되는 과정에서 길이 원형 그대로 남아 있을 리 없다. 대신 옛길 노선과 비슷하게 대안을 만들고 탐방로 노선을 만든 후 안내판을 설치했다. 형제봉부터는 불곡산까지 넘어가는 길 따라 영남길 안내판이 눈에 잘 띄었는데, 누비길 표지판과 영남길 표지판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길을 안내하고 있다.
불곡산이 시가지 공원과 연결된 곳이 많은 지라 누비길이 산책로처럼 느껴진다. 무리하지 않고 숲 속을 거닐자고 할 때 찾으면 딱 좋다. 사람들이 많이 찾을 만한 길이다.
가는 길에는 바위나 돌이 없고 흙으로 포장된 듯하니 과연 흙산이라 부를 만했다. 숲길은 흙바닥이고 낙엽이 쌓이면 푹신할 법한데 사람들이 워낙 많이 밟아서인지 바닥은 콘크리트 바닥처럼 단단하다. 낙엽도 오가는 사람들 발길에 부서져 흙먼지가 되어 날아갔는지 길에는 낙엽 한 장 떨어져 있지 못했다. 흙길만 고스란히 드러나 발걸음 옮길 때마다 흙먼지가 폴폴 날린다.
그런데, 사람들이 많이 찾는 숲길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등산 이용객이 많아지면 아무래도 부정적인 영향이 더 많을 수밖에 없다. 곧바로 산림에 영향을 주고 생태계를 훼손할 수 있다. 숲길과 주변이 훼손되는 과정은 숲길바닥의 흙이 파이는 것부터 시작된다. 등산객이 길을 이용하면서 발자국에 의해 땅 위 풀이 훼손되고 낙엽이 유실되어 나지화 된다. 사람들 발길에 땅의 토양 공극은 감소하고 공기나 빗물이 스며들기 힘들어져 등산로는 빗물에 토양이 유실되고 노면은 세굴 된다. 사람들이 더 많이 숲길을 찾게 되면 노면은 더욱 침식되어 주변 나무뿌리가 뒤엉켜 훤히 드러나고 암반이 드러난다. 이런 등산로는 사람들이 불편하므로 옆길로 지나가거나 샛길로 빠져 새로운 등산로를 만든다. 숲길 폭이 넓혀지면서 주변 식생 공간으로 훼손 범위가 커진다. 그래서 자연도 사람이 이용할라 치면 이제는 돌봐주어야 할 대상이 된 것이다.
한 시간이 훨씬 지나고 나서야 불곡산 정상에 도착했다. 정상에 막상 오르니 형제봉 위가 작은 체육공원이라면 여기는 좀 과장하여 대운동장이다. 봉우리 널찍한 공터에 서쪽 시내를 내려다볼 수 있는 정자와 이를 중심으로 여러 운동기구가 반원 형태로 설치되었다. 사람들이 각각 하나씩 자리를 맡아 운동하고 있었다. 벤치도 정상 밑에 숲을 조망하도록 포물선 형태로 여럿 설치되었다. 그래도 이곳이 누비길 4구간 정상이다.
불곡산의 정상에 서서 사진이라도 찍을 요량으로 산 정상석이 어디 있나 찾아보면 마치 숨은 보물찾기 하듯이 여기저기 훑어보아야 한다. 그러면 정자 난간 아래에 숨겨지듯이 작은 돌덩이 하나를 겨우 찾을 수 있었다. 영장산 정상석은 작은 묘지 비석같이 작고 얇은데 반해 여기 것은 면이 다듬어지지 않은 돌덩이 하나 올려놓은 모양새다. 투박한 질감의 화강석 돌에 음각으로 쓰인 글자는 불곡산 정상 335m로 간단명료하고 단출하다.
불곡산은 원래 명칭이 성덕산이었다. 백제 때부터 임금의 성덕으로 가득 찬 산이라서 성덕산이라 불렀는데, 이는 태자궁에서 훈련을 할 때에 영장산부터 성덕산으로 이어진 훈련코스를 특별히 왕이 동참하여 사냥에 나서면서 많은 백성이 왕의 성덕이 영원하라는 뜻의 '성덕영세'를 외쳤다는 데서 유래한다. 조선 시대에도 태종과 세종이 이 성덕산에 온 기록도 있을 만큼 유서가 있는 산 이름이다. 그런데 분당신도시 개발사업 때 현장지표 조사하는 직원들이 이곳에 와서 원주민들에게 저 산 이름이 뭐냐고 물어봤다고 한다. 사람들이 제각기 큰 절골과 작은 절골이라 다르게 부르자 산 이름이 없는 줄 알고 계곡에 절터가 많다고 불곡산이라고 쓴 것이 지금까지 이어졌다고 한다.
불곡산 정상의 정자 아래서 노인분들 몇 분 둘러앉아 막걸리 몇 잔 돌리며 마시고 있다. 몇 달 전부터 전국의 국립공원 및 도립공원에서는 음주 산행이 금지되어 술 마시다 걸리면 과태료도 물어야 한다. 하지만 불곡산이 지정 공원이 아니기에 딱히 술잔을 부딪혔다고 단속할 수는 없다. 하지만 산행 중 음주로 인한 사고가 간간이 들리는 것을 보면 낮은 산이라 해도 음주 산행은 조심해야 할 것이다.
노인과 단풍잎 (백거이)
늦가을 찬바람 을씨년스러운 나무
술잔 손에 든 쓸쓸한 노인
취한 모습 서리 맞은 나뭇잎 같아
불그레하지만 청춘은 아니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