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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간 Oct 06. 2022

사카린 아버지

아버지와 아버지 애인 모시고 제주여행 4

  아빠는 나를 사랑하는 것이 분명하다. 여행 3일 차 때 마라도에 가기 위해 서귀포시의 송악산으로 갔다. 오후의 기상이 좋지 않을 것으로 판단된다며 배 시간이 변경된 바람에 성산일출봉을 부리나케 내려와야만 했다. 제주도의 동쪽에서 서쪽까지 내달리는 동안 엄청 집중하며 운전했다. 주차가 만만치 않았는데 조수석에 있던 아빠가 직접 내려 주차 자리를 알아봐 주었다. 배를 타러 허겁지겁 이동했다. 그런데 예약한 표는 예약일 뿐, 발권을 해야 한다며 매표소를 다녀오라고 했다. 배가 출발하기까지 9분 정도밖에 안 남은 상황이었다. 아빠와 아줌마의 신분증을 낚아채듯 가지고 뛰었다.

  손을 발발 떨며 표를 교환하고 배를 탔는데 타자마자 거의 곧장 출발했다. 땀이 줄줄 흘렀다. 

  "땀 봐라. 수건 없냐?"

  퉁명스러운 듯했지만 걱정이었다. 휴지로 대충 땀을 닦았다. 

  "우리 딸이 뛰어가는데 어찌나 미안하던지... 내가 뛰었어야 하는데. 부모는 주는 사람인데."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진심인 것 같아 가슴이 뭉클했다. 

  "미안한 걸 고맙다고 얘기할게. 고마워."

  아빠는 종종 악마에서 천사로 변했다.


  집단 상담에 갔을 때 아버지에 대한 얘기를 했다. 펑펑 울며 얘기했던지라 정확히 어떤 내용을 말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 아빠가 나를 어떻게 이용하고 착취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를 떠날 수 없는 내 감정을 얘기했던 것 같다.

  "아빠의 애정과 다정함이 사카린 같네요. 설탕도 아니고 영양가가 없는... 사람을 이용하고 잘 삐치시고 투정을 부리시고 애를 태우게 하네요. 아버지가 아니라 애인인가? 하는 느낌도 들고... 이게 애인이라면 헤어져야 해요. 아버지니까, 천륜이니까 어쩔 수 없지만..."

  별로 길게 얘기하지 않았는데도 우리 아빠에 대해 바로 이해하시는 것 같았다. '사카린'이라는 비유는 너무나 적절했다. 나는 돌봄과 사랑을 받고 싶었으므로 사카린이라도 먹고 싶었다. 아빠가 잘해줄 때는 사카린처럼 달콤했다. 마치 마라도로 가는 배에서 고맙다는 표현을 할 때처럼. 


  아빠는 경제적으로 나를 부양했다. 서울로 대학 진학을 하게 되어 같이 서울에 올라와서 자취방을 구하고 아빠 혼자 부산으로 내려가는 KTX를 타기 전, 서울역에서 아빠는 눈물을 훔쳤다. '시집보내는 느낌이네.'라고 말했다. 오랜만에 부산에 내려가면 아빠는 내 옆을 서성거렸다. 부산에 내려가면 종종 같이 등산을 했는데 등산로까지 가는 버스에서는 나란히 앉았다. 아줌마는 따로 앉았다. 이긴 기분. 나는 피로 맺어져 있어! 저상버스가 슈욱 가라앉는 걸 관찰하며 나에게 조잘조잘 말하기도 하고 뉴스에서 봤던 얘기를 하기도 했다. 서울로 올라오는 날엔 아줌마 몰래 내 손에 용돈을 쥐어주기도 했다. 

  그래서 난 더욱 혼란스러웠다. 내가 왜 아빠 때문에 고통스러운지가 머리로 잘 이해되지 않았다. 아빠는 날 사랑하는 것 같은데, 난 왜 이렇게 목이 마를까? 이게 다 아줌마 때문인가? 아빠가 나에게 쌍욕을 퍼부었을 때는 '아빠가 너무 힘든 상황이어서'라고 이해했다. 아빠도 어쩔 수 없어서, 자기 감정을 처리하지 못해서 나한테 이러시는 거야... 매 맞는 아내와 다름없었다. 그리고 배신감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어떻게 아빠가 나에게 이럴 수가 있나.

  엄마도 마찬가지였다. 엄마도 나를 사랑했던 것이 분명하다. 엄마는 혈액암 진단을 받았는데 자신의 죽음을 종종 생각하시다가 "자식한테 다 주고 갈게."라는 말을 하셨다. 나랑 시장 돌아다니는 걸 좋아하셨는데 양말이나 모자 같은 걸 사주면서 "자식한테 주는 건 하나도 안 아깝다."라고 하셨다. 그렇지만 당신을 돌보기 위해 직장을 그만두고 부산으로 내려오라는 둥, 청소와 요리를 시종 부리듯 부리기도 하고, 커피 가져와라, 커피를 내오면 과도 사와라, 과도를 사 오면 과일 깎아라 요구가 너무 많았다. 요구대로 안 해주면 '나쁜 년'이 되었다. 내가 무얼 하며 시간을 보내는지, 내가 어떤 심정으로 사는지에 대한 관심은 전혀 없었다. 오로지 자신을 위한 딸이기를 요구했다. 심지어 엄마는 12살의 나를 두고 집을 나간 사람이었다.

  부모가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지 배신감에 치를 떨었다. 속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를 사랑한다더니,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요. 속은 느낌은 친구 관계에서도 반복되었다. 가장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결혼을 하자 마치 버려진 느낌과 동시에 속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자주 만날 수 없게 된 것도, 전화를 걸면 누군가와 통화 중인 것도 마치 아빠와 아줌마 사이에 밀려났던 것과 똑같은 느낌이었다. 다정하게 대해주고, 같이 웃었던 시간들은 그 자체로 소중했던 것임에도 불구하고 속았다는 느낌이 들었다(거의 전 남자 친구이다). 엄마가 돌아가시기 한 달 전, 섬망이 오기 직전에 했던 마지막 통화에서는 나에게 사랑을 많이 못 줘서 미안하다고, 앞으로는 많이 사랑해주겠다고 말했다. 나는 속을까 봐 걱정했다. 믿고 싶은 마음과 믿어서 상처받을까 두려운 마음 사이에 얄팍하게 서 있었다. 

  

  사카린이라는 비유를 집단상담에서 듣고 개인상담에 갔을 때 상담 선생님은 다른 의견을 내셨다. 

  "아빠가 사카린이라고 하면... 그럼 그 사랑을 받은 경미 씨는 뭐가 돼요. 아빠가 믿을 사람은 못 되지. 성격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자기가 어떤지를 모르고 살잖아요, 평생을. 평생을 모르고 사는데 자식이기 때문에 가지는 마음이 불쑥불쑥 나왔다고 생각해요. 너네 때문에 살았다는 말이나 경미 씨가 힘들어할 때 진심으로 같이 힘들어해 주셨던 거... 난 그건 정말 부모의 사랑이라고 생각해요. 대부분은 성격장애의 모습으로 자식을 대하지만... 그렇게 두 가지 모습을 다 가진 아버지인 게 아닐까..."

  나 또한 어떤 성격장애든 진심이 나타나는 게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던 때였다.

  "맞아요. 성격장애도 사랑은 있어요."

  "경미 씨가 엄마나 아빠를 못 믿겠다고 하는 건 병리적인 게 아니라 현실적인 것 같아요."

  마라도에 가는 배에서도 나는 경계에 서 있었다. 믿을까, 말까. 


  마라도에 하선을 하고 짜장면과 짬뽕을 먹었다. 역시나 내가 알아본 식당은 무시하고 가까운 곳으로 아무 데나 들어갔다. 약간 허기가 진 상태여서 맛있게 먹었다. 아줌마가 짬뽕을 처음 먹어본다고 했다. 아줌마는 한글을 몰라서 혼자서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메뉴 주문을 하지 못했다. 아빠에게 의존했고, 아빠는 그런 의존을 자신의 우월성을 충족하는데 썼다. 

  "내가 왜 맥주 안 시켰는 줄 아나? 오늘 하루 종일 운전해서 피곤할 텐데, 갈 때는 내가 운전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술 안 시켰지."

  조식을 제외하고는 식사 때마다 반주를 하는 사람이었다. 아빠는 나를 사랑하는 걸까. 아니, 어떻게 부모가 자식을 안 사랑할 수가 있겠나. 대부분의 부모는 자식을 끔찍이도 사랑한다는 걸 상담자로 있으면서 더 알게 되었다. 동시에 부모도 스스로 해결하지 못한 여러 가지 문제들 때문에 어리석게 표현된다는 것도.

  더 이상 속을까, 속지 않을까 염려하는 것도 지겹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지행동치료의 개념 중에 '자동적 사고'라는 게 있다. 살아오면서 자연스럽게 획득하게 된 인지 과정으로 어떤 사건이나 상황을 맞닥뜨렸을 때 자기가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자동적으로 하게 되는 생각을 말한다. 자동적 사고는 정신분석이론의 무의식과는 다른 개념이지만 본인도 모르게 형성되고 알아차리기가 쉽지 않다는 점에서 비슷한 맥락이다. 상담에서는 자동적 사고를 알아차리고 발견하는 작업을 하기도 한다. 더 나아가면 사고를 수정하는 연습을 하게 될 것이다. 

  나의 자동적 사고 중 하나는 '저 사람이 날 싫어하나?'였다. 불편한 상황이 되면 '날 싫어할까?' 염려하고, 좋은 상황이 되었을 땐 '날 좋아할까?' 가늠했다. 불안하고 고통스러웠다. 화가 날 때도 날 싫어할까 봐 감히(?) 화내지 못했다. 상대방의 마음은 어차피 알 수 없는데 추측함으로써 내 마음과 행동이 꼼짝없이 붙들리는 격이었다. 자동으로 그런 생각이 들더라도 의식적으로 조절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어떤 마음인지가 더 중요한 거 아니겠어? 아빠가 나를 사랑하든, 안 하든 나는 아버지를 사랑한다. 내가 아버지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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