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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수 Mar 19. 2022

그 많은 화분은 어디 갔을까?

우리 아버지는 집에서 식물 키우는 걸 좋아하셨다.

내가 기억하는 유년시절 내내 말이다.

그런데 우리 집은 식구는 많은데 아주 작은집이었다.

화분을 채우기는 너무나 작은집...

더 큰 문제는 화분으로 인해서 벌레가 생긴다는 것이다.

과일을 먹고 남은 과일 껍질이나 영양이 된다면서 어떤 때는 먹다 남은 단호박이나 고구마까지 화분 위에다 올려놓곤 했다.

물론 화분에는 엄청 좋은 영양분이 됐다. 잎이 윤기가 흐르고 더없이 예쁘게 자랐다.

그러나 화분에 벌레가 생기기 시작했다. 나는 화분에서 꿈틀거리는 벌레가 너무나 싫었다.

"화분 좀 버리라고!" "아니면 음식을 화분에 주지 말라고!" 얼마나 얘기를 많이 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나의 말은 미약할 뿐이고 아버지의 고집은 누구도 꺾을 수 없었다.


아버지가 없는 동안에 화분을 버리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그 화분은 줄어들지는 않고 자꾸만 늘어만 갔다.


결혼을 하고 집을 나오면서 나의 기억 속의 화분은 점점 희미해져 갔다.

관심 밖의 일이 됐다. 가끔 집에 가면 화분 근처에는 웬만하면 앉지도 않는 타협점을 찾았다고나 할까?


그런데 그 좋아하시는 화분이 일순간 사라졌다.

 



남동생이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부모님 댁에 아이를 맡기고 난 후부터 말이다.

우리도 그 화분이 이해가 안 가는데, 며느리 눈에는 얼마나 싫었겠는가?

남동생이 화분을 버리지 않으면 집에다 아이를 맡기지 않고 그 갓난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긴다고 한 것이다.

물론 당연히 부모님의 백기투항이었다.

결혼 못할까 봐 전전긍긍하던 남동생이 결혼해서 눈에 넣어도 하나도 안 아플 아이를 낳았는데, 어떻게

이기실 수가 있겠는가?

하지만 그 오랜 세월 그리도 우리말을 안 들어주시던 아버지의 이러한 행동은 이해는 갔지만, 한편으로는

서운한 마음도 들었다.

이렇게 쉽게 버릴 수 있는걸 딸들이 그렇게 질색하는데도 버리기는커녕 매년 개수를 늘리셨으니 말이다.


어쨌든 그 애증의 화분은 남동생 아이의 탄생으로 인해서 부모님 댁에서 모두 사라져 버렸다.




우리 아버지는 이제 집에서 화분을 담으시던 눈에 아이를 담는다.

아이를 보시는 눈이 너무나 기뻐 보인다.

"아~~ 애정도의 문제였구나!"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존재가 부모님 댁에 들어온 이후로 우리 집의 작은 잡음은 사라져 버렸다.





나는 유년시절의 애증의 화분 때문인지, 아니면 너무나 바쁘게 살아와서 돌아볼 겨를이 없었는지, 식물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20대에는 집에 있을 날이 없었다.

학업에 직장에 친구에 눈코 뜰 새가 없었다.

30대에는 아이를 키우느라 맞벌이하느라 세월이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고 살았다.

40대에는 아이들 학교, 아이들 행사, 영재원, 나의 직장, 쉴 새 없는 가사노동에 나를 잊고 살았다.

50대 이제는 문득 머리 위 하늘이 보이고 , 먼 산이 보이고, 식물이 눈에 들어온다.


코로나가 시작되면서 프리랜서인 나는 집에 있는 시간이 강제적으로 많아졌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전혀 관심이 없었던 식물에 눈이 가기 시작한 게 말이다.

하나하나 들여오기 시작한 식물화분이 이제는 베란다에 넘쳐난다.

아버지처럼 음식을 화분에 주지는 않는다. 영양제을 주면 되니까 ㅋㅋ


"그 많던 화분은 아버지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존재였을까?"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화분을 들여오기 시작한 나의 마음이 외로움에 기인했으니 말이다.

이제 다 큰 아이들.. 일이 뚝 끊겨 강제적으로 생겨버린 나의 시간들...

거기에 외로움이 스멀스멀 찾아왔다.

그때부터 식물이 나의 눈에 들어왔으니 말이다.


이제 완연한 봄이다.

식물을 더 들이기 좋은 계절이다.

오늘은 꽃시장을 가볼까? ㅋㅋ (안돼! 이제 자리가 없어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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