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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광 Oct 01. 2024

제18화 거북이 펜션, 다시 문을 열다

 7월 1일, 드디어 두 달 동안 새 단장을 마친 거북이 펜션이 다시 문을 열었다. 예전 그대로의 거북이 펜션이 아니었다. 먼저 펜션은 단순 숙박 시설이 아닌 책과 휴식을 접목한 북스테이로 운영된다. 객실에도 책을 읽을 수 있는 책상과 의자를 두었고, 정원에도 앉아서 책을 읽을 수 있는 벤치를 곳곳에 마련했다. 따라서 숙박 앱에도 이름을 거북이 북스테이로 바꾸고 책방 사업자 등록을 했다. 서가는 선영이 구상한 대로 복도에 차려졌다. 서가에 책을 장르별로 진열하고 꾸미는 일은 현정과 수창이 주말에 내려와서 도왔다. 또한 커피와 주스, 그리고 디저트를 판매하는 카페 영업을 위해 음식점 사업자 등록도 마쳤다. 초여름이지만 더운 날이 많아 특별 메뉴로 팥빙수도 추가했다. 

 마지막으로 선영은 재하가 제안한 출판사도 등록했다. 재하의 원고가 마무리되는 가을에 출간 작업을 시작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벌써 다른 작가의 출간 기획서와 원고가 들어왔다. 재하처럼 선영이 발굴해서 책을 낸 여성 작가 이해솔이었다. 해솔이 다시 책을 내기 위해 선영이 다니던 출판사에 연락했다가 선영이 퇴사했다는 소식을 듣고 선영에게 연락해 왔다. 해솔 역시 선영이 준비가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책을 내겠다고 하면서 기획서와 원고를 보낸 것이다. 이 소식을 들은 재하가 “제 책이 도서 출판 거북이의 첫 책이 될 줄 알고 있던 터라 조금 아쉽긴 하네요. 그래도 원고가 미리 준비된 작가님이 있으니까, 제가 기분 좋게 양보하겠습니다. 하하하.”라고 에둘러 말하면서 선영을 축하했다. 

 선영은 여전히 자신을 응원해 주는 재하가 고맙다. 마음 같아서는 도서 출판 거북이 이름으로 재하의 책을 가장 먼저 세상에 내놓고 싶다. 재하도 이런 선영의 마음을 잘 알고 있었다. 

 요양병원에서 석 달 만에 퇴원한 미자는 예전처럼 명상 체험 교실을 운영하면서 카페에서 판매할 빵과 쿠키를 굽는다. 그런데 북스테이와 책방과 카페를 운영하기에는 미자와 선영 두 사람만으로는 역부족이었다. 더구나 선영은 출판 작업도 해야 한다. 기존의 관리인 노부부는 나이 때문에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새 직원을 채용했다. 직원은 재하의 사촌 준석이다. 그 이전에 재하가 숙직실로 쓰던 펜션 별관이 비어있는 걸 알고 미자와 선영에게 준석과 슬기 이야기를 하면서 세를 놓으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준석과 슬기는 결혼식 없이 혼인 신고를 마치고 함께 살 신혼집을 구하고 있었다. 임신한 슬기가 안정을 취하면서 지내기에 좋을 것 같다는 말에 미자와 선영도 흔쾌히 승낙했다. 준석은 펜션 별관으로 이사 와서도 여전히 햄버거 가게에서 일했다. 펜션 영업을 시작하기 전에 직원을 채용할 생각이던 미자와 선영은 준석이 새로운 일자리를 구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준석을 직원으로 채용한 것이다. 양식 조리기능사 자격증뿐만 아니라 바리스타 자격증이 있는 준석도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하면서 슬기를 자주 들여다볼 수도 있어서 매우 만족스럽다. 배가 제법 부른 슬기도 운동 삼아 카페에 나와 준석을 도왔다. 미자와 선영은 부모 없이 보육원에서 자란 슬기를 식구처럼 대했고, 슬기도 그런 미자와 선영을 잘 따랐다. 

 준석과 슬기는 미자를 큰 사장님으로, 선영을 작은 사장님으로 불렀다. 그러자 선영이 미자를 사장님으로 부르는 건 괜찮지만 자기는 그렇게 부르지 않는 게 좋겠다고 했다. 그러면 뭐라고 부르면 좋을지 묻는 슬기에게 선영은 “우린 그냥 언니 동생 하는 게 어떨까?”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있던 준석이 “그러면 저도 누나라고 불러도 되죠?” 했다. 

 “이야 동생이 두 명이나 생겨서 그런지 든든한데.” 

 선영이 활짝 웃으며 말하자, 준석과 슬기도 따라 웃었다.

 미자와 선영은 어린 나이에도 책임감 있게 생활하는 준석과 슬기가 대견스러워 두 사람을 볼 때마다 흐뭇했다. 

 반려견도 생겼다. 일전에 재하가 기동에게 개를 부탁했을 때 기동이 흔쾌히 기르던 진돗개 한 마리를 보내주었다. 나이는 진순이와 같았고 이름은 독도였다. 개를 처음 데려왔을 때 미자가 재하에게 이름을 지어달라고 부탁했다. 그러자 재하가 이름을 독도라고 부르자고 한 것이다. 진순이처럼 진돌이나 진구 같은 이름을 기대했던 미자와 선영은 독도라는 다소 의외의 이름을 듣고 서로 얼굴을 바라보며 어리둥절했다.

 “이름을 그렇게 부르자고 하는 무슨 특별한 이유라도 있어요?”라고 묻는 선영에게 재하는 “지난해에 독도를 방문한 적이 있는데 그때 본 독도가 너무 인상적이었어요. 그래서 다음에 반려견 한 마리를 더 기르게 된다면 이름을 독도라고 부르자 했거든요. 이름을 자주 부르면서 그곳을 마음에 새기고 싶은 것도 있고요.” 하고 대답했다. 이 말을 들은 미자와 선영은 그 자리에서 곧장 독도라는 이름을 받아들였다. 독도는 손님들의 안전을 생각해서 본관 뒤편에 있게 했다. 그곳에 있으면 미자나 선영이 오가면서 독도를 볼 수 있었고 뒷문으로 나가 독도와 잠깐씩 놀 수도 있었다. 독도 산책은 주로 재하가 맡았다. 재하는 아침저녁으로 독도와 진순이를 데리고 동네를 산책했다. 재하는 진돗개 두 마리를 앞세우고 동네를 산책하면서 많이 웃게 된다고 그 시간을 좋아했다. 준석도 펜션을 둘러볼 때 항상 독도를 앞세우고 다녔다. 가끔 운동장에서 준석이 공을 멀리 던지면 독도가 곧장 뛰어가서 공을 찾아서 물고 왔다. 미자와 선영뿐 아니라 펜션 손님들도 그 모습을 구경하면서 즐거워했다. 

 숙박 앱에는 한 달 전부터 거북이 펜션이 새롭게 단장을 끝내고 7월부터 북스테이 손님 예약을 받는다는 공지를 올렸다. ‘여기는 거북이 펜션입니다’가 쓰인 배너 아래로 북스테이뿐 아니라 책방과 카페 영업도 함께 시작한다는 안내가 사진과 함께 이어졌다. 

 소셜미디어 홍보는 슬기가 맡았다. 누가 하라고 한 게 아니라 슬기 스스로 해보고 싶다고 한 것이다. 슬기는 평상시 소셜미디어를 애용하고 있는 터라 펜션 홍보도 재미있어했다. 소셜미디어에 올릴 사진도 슬기가 직접 찍었다. 그것뿐만 아니라 펜션을 드론으로 촬영한 동영상도 숙박 앱과 소셜미디어에 올렸다. 슬기는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취미 교실에서 6개월간 드론 촬영을 배웠었다. 사진과 동영상을 게시하기 전에는 선영에게 의견을 물었고 그럴 때마다 선영은 사진과 영상뿐 아니라 설명 문구도 맘에 든다며 슬기를 칭찬했다. 그러면서 아예 슬기를 직원으로 채용해 예약 손님 관리와 홍보를 맡겼다. 컴퓨터와 휴대전화로 힘들이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이라 슬기도 좋아했다.

 슬기가 홍보를 잘해서인지 영업도 하기 전에 7월 모든 주말 예약이 완료되었다. 주중에도 대여섯 명의 손님이 머물렀다. 북스테이를 원하는 펜션 손님들은 숙박 앱으로 예약할 때 읽고 싶은 책을 입력했다. 그러면 선영이 책을 미리 준비해 두었다가 손님이 왔을 때 객실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 손님들은 객실에서 책을 읽기도 하고 정원 벤치나 잔디밭에 앉아 책을 읽기도 했다. 

 객실에는 손님들이 이용 후기를 남길 수 있도록 공책을 비치해 두었다. 손님들은 거기에 짧게는 한두 줄, 길게는 한 페이지 가득 소감을 남겼다. 손님들이 떠나고 나면 선영은 공책을 가져다가 미자, 준석, 슬기와 함께 돌아가며 읽었다. 손님들로부터 개선할 점을 듣기 위해 시작한 것이지만, 개선할 점보다는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오롯이 책을 읽으며 쉴 수 있어서 좋았다는 내용이 많았다. 다음으로는 음식이 맛있었다는 칭찬이 많았다. 식사를 준비하는 준석은 음식을 칭찬하는 메모를 읽을 때마다 “제가 이래서 요리하는 걸 좋아한다니까요.” 하면서 입꼬리가 올라갔다. 미자도 “준석이 요리하는 걸 보고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니까.” 하면서 준석을 훌륭한 요리사라고 치켜세웠다. 그다음으로 밤 야경이 근사했다는 내용이 많았다. 주로 ‘조명이 켜진 분수대를 보고 있으면 너무 황홀한 기분이 들었다’, ‘소원을 빌면서 동전을 던졌는데 꼭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밤에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책을 읽을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같은 글이었다. 간혹 ‘독도가 보고 싶어서 또 오겠다’는 손님도 있었다. 이 글을 읽고 슬기는 소셜미디어 계정에 독도 사진을 자주 올렸다. 그럴 때마다 꽤 많은 사람이 그 게시물에 ‘좋아요’를 누르고 ‘귀엽다’라거나 ‘늠름하게 생겼다’, ‘보고 싶다’, ‘독도는 내가 지킨다’ 같은 댓글을 남겼다. 

 북스테이 손님이 아니라도 책방과 카페에 오는 손님들도 많았다. 자가용으로 오는 사람도 있었지만, 마을버스를 타고 오는 사람도 많았다. 마을버스를 타고 오는 사람들은 버스 간격이 한 시간인 것을 오히려 좋아했다. 그동안 서가를 둘러보고 책을 사서 카페로 이동해 커피와 디저트를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손님들은 카페에서 두 시간 정도 머물며 구매한 책을 읽다 가기도 했다. 

 북스테이 손님만 챙기는 게 아니라 카페와 책방에서도 손님을 맞아야 해서 미자는 명상 수업을 주말에만 진행했다. 예전에 진행했던 다도 수업은 없애고 그 대신 명상 수업을 늘렸다. 주말에 진행하는 명상 수업에 참여하기 위해 북스테이를 예약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미자는 수도원에 있는 수사나 수녀를 초대해 진행하는 명상 수업도 계획했다.

 재하의 도움으로 말끔하게 단장된 텃밭에는 어느새 각종 채소가 먹을 수 있을 정도로 자랐다. 준석은 식사 때마다 텃밭에서 기른 채소로 샐러드를 만들어 북스테이 손님 식탁에 올렸다. 나중에는 준석의 제안으로 방울토마토와 블루베리도 기르기 시작했다. 

 펜션에서 필요한 물품은 준석의 아버지 기동이 운영하는 K마트에 주문했다. 주문한 물품은 기동이 본인의 차로 배달해 주었다. 기동은 아들에게는 무뚝뚝했지만, 펜션에 올 때마다 영양제와 과일을 챙겨와 슬기에게 주고 갈 정도로 무척이나 다정한 시아버지였다. 마트가 바쁠 때는 재하가 차로 물품을 가져왔다. 미자와 선영이 재하에게 고맙다고 할 때마다 재하는 이웃사촌끼린데 뭐 어떠냐고 호탕하게 웃었다. 보통 미자와 선영, 준석, 슬기는 휴게실에서 함께 밥을 먹었는데 재하도 와서 밥을 먹을 때가 많았다. 그만큼 재하는 펜션에 자주 내려와 펜션 일을 도왔다. 어떨 때는 아예 노트북을 가지고 와서 하루 종일 서가에 앉아 글을 쓸 때도 있었다. 선영은 그런 재하에게 서가에 손님들이 왔다갔다해서 글이 잘 안 써지지 않냐면서 그냥 집에 가서 편하게 글 쓰라고 했다. 그러면 재하는 손사래를 치면서 서가에 앉아 있으면 마음이 안정되어서 오히려 글이 더 잘 써진다고 했다.

 선영은 펜션을 단장하면서도 너무 일을 벌이는 건 아닌지 걱정스러웠다. 그때 재하는 “아무리 생각해도 뭔가를 시작하기에 지금만큼 좋을 수는 없을 거예요. 지금은 시작 전이라 걱정스러울 수는 있겠지만 막상 시작하고 나면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 거니까 두고 보세요.”라며 선영의 걱정을 날려버렸다. 

 어느새 준석과 슬기가 가족처럼 지내게 된 것도 선영은 고마울 따름이었다. 미자도 식사 때마다 준석과 슬기와 밥을 같이 먹어서인지 더 이상 남처럼 느껴지지 않는다면서 좋아했다. 준석과 슬기도 여기에 들어와 살면서 안정을 찾을 수 있어서 좋다고 하는 것 또한 고마운 일이었다.

 7월 한 달 동안 영업을 하면서 처음에는 정신이 없던 적도 있었지만, 서로 도와가며 하다 보니 금세 일이 익숙해졌고 여유를 찾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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