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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에 홀리다 Oct 30. 2019

미국의 비경, 코튼우드 캐니언

코튼우드 캐니언(Cottonwood Canyon), Utah

  무엇인가에 사로잡히기가 참 어렵다. 세상은 온통 사로잡힌 사람들로 넘쳐나건만 어찌 된 일인지 그러기가 어렵다. 성격 탓도 있을 테고, 생각 탓도 있을 텐데 어쨌든 사로잡힐 일이 없다 보니 사는 일도 그다지 재미가 없는 때도 많다. 그러나 무엇이건 한번 사로잡히고 나면 헤어 나오기가 어렵기도 하다. 그 가운데 하나가 여행이다. 어떤 이들은 여행을 밥먹듯이 하므로 굳이 여행이라고 할 것도 없이 그저 일상생활인 듯 여행인 듯 살기도 한다. 또 다른 이들은 한 곳에 오래 머물며 그곳을 구석구석 톺아보려는 이들도 있다. 흔히 여행에 미쳤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들, 이런 이들이야말로 여행에 사로잡혔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찾은 코튼우드 캐니언

  어떤 곳을 마음에 두고 오랫동안 생각하고 있다면, 그곳에 사로잡혔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코튼우드 캐니언은 오랫동안 마음에 담아두고 있던 곳으로 한동안 이런저런 자료를 뒤적이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처음 그곳에 가려고 준비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몇 번인가 계절을 넘겼다. 그리고 지난해 드디어 갈 기회를 잡았는데 안타깝게도 문턱에서 되돌아서야만 했다. 오프로드는 비가 오면 진흙길이 진흙탕이 되어 제아무리 사륜구동이라도 어려워지는데, 하필이면 바로 그 날 문턱에 접어들면서 비를 만났기 때문이다. 돌아서는 마음이 무거웠지만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이번에 덥다는 것 말고는 별다른 문제없이 코튼우드 캐니언을 찾을 수 있었다.


  코튼우드 캐니언 길(Cottonwood Canyon Road)은 캐니언을 따라 난 40여 마일 정도 비포장 길을 가는 동안 하이킹, 산악자전거, 오프로딩, 캠핑 등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이 길은 사실 경치가 좋기로 이름난 유타 12번 도로 중간쯤에 있는 헨리빌(Henriville)에서 애리조나의  페이지(Page)로 갈 수 있는 지름길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포장된 길이 아니다 보니 이용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고, 주로 경치를 보거나 하이킹을 할 요량으로 이 길을 이용한다. 시닉 바이 웨이 12번 길에 있는 브라이스 국립공원을 지나 몇 마일 더 가면 헨리빌이 나온다. 이정표에 따라 우회전하여 편도 1차선의 좁은 포장도로가 끝나갈 무렵 코닥크롬 베이슨 주립공원나온다. 지난 여행에서는 돌아섰던 그곳이다. 코닥크롬 베이슨 주립공원 입구를 지나면서 바로 비포장 길이 시작하여 약 40여 마일 구간을 가게 된다.

코다크롬 베이슨 주립공원, 여기부터 길은 포장되지 않았다.



그로브너 아치(Grosvenor Arch)

그로브너 아치는 코닥크롬 베이슨 주립공원 입구에서 약 10여 마일 가면 아치로 들어가는 길이 나오는데, 이 길로 1마일 정도 안으로 들어가면 나오는 두 개의 아치가 달린 바위 덩어리다. 이 아치는 처음에는 버틀러 아치(Buttler Arch)로 불렸는데, 1920년대 내셔널 지오그래픽에 등재하면서 당시 대표였던 그로브너(Dr. Gilbert H. Grosvenor)의 이름을 따서 다시 이름을 붙인 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커다란 아치 두 개로 된 이 바위는 수백만 년 전  지각변동으로 만들어진 바위 덩이들이 오랫동안 바람과 비 등에 깎여 만들어졌다.

   

  그로브너 아치까지 가는 동안 길은 그리 험하지 않다. 처음 생각과는 달리 이 정도면 승용차로도 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만큼 바닥이 울퉁불퉁하거나 모래가 많지 않았다. 물론 어떤 곳은 꽤 많이 덜컹거리고 모래가 많아 아무래도 전 구간을 안전하게 지나려면 적어도 SUV는 돼야 한다. 이 구간에 특이할 만한 경치는 없다. 지나다 보면 유타의 특징이라고 할 불그레한 흙과 바위들이 멀리 둘려있었고, 분지의 야트막한 산들엔 침엽수가 듬성듬성 자라고 있어 눈에 띌만한 경치는 없어 보인다. 지루해도 참고 조금 더 가다 보면 야트막한 언덕이 나온다. 이 언덕에서 내려다보면 평지에서는 잘 안 보이는 풍경이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평범하게만 보이는 풍경들이 언덕에 올라 조금 더 넓게 보면 산이며 널찍한 들녘이며 유타에서 많이 볼 수 있을 법한 풍경이 어우러져있다. 이런 풍경을 즐기며 10여 마일 가다 보면 그로브너 아치를 알리는 팻말이 있다. 이길로 한 1마일 들어가 주차장에 차를 대고 조금만 걸으면 아치 가까이 갈 수 있다. 이곳은 두 개의 아치와 주변을 둘러싼 바위들로 이루어진 작은 암석지대다. 다른 곳에 있는 아치들과 견줘보면 그리 뛰어난 볼거리는 없어 보인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가 주변을 둘러보면 이 또한 오랜 시간을 견뎌온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언덕에 오르면 보이는 풍경과 그로브너 아치



코튼우드 캐니언 내로우스(Cottonwood Canyon Narrows)

  따지고 보면 세상에 어디 멋있고 아름다운 곳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모양이 다르고 빛깔이 다르고 크기는 다를지 모르지만, 여기 있는 풍경이 저기 있는 풍경보다 더 낫거나 못한 것은 아니다. 풍경만 그런 것도 아니다. 그 땅에 얹혀사는 나무나 풀들, 곤충과 짐승들, 흙과 바위와 흐르는 물, 하다못해 그곳을 스쳐 지나는 바람과 거기에 터 잡은 사람까지 모든 것들이 모두 그럴 것이다. 너와 내가 크기가 다르다고 덜 존중하고 목소리가 다르다고 낮잡아봐서도 안된다. 더욱이 아는 것이 적거나 배움이 적다고 깔보는 일은 없어야 한다. 그저 있는 곳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고 모양과 빛깔이 다를 뿐이다. 그곳에 어떤 다툼과 차별이 없다. 거기 서있는 사람이 다를 뿐 인적이 드물다고 풍경이 더 멋있거나 더 예쁘거나 아름다운 것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인적이 많다고 더 멋있지도 않다. 이것은 온전히 타자를 마주하는 사람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그로브너 아치를 돌아 나와 가는 길은 이미 지나온 길과 많이 다른 모습니다. 이제부터가 진짜 캐니언이 시작한다고 할까, 주변에 있는 바위며 흙과 돌들이 모양은 물론이고 빛깔과 크기까지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보인다. 이는 실제로 그럴 수도 있고, 거리에 따른 차이라고 할 수도 있다. 여기까지 열린 길은 벌판을 가로지르는 길이었다면 지금부터는 골짜기에 도착한 느낌이다. 그 골짜기를 따라 이어진 길을 따라가다 보면 여러 모양으로 변해온 자연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한눈에 보면 다 같아 보이는 풀빛도 빛에 따라 달리 보이겠지만, 그보다도 가까이 보는 풀빛은 차마 다 말하기 어려울 만큼 크기와 종류에 따라 다른 빛으로 서있다. 흙조차도 모래알 하나마다 다른 빛깔과 모양으로 제 있을 곳에 알맞게 자리하고 있다. 그래서 그 모든 것들이 어우러져 그렇게 저렇게 있는 듯 없는 듯 살아가고 있는 것이리라.

내로우스 앞 길과 내로우 안의 모습


분독(Boondock)에서 잠들다

  코튼우드 캐니언 로드는 코튼우드 워시[오래전에는 물이 흘렀지만 지금은 흐르지 않다가 비가 오면 다시 물이 흐르기도 하는 내를 워시(wash; dry creek)라고 한다]를 따라 길이 나 있다. 가끔씩이라도 물이 흐르므로 다른 곳보다는 땅에 스민 물이 더 많아 그 촉촉한 땅에 뿌리를 내린 생명들이 꽤 여럿 있다. 이 가운데 미루나무들도 있는 것으로 보아 이 길을 코튼우드(cottonwood는 미루나무다)로 지은 까닭이 여기에 있지 않을까 짐작해본다. 이런 미루나무가 만든 그늘이 있는 곳엔 길섶마다 캠핑을 할 수 있도록 자리가 마련되어 있다. 물론 디스퍼스드 캠핑이라 다른 시설은 전혀 없다. 이런 곳을 지도에는 분독이라고 표시해 놓았는데, 정확하게 이게 무엇을 뜻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반적으로 분독은 오지를 일컫는다.


  분독에 자리를 잡고 텐트를 펼쳤다. 아직 날이 밝을 때라 좀 이른가 싶었는데 갑자기 먹구름이 몰려오는가 싶더니 이내 거센 바람이 불어와 텐트를 단단히 묶어야 했다. 변화가 심한 유타의 날씨를 제대로 보여주기라도 하듯이 먼 하늘엔 우르릉 꽝꽝 천둥이 치고, 번쩍번쩍 번개도 친다. 혹시 비라도 오면 어쩌나 걱정하며 어쩔 줄 몰라 우왕좌왕하는 사이 기어이 후드득 후드득 빗방울이 떨어졌다. 잠시 걱정은 됐지만 빗속에서 캠핑하는 것도 운치 있는 일이지 싶은 생각이 들다가, 천둥번개가 몰아치면 '위험하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되기도 했다. 서둘러 저녁을 해결하고 좀 더 지켜보기로 했다. 그러는 사이 다행히도 빗방울은 잦아들고 번개도 줄었다. 아침 햇살에 눈이 부셨다. 지난밤의 소란은 온데간데없고 따스한 햇살이 아침잠을 깨운다. 천천히 몸을 움직여 밝아오는 하루에 감사하는 마음이 저절로 들었다. 지난밤 맘 속으로는 수월찮게 걱정이 되었나 보다. 메마른 산과 들에 햇살이 내리니 금방이라도 살아날 듯 벌겋게 불타올랐다.

분독의 모습들


샛길이 주는 즐거움

  시키는 일 잘 안 하기, 이리 가라면 저리로 가기, 금 밖에서 놀기, 굽은 길로 가기, 샛길로 빠지기를 좋아하다 보니 그런 건지는 모르겠다. 어디를 가든 좀 더 거칠고 좀 더 좁거나 굽은 길로 가는 것이 좋다. 왜 그런지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전적으로 개인의 문제이기는 하지만, 가장 쉽게 짐작해 볼 수 있는 것은 성격 탓이다. 그러나 그 성격의 뒤에 있는 배경은 아마도 자라난 배경, 어려서 시골 생활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한적하고 고요한 환경과 어디를 가든 자연과 함께 지냈던 시절, 시골을 다시 정의해 보면 사람의 손길이 덜 미친 환경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자연이 가진 본래의 힘이 스스럼없이 드러나고 이어져있는 환경 말이다. 거칠고 투박한 곳을 즐겨 찾아다니는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참 메마른 땅이다. 크릭을 따라 난 나무들 말고는 근방에 이렇다 할만한 푸른빛을 찾기가 어렵다. 이런 메마른 땅은 겉으로 보기엔 황량하고 볼품없다. 거기에 쨍쨍 내려쬐는 햇살은 어쩐지 황량한 벌판의 민낯을 훤히 보여준다. 문득 잠시 멈추거나, 느릿하게 가본다. 아니면 길섶 너머 샛길로 빠져본다. 거칠고 황량하게만 보이던 땅들, 진흙이 말라 퍽퍽하게 흩어진 그 틈 사이로 삐죽삐죽 대를 올린 여린 생명들이 눈에 들어온다. 안으로 들어가면 다른 빛깔, 펑퍼짐한 땅들이 옷을 갈아입고 저마다의 결로 어우러져있다. 그뿐이랴. 듬성듬성 꽃을 피워 내일을 준비하는 생명들까지, 거친 대지를 살아가는 질기 궂은 생명들의 각축장이다.

샛길로 빠져야 볼 수 있는 풍경들


파리아, 파리아

파리아(Paria)는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말로 진흙탕(Muddy Water)이라는 뜻을 지녔다. 파리아 강은 남 유타에서 발원하여 북애리조나의 페이지(Page) 근방 리스 페리(Lee's Ferry) 구간에서 콜로라도 강과 합류하는 길이 약 153km의 길지 않은 강이다.


  그런데 이 파리아가 흐르는 구간이 상당히 흥미롭다. 상류 부근에는 레드락 캐니언과 브라이스 캐니언 국립공원이 있고, 이어서 코다크롬 베이슨 주립공원을 거쳐 이번 여행지인 코튼우드 캐니언 로드와 나란히 흐른다. 그뿐 아니라  그랜드 스테어케이스 준국립공원 구간에서는 벅스킨 걸치와 만나고, 더 웨이브를 거쳐 화이트 포켓을 지나 애리조나의 페이지 근방 리스 페리 구간에서 콜로라도 강과 합류한다. 이렇게 정리하고 보니 강을 왜 진흙탕이라는 말로 불렀는지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강이 흐르는 구간에 있는 아름다운 풍경과 지형이 어떻게 생겨났을지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다. 다른 곳에서는 흔하게 볼 수 없는 지질학적 특징을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리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계곡이나 크릭 등을 찾아도 그들 나름대로의 숨겨진 매우 흥미로운 지형을 지니고 있다. 지금도 비가 내리면 파리아 강은 진흙탕으로 변한다. 그저 흙탕물 정도가 아니라 매우 걸쭉한 진흙이 흐르는 것처럼 보인다. 강을 건넌 타이어는 어디 진흙탕 길을 달려온 것처럼 걸쭉한 진흙으로 덮여버릴 정도다. 이런 강물이 흐를 때마다, 흐르는 곳마다, 진흙이 쌓일 테고 그위에 주변의 붉은 황토가 날아들어 쌓일 것이다. 그리고 풀이 돋고 덤불이 자라고 간간히 나무도 자라다가 다시 물이 불면 진흙탕은 넘쳐 주변을 덮는 과정을 오랜 세월 동안 되풀이했을 것이다. 파리아 주변에서 이름 없는 아무 곳이라도 찾아들면 세월의 흔적 고스란히 간직한 아름다운 풍경쉽게 있는 까닭이다.

비가 왔는지 진흙탕이 되어버린 파리아 강
파리아 강 주변의 풍경들


아름다운 날들의 다른 이름, 여행

  가는 길, 오늘 길에 짙은 여운이 남는 것은 어쨌든 지나온 것들의 기억이 짙게 남아있기 때문이리라. 몸이 고되지 않을 리 없다. 그러면서도 꼿꼿이 허리를 곧추세워 긴 시간 졸음과 사투를 벌이며 돌아올 수 있는 까닭도 그것일 것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여운의 기억은 아름답게 새겨져 다시 길에 설 때까지 버티는 힘이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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