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수 May 27. 2023

식물도 관심과 사랑을 줘야 잘 자란다.

사람은 오죽 더 하겠는가!

식물도 물만 준다고 잘 자라지 않는다.

식물이 그러할진대 사람은 오죽 더 하겠는가? 밥만 주고, 돈만 준다고 아이들은 저절로 잘 자라지 않는다.




젊었을 때는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서 다른 곳에 눈돌릴틈이 없었다.

결혼 전에는 나 자신이 사회의 일원이 되기 위한 공부를 하느라 바쁘다. 그리고 결혼을 하고 나서는 이제

나뿐만 아니라 내 아이를 키워야 하는 일을 하느라 너무 바쁘다.


어느 날 식물에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언제부터였냐고 물어본다면 정확히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아이를 제대로 키운다는 것은 쉽지 않다. 더군다나 형제가 많으면 아무리 사랑을 똑같이 많이 준다고 생각해도 받는 입장에서는 부족하다고 아우성친다.


나도 엄마가 된 건 처음인데 첫째한테 했던걸 둘째 한데 똑같이 하지는 않는다. 지나고 나면 큰애한테 했던 것들에서 시행착오를 겪은 지혜가 쌓이게 된다. 열심히 했지만 그 방법이 먹히지 않는 경우도 많다. 그게 틀린 건 아니지만 아이들만의 특성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아이들은 '왜 똑같이 안 하냐고?' 불평불만을 얘기한다. 자기들도 엄마와 아빠를 똑같이 대하지 않으면서 말이다. 그건  '나는 되고 너는 안된다.'라는 '내로남불' 아닌가?


아이를 키우는 것에 비하면 식물을 키우는 것은 훨씬 쉽다. 물론 식물 키우기만 보면 쉬운 일은 아니다. 사람 키우는 것과 비교하면 쉽다는 것이다. 식물도 물만 준다고 무럭무럭 자라지는 않는다. 똑같은 조건에서 똑같이 물을 준다고 해도 어떤 식물은 잘 자라는데 어떤 식물은 죽어버린다.


같은 조건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식물만의 특성에 맞는 조건을 맞춰 줘야 하는 것이다.

같은 자리라도 태양을 바라보는 자리와 반대편 자리의 가지는 다르게 자란다. 태양을 바로 본 식물의 가지가 훨씬 크고 길게 자란다. 그런데 그런 미세한 차이는 나중에 식물의 큰 차이를 만든다. 한참 지난 다음에 보면 어떤 가지는 쭉 뻗어있는데 어떤 가지는 키가 훨씬 못 미친다. 이런 차이점은 어떻게 인지할 수 있냐고? 그건 바로 관심과 사랑으로 알 수 있는 일이다.


'웬 뜬금없는 사랑과 관심'이냐고? 그건 맞는 말이다. '사랑과 관심'이 있어야, 자꾸 쳐다보고 물이 필요한지 살펴본다. 매일의 관심과 보살핌이 쌓여야 하나의 식물이 잘 자라게 된다. 

하물며 식물도 그러한데 인간의 양육은 어떠할까?




오늘도 학교 갔다 온 아이의 표정을 살펴본다.

이제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에게 오늘 어땠냐고 물어보면, 시원하게 시시콜콜 얘기해주지 않는다. 하지만 매일 아이의 얼굴을 들여다본다면 미세한 변화를 감지할 수 있다.


요즘 매스컴에서 학교폭력으로 스스로 생을 마감한 아이들의 기사들을 볼 수 있다.

도대체 어떻게 같은 반 친구를 지속적으로 그렇게 오랫동안 남들도 모르게 괴롭힐 수 있을까?

더 무서운 것은 그 괴롭힘이 계속되다 보면 반 전체 아이들이 간접 직접적으로 모두 가해자가 된다는 것이다.

알면서도 모른 척한 것도 '가해자'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 부당함을 알면서도 눈감다 보면 그것이 당연하게 되어버린다.


그리고 어느새 '피해자인 아이가 잘못해서' 또는 '그럴만하니까 괴롭힘을 당하는 것]이라고 당위성을 부여한다는 것이다. 아이의 괴로움을 막아줄 수 있는 어른인 누군가가 도와줬더라면 피해자가 죽음 이외에는 어떠한 해결책도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는 요즘 아이에게 학교 갔다 오면 '공부 잘했냐:'라고 물어보지 않는다.

대신에 '친구들이랑 잘 지냈냐?'라고 물어본다. 사춘기 아이가 그렇게 말한다고 자세하게 자신의 학교에 대해 얘기해주지는 않는다. 그래도 매일 아이의 얼굴을 들여다보면 기분이 어떤지 얼굴에서 읽힌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아이의 표정을 살핀다. 관심을 가지고 잘 살펴보지 않으면 쉽게 깨어져버리는 유리같이 살살 다루고 있다. 


얼마 전에 혼자 길게 뻗어서 전체적으로 밸런스가 맞지 않는 가지를 하나 잘랐다. 자른 가지는 물에다 '물꽂이'를 했다. '물꽂이'한 식물을 계속해서 물을 갈아주면서 지켜봤더니, 뿌리가 잘 내렸다. 뿌리가 내린 식물을 화분에다가 별도로 심었는데 새로운 이파리까지 나면서 잘 자라고 있다.



분가시켰더니 잘 자라는 아이들 같다.  식물화분에서 오늘도 삶의 공통점을 느낀다. ㅎㅎ






작가의 이전글 바빠야 다른 생각이 안 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