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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수 Aug 07. 2022

잠 못 드는 밤.. 식물 키우기와
아이 키우기

여전히 아이를 키우는 건 어려워!

요즘 잠 못 드는 밤이 많다.

너무 더워서 뒤척이다 보면 어느새 새벽이 되고 만다.


하루에 20시간은 에어컨을 틀고 사는 것 같다.

원래 나는 더위를 많이 타지는 않는다.

그런데 이번 여름은 유독 더워서 하루에 20시간은 에어컨을 틀고 사는 것 같다.

잘 때 만이라도 에어컨을 안 틀고 자려고 선풍기 바람에 의지해서 잠을 자려고 노력한다.

그러다 보니 너무 덥다. 하지만 에어컨의 냉기도 별로고, 전기세도 너무 부담스러워서 그냥 잠을 청한다.


어떤 정보 프로그램에서 자려고 누워 있어도 잠이 안 오면 일어나서 다른 일을 하다가 졸릴 때 들어가는 방법이 좋다고 했다.

그래도 나는'누워 있다 보면 곧 잠이 들겠지!'라는 생각으로 그냥 누워서 잠을 청하곤 한다.

잠이 안 오니, 생각이 많다.

낮에 하지 못했던 일들이 머릿속을 스쳐간다.

'머릿속으로 내일은 이렇게 해야지! 저렇게 해야지!'계획을 세워본다.

그리고 속상했던 일들이 다시 머릿속에 들어온다.


어제 베란다에서 내가 애지중지 키우던 로즈메리가 저세상으로 갔다.

사실 처음부터 베란다에서 식물을 키웠던 건 아니다.

아이들 키우랴, 맞벌이하랴, 눈코 뜰 새 없이 살았기 때문에 식물의 '식'자에도 관심이 없었다.

어느새 아이들이 커가고 정신적으로 여유가 생기다 보니, 베란다에 식물이 하나둘씩 자리를 차지했다.


그런데 식물을 잘 키우는 것은 만만치가 않다.

아무것도 모를 때는 식물 종류에 상관없이 같은 날 같은양으로 식물에 물을 줬다.

그러면 어떤 식물은 물이 부족해서, 어떤 식물은 물이 많아서 죽어 버린다.

각 식물의 특성에 따라 물은 줘야 하는 시기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같은 종류의 식물이라고 해서 다 똑같은 게 아니다.

나는 유독 식물을 사러 가면 로즈메리가 눈에 들어온다.

로즈메리의 향기는 다른 허브에 비교해도 제일 나는 마음에 든다.

하나둘씩 로즈메리를 집으로 데리고 왔다.

그런데 로즈메리란 식물은 키우기가 녹녹지가 않다.

어제까지도 잘 지내던 녀석이 하나둘씩 잎이 누레지더니 순식간에 죽어버리기 일쑤이다.

그렇게 저세상으로 간 로즈메리 화초가 한 둘이 아니다.


물론 화초 키우기 고수분들은 다르겠지만, 나는 그렇다.

큰 화초를 사 오지 않고 작은 아이를 가지고 와서 열심히 키우고 있다.

큰 화초가 갑자기 죽어버리면, 더 마음이 아프고 돈이 너무 아까우니까 말이다.

1년 동안 애지중지 키운 로즈메리 화초 3개가 있다.

로즈메리는 그렇게 드라마틱하게 쑥쑥 크는 화초는 아니다.

그래도 새잎을 틔우며 조금씩 자라는 모습을 보면서, '이제 나도 좀 키우는군!'라고 안심했다.

그런데 어제 갑자기 1개가 죽어버린 것이다.


화초를 키우다 보니 알게 된 사실인데, 같은 종류의 화초라도 장소에 따라 물 주는 걸 달리해야 한다.

바람이 잘 드는 장소가 있고, 햇빛이 잘 드는 장소가 있다.

모를 때는 화초는 물만 잘 주면 잘 자라는 줄 알았다.

하지만 화초는 물, 바람, 햇빛이 모두 중요하다.

내가 놓았던 장소에 따라 3가지 조건이 달라지기 때문에 다른 방법으로 관리를 해줘야 한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니까, 아이들 키우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은 같은 부모 밑에서 같은 사랑을 주고 키우지만 서로 다르게 성장한다.

나는 똑같이 사랑을 준다고 생각해도 아이가 아니라면 아닌 것이다.


성격도 다르고, 키도 다르고, 몸무게도 다르다.

먹을걸 같은걸 줘도 선호하는 것이 다르기 때문에 먹는 양도 종류도 다르다.

집에 같은 책을 사놓아도 어떤 아이는 읽지만, 어떤 아이는 읽지 않는다.

한마디로 인풋은 같아도 아웃풋은 각기 다르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육체적으로 참 힘들다.

잠깐 동안이라도 쉴 틈을 주지 않는다.


아이들이 커서 이제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많아지면 정신적으로 힘들어진다.

아이들이 부모의 말을 안 듣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의도로 얘기했어도, 아이가 저렇게 이해했으면 그게 맞는 거다.

참, 이해시키기가 어렵다.

어제는 괜찮았는데, 오늘은 또 괜찮지가 않은 일이 태반이다.


큰딸아이는 사춘기가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왔다.

그런데 지금 20살인데, 아직도 사춘기인 것 같다.

나의 갱년기보다 딸의 사춘기가 항상 이긴다.

이제는 그냥 성격인 것 같다는 결론에 도달하기까지 했다.


반면에 지금 중3인 막내딸은 아직도 사춘기가 아닌 것 같다.

언니한테 양보 잘하고 항상 웃는 아이다.

가끔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얘기하는 것이 달라진 것이다.

식구들을 힘들게 하거나, 고집을 부리지도 않는다.

나중에 사춘기가 따로 올진 모르지만 지금은 그렇다.


그래도 똑같이 사랑을 주려고 노력하고, 정성을 기울인다.

결과는 아이들에 달려있는 거니까 말이다.


세상을 스스로 헤쳐나갈 힘을 엄마인 나는 주고 싶다.

식물에 물은 주듯 사랑을 주고, 식물에 햇빛을 주듯 정성을 주고, 식물에 바람을 주듯 보살핌을 줄 테니, 오늘도 무럭무럭 자라길 바랄 뿐이다.


엄마 옆에서 건강하게 행복하게 자라줘!!

항상 고맙고 사랑한다.


식물을 보면서 아이들까지 떠올리는 잠 못 드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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