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이후 맞은 두 번째 가을 이야기
서랍에 넣어놓고 잊었던 글을 꺼내 올립니다.
이스턴 씨에라(Eastern Sierra)는 네 계절 모두 볼만하거나 즐길만한 것들이 즐비한 곳이다. 씨에라 산맥의 동쪽에 나있는 395번 도로는 모하비 사막의 한편을 지나고 있는데, 때때로 덥고 강한 바람이 몰아치는 지역이다. 이 더운 바람이 높직한 씨에라 산맥을 타고 넘어오는 찬 바람과 만나는 가을 무렵부터는 구름을 일으켜 씨에라 산맥에는 가을부터 많은 눈이 내린다. 여기에 있는 산들은 대부분 8천 피트(약 2천4백 미터)가 넘어 더운 여름까지 눈이 녹지 않는 곳이 많다. 겉에서 보면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민둥산처럼 보여도, 안으로 조금만 들어가면 겉보기와는 영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수많은 호수가 있고 호수 사이를 흐르는 물줄기, 냇물을 끼고 자라는 갖은 나무와 풀들이 이루는 아름다운 풍경은 다른 이름난 공원에 버금간다. 그들 사이사이에 수많은 길이 나있고, 낚시터가 있고, 스키장, 캠핑장들이 널려있어서 사시사철 야외활동을 즐기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지난해 봄 무렵부터 번지기 시작한 전염병 때문에 신음한 지 벌써 이태나 됐다. 엎친데 덮친 격일까? 캘리포니아는 오랜 가뭄에 시달리던 터라 물이 가득해야 할 호수나 연못이 메마르다 못해 거무퇴퇴한 바닥을 드러냈다. 물에 기대 살아가던 나무나 풀들도 목이 탔는지 가을이 오지도 않았는데 잎이 누렇게 떠 떨어진 곳이 많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가을을 찾아 나선 발걸음이 가벼울 리 없다. 지난해만 해도 고운 가을빛에 위로를 받았는데, 그마저도 어려워졌나 보다. 그런데 무엇이든 모든 것이 한꺼번에 달라지는 법은 없는 모양이다. 한쪽이 기울면 다른 쪽은 차오르듯이 어디든 한 바퀴 돌다 보면 모두가 한 빛깔로 덮인 곳은 없고, 한 가지 빛깔이라고 해도 톺아보면 어디가 달라도 다르다.
다행히도 이름이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더라도 제 나름의 가을빛을 드러낸 곳들이 있었다. 세월이 다소 험하고 힘들어도 계절은 어김이 없다. 하늘과 구름과 나무, 그곳 사이를 스치는 바람에 따스한 위로를 받을 수 있었다.
산 넘어 남촌에도 가을이 왔다.
가을빛 역력한 물결 위로 구름이 스친다.
모두가 떠나간 호숫가
뒹구는 작은 배 한 척 하늘을 달리고,
휘적휘적 구름이 나를 감싼다.
따사로운 햇살,
선명한 단풍 사이로
사랑이 넘나 든다.
골짜기 돌 틈 사이를 흐르는 물줄기,
싸한 바람에 사시나무 흐느끼듯 떨고,
덩달아 싸한 가슴, 스치는 햇살에 위로를 받는다.
한길 옆 자리한 가정집 뒤뜰에 울긋불긋 가을이 내려앉았다.
그 집 사는 이들이야 늘 보는 것들이니 심드렁할지도 모를 일이나
나그네 눈에는 그저 어여쁠 뿐.
사람들로 북적이는 이름난 곳을 조금 벗어나면
졸졸졸 시냇물 한가롭게 흐르는 곳
넘쳐나는 빛깔에 겨워
아스팬 몇 그루
가을의 정취를 풍기고 있다.
낮은 물길에 기대어 홀로 자란 나무가 대견하다.
2021년 가을에 써서 서랍에 넣어놨던 글을 다시 꺼내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