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wing_친정의 힘(아빠 편)

2020.02.24.달날

by 이길 colour





[출처: 핀터레스트, 그림: 이길_ 손에 육아, 한 손에 일]


친정이라는 비빌 언덕이 없었다면

난 내 삶을 유지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한 손에 육아, 다른 한 손에 일이라는

아령을 들고 있는 동안

격렬한 근육경련으로 쓰러져

일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큰애를 키우며 아빠의 전폭적인 도움을 받았다.

아버지가 아들을 힘들어하는 반면,

모든 할아버지는 남자 손주를 고이고이 여긴다.

특히나 외할아버지의 보살핌은

부모의 애정을 능가하는 경우가 꽤나 많다.


더욱이 우리 아빠는

평소에 자상하고 규칙적인 분이라

분유를 먹이는 시간부터

애기구덕을 흔드는 리듬까지

한치의 벗어남이 없었다.


아빠는 손에서 아이를 내려놓지 않았다.

집에서는 아기띠를 하거나

애기구덕을 흔들며 책을 읽어 주었고,

심지어 외출할 때에도

의 손을 꼭 잡은 채

친구를 만나거나 여가를 즐기셨다.

가끔 컴으로 그날의 주식 시세를 확인하면서도

발끝으로 일정한 리듬에 맞추어

애기구덕을 흔들던 아빠의 모습을

잊을 수 없다.

그 안에서 세상 시름 따위는

잊게 하는 아이의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애기구덕: 아기를 눕히고 흔들어 재울 수 있는 제주 전통 요람)


열과 기침 유난히 약했던 아이는

잘 먹고, 제시간에 자며, 건강해졌고,

아빠는 나이 들어갔다.


그동안

나는 경력단절녀가 되지 않기 위해

수많은 이력서를 제출하고 면접을 보러 다녔다.

살림과 육아에 소질 없는

잼병이라고 생각했던 나는

든든한 아빠를 믿고

쓰라린 탈락의 고배 몇 잔 정도는

원샷할 수 있는 오기와 여유가 생겼다.

이력서와 자기소개서의 구구절절한 사연이 늘어갔고,

쭈뼛거리며 두렵던 면접이

오히려 설렘으로 다가왔다

그동안 아빠는 나이 들어갔다.


여러 차례 아니 수십 차례의

이력서를 제출하고 면접을 본 뒤에야

겨우 일을 얻을 수 있었다.

최종면접까지 갔지만

남자 직원을 채용할 것이 거의 확실시되었던

들러리 면접에서 탈락하고

아빠에게 세상의 불합리함을 한창 토로하던 중이었다.

집요한 질문으로 나를 곤경에 처하게 했던

밉상스러운 면접위원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나의 답변이 인상적이었으며,

함께 일해보자는 제안 했다.

혹시나

일부러 떨어트린 건 아닌가라는

고마운 의심이 들었지만,

나쁘지 않았다.

그토록 원하던 일, 일, 일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억울했던 마음이 가시고, 오히려 차분해졌다.

그동안 아빠는 나이 들어갔다.


일을 시작하며,

나와 아이는 아빠에게

더 많은 것들을 요구하고

더 많은 시간을 내어달라고 떼를 썼다.

아빠는 언제나 흔쾌히 응했고,

그동안 아빠는 나이 들어갔다.


아빠가 나이 들어가는 동안,

나는 어렵사리 경력유지녀로 자리를 잡았고

아이는 심성이 너무 착해 걱정스러운

청소년으로 성장해 가는 과정에

까다롭고 예민한 여동생이 생겼다.


삶을 마무리하는 시간까지도

내 걱정을 놓지 않으셨던

아빠의 보살핌과 지지에

나는 '아빠'란 단어만 나와도

가슴이 뭉클해지며 눈물이 줄줄 흐르는

자동적 사고와 행동 패턴을 달고 산다.


돌이켜보면,

일과 육아라는 아령을 들고

낑낑대던 나를 둘러업고 있었을

아빠가 느끼는 삶의 무게는 어떠했을지

단 한 번도 묻지 못했다.

내 삶의 균형만 생각했지

뒤뚱거리는 나를 보며

시리도록 아팠을 아빠의 마음은 헤아리지 못했다.


사랑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이라 하니

받은 것을 고스란히 아이들에게 전해줘야 할 텐데,

가끔은 스스로의 기대에도 못미치는 내 모습이

버겁고 화가 나 주체하지 못할 때가 많다.

그럴 때마다 조그맣게 물러본다.

'아빠'

그립고 정겹지만, 미안한 이름이다.

식지 않을 따뜻함을 지닌 이름이 이끄는 길을 향하여

아이들이 성장할 동안

나 역시 차분히 나이 들어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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