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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에 홀리다 Dec 15. 2018

미국의 비경, 리스 페리(Lee's Ferry)사적지

몰몬교 역사의 흔적들


앙리 르 페브르프랑스의 철학자, 사회학자. 소르본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했으며, 2차 세계대전 당시 레지스탕스로 활약했다. 마르크스주의자였던 그는 1930년에 공산당에 입당하였으나 1950년대 스탈린주의를 비판하는 등의 활동을 이유로 프랑스 공산당에서 축출되었으며, 1960년대에는 알제리 전쟁 반대 운동에 앞장서기도 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국립과학연구소, 스트라스부르 대학교 사회학 교수를 역임했으며, 1962년부터 스트라스부르 대학과 파리 10 대학 낭테르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68 혁명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초기에는 마르크스의 사상에 관심을 기울였으나 말년에는 고도 산업사회에서 정보화 사회로 나아가는 현대사회의 특징들에 주목하여 일상성의 문제, 도시 문제, 인공지능의 문제를 집중적으로 연구했다. [Yes24]



르 페브르 휴게소(Lefebvre Rest Area)


지난밤 잠잘 곳을 찾아 헤매다가 찾아든 곳은 애리조나 89A번 도로의 케이 밥(Kaibab) 고원 구간에 있는 르페브르 휴게소였다. 지난 유월 화이트 포켓을 여행할 때도 이곳에서 하룻밤 신세를 졌는데, 우연히 이번에도 이곳에서 하룻밤을 신세 지게 되었다.

▲ 마치 해돋이 처럼 보이는 낮달/애리조나 89A번 도로

 

사실 휴게소라고는 하지만, 주차공간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 화장실이 하나 있기는 한데 이미 문을 닫은 지 오래됐고, 전망대가 있어서 그나마 지나는 이들의 눈길을 끈다. 지대가 높아 겨울엔 살을 에이는 칼바람이 몰아친다. 지난 유월엔 그나마 춥지는 않았는데, 이번엔 무려 영하의 기온에 바람이 몰아치니 캘리포니아 사람 얼어 죽는 줄 알았다.


그동안 별 관심이 없었는데 이번엔 휴게소 이름이 신경 쓰였다. 다른 휴게소는 보통 그곳 땅이름이나 지역 명물을 빌어 이름을 짓는데, 여기는 프랑스어 '르 페브르'다. 여기저기 뒤적거렸는데 이 이름이 붙은 까닭을 찾을 수 없고, 같은 이름을 가진 유명인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게다가 이 사람이 공간을 현대의 시각으로 재해석한 사회학자다. 여기 전망대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이 좀 남달라서 이 사람 이름을 붙였나 싶어 그에 대해 소개하는 것으로 글을 시작했다.

▲ 르 페브르 전망대에 오르면 보이는 먼 경치; 멀리는 자이온 국립공원도 보인다


너무 추운 나머지 사진 몇 장 찍고 서둘러 길을 나섰다. 좀 따스한 곳에서 아침을 해결할 작정이다. 애리조나 89A 번 도로는 '국가지정 아름다운 도로(National Scenic Byway)'는 아니지만, 그에 버금갈 만큼 주변 경치가 아름답다. 이 길을 가면서 만날 수 있는 이름난 곳이 꽤 많다.


그랜드 캐니언 노스 림을 가는 길은 여기밖에 없다. 이 길에서 이어지는 노스 림으로 들어가는 67번 길 또한 가는 동안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진다.


지난번에 소개했던 '벅스킨 걸치(Buckskin Gulch)' 도 이 길을 통해 갈 수 있고, 그 옆에 있는 '더 웨이브(The Wave)', 그 옆에 있는 '화이트 포켓(White Pocket)', '버밀리언 클리프 준국립공원(Vermilion Cliffs National Monument)', 이들이 모두 89A 번 도로와 연결되어 있다.


조금 더 가면 마블 캐니언(Marble Canyon)이 나온다. 이 마블 캐니언 안쪽에 자리 잡은 리스 페리 사적지도 빼놓을 수 없는 아름다운 곳이다. 이곳에서 시작하는 파리아 강(Paria River)을 타고 올라가는 트레일은 또한 장거리 트레일을 하는 이들에게는 꽤 이름이 알려진 곳이다. 그 트레일의 끝에 지난번에 다녀온 벅스킨 걸치가 있다.

▲ 버밀리언 클리프; 자동차로도 한참을 가야 끝이 보인다.


리스 페리 사적지(Lees Ferry Historic Site)


따스한 햇살에 몸은 한층 부드러워지고 덩달아 기분도 즐거워졌다.

처음에는 코튼우드 캐니언을 가로질러 이곳으로 올 생각이었는데, 어제 일이 틀어지는 바람에 생각한 시간보다 많이 늦어졌다. 그렇다고 처음 생각해뒀던 시간이나 갈 곳에 애써 매이고 싶지는 않다. 어디든 길에는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려는 토박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눈에 띈 것이 리스 페리 이정표다. 놓칠 수 없다는 생각에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안으로 들어갔다.

▲ 리스페리로 들어가는 길가엔 멋들어진 바위들이 널려있다


리스 페리는 1860년대에 몰몬교도들이 콜로라도 강을 건너기 위해 찾아든 때부터 시작했다. 그들 일행 가운데 존 리(John D. Lee)라는 사람이 콜로라도 강을 건너거나 강을 타고 내려가기 위해 페리 시설을 만들었고, 사람들은 이곳을 리스 페리라고 불렀다. 이후 이곳은 콜로라도 강을 건너려는 여행자, 광산업자, 탐험가, 그 지역의 원주민 등으로 성황을 이뤄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때에 사람들이 사용했던 건물은 다시 세워 전시하고 있고,  광산 업자나 배에서 사용했던 일부 기계 부품이 널려있다. 지금은 글랜 캐니언 국립 유원지(Glen Canyon National Recreation Area)에 편입하여 정부 아래 국립공원 관리청에서 관리하고 있으며, 입장료는 자동차 한 대에 30불,  오토바이 25불, 도보나 자전거는 15불이다.


리스 페리 사적지는 700마일 안팎 글랜 캐니언 유역에서 자동차로 들어가  콜로라도 강을 건널 수 있는 유일한 곳이다.  이곳은 크게 나누어 작은 배를 댈 수 있는 곳과 쉴만한 곳, 유물을 전시하는 공간, 그리고 트레일을 하려는 이들을 위한 편의 시설, 야영장 등이 있는 곳이기는 하지만, 어떤 상업 시설도 없기 때문에 상당히 깨끗한 환경을 유지하고 있다.

▲ 리스 페리 무인 요금소에 서있는 안내문


리스 페리 요금소를 지나 도로가 끝나는 부분에 주차장이 하나 있다. 여기 말고도 볼 만한 곳이 더 있지만, 이곳이 바로 리스 페리가 시작한 곳이다. 차에서 내려 주변을 둘러보다 보면 주변의 아름다운 경치에 감탄할 수밖에 없다. 배를 대고 띄울 수 있는 시설이 있을 뿐만 아니라, 강에 다가가기 쉬운 지형을 보니 왜 이곳을 콜로라도 강을 건너는 길목으로 만들었는지 알겠다.


강변엔 갈대가 있고, 나무들도 이제야 물들기 시작했다. 어제는 겨울 왕국에서 눈 밭을 거닐고, 오늘은 시간을 거슬러 가을 강변에서 추억에 잠긴다. 어떤 이들은 배를 띄우고, 또 다른 이들은 낚싯대 둘러메고 강변을 어슬렁 거린다.

▲ 콜로라도 강변 건너편엔 갈대가 예쁘게 자라고 있다.


[사적지(Historic Site)]

어젯밤 추위에 언 몸은 이미 나긋나긋한데, 가볍게 세수를 하고 나니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주변을 살피니, 마침 밥을 먹을만한 곳이 있어 따끈한 국물을 만들어 아침까지 해결했다. 이제 본격적으로 주변을 둘러보기로 했다.  


조금 걷는데 눈에 띄는 물건들이 있다. 예전에 이곳에 머물던 사람들이 쓰던 집을 다시 지어놓았다. 금광을 운영할 때 썼던 보일러 부품들이 여기저기 흩어져있었는데, 이 부품들을 어디로 치우지 않고 그대로 놔두고 사람들이 와서 볼 수 있도록 짤막하게 설명을 해놨다. 몰몬교도들이 여기에서 자리를 잡기 시작한 것이 1,800년대니 무려 200년도 넘은 쇳덩이들이 원래 모양을 간직한 채 저러고 있다.

▲  취사 공간, 고물 보일러 부품


[콜로라도 둘레길(River Trail)]

짧게 걸을 수 있는 오솔길이 있어서 좀 걸어보기로 했다. 이 길은 강을 따라 걸을 수 있는 둘레길이었다. 여기에는 길이 두 개 있는데, 하나는 언덕 위로 올라가 강을 내려다볼 수 있는 스펜서 트레일이고, 또 하나는 강을 따라 걷는 리버 트레일이다. 이번에는 강을 따라 나있는 길을 걸어보기로 했다. 걷다 보니 처음 생각보다 좀 길게 느껴져 한 구비만, 한 구비만 하다가 돌아왔는데 나중에 확인해보니 결국은 거의 다 갔다가 돌아온 것이다.

▲길은 두 개, 산길과 강으로 난 길이다


강을 따라 난 길을 가다 보면 한 구비 돌 때마다 달라지는 세상을 만날 수 있다.

강 넓이가 그리 넓어 보이지는 않아도 깊이가 있어서 그런지 흐름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강물은 머물러 있는 법이 없어 물살은 스며드는 온갖 것들을 실어 모래톱에 쌓아놓는다.


가을빛 분명한 강가에 앉아

언덕을 넘는 구름을 바라본다. 

하늘을 닮아 강물은 고요한데,

하얀 물거품 파문을 일으킨다. 


▲ 콜로라도 강 구비를 돌 때마다 달리 보이는 풍경들


[파리아 비치(Paria Beach)]*

역사 구역 못 미쳐서 커다란 주차장이 하나 있다. 자그마치 14일 동안이나 무료 주차할 수 있다는 안내문이 붙어있길래 너무 궁금해서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이곳은 여러 날 동안 백패킹을 하는 이들을 위해 마련한 주차장이다. 여기서 출발하여 벅스킨 걸치 갈림길까지 다녀오려면 못해도 사나흘은 걸리고, 벅스킨 걸치까지 다녀오려면 한 주는 훌쩍 지날 것이므로 그네들이 맘 편히 주차할 수 있도록 배려해 놓았다.


주차장을 벗어나 조금만 밖으로 나오면 파리아 비치로 가는 길을 만난다. 길을 따라 들어가면 포장하지 않은 주차장을 만나는데 이곳에 차를 세우고 강변 안쪽으로 들어가면 모래밭을 만날 있다. 강이 급하게 모퉁이를 돌면서 뱉어놓은 모래가 쌓여 만들어진 모래밭은 생각보다 훨씬 곱고 하얗다. 어찌어찌하여 지금은 이들의 모습을 찾기 어렵게 되었지만, 땅은 원래 나바호 부족이 살던 곳이다. 마침 이날 이들이 여기 모래밭에 나와 종교의식을 하는 그네들을 있었다. 가족으로 보이는 예닐곱 사람이 둘러앉아 가장 나이 많은 사람이 무슨 주문 같은 것을 웅얼거리는 장면을 보기는 했지만, 차마 사진은 담을 없었다.


*파리아(Paria) 강은 바로 이곳에서 만나는 콜로라도 강의 한 줄기다. 강의 위쪽에서 벅스킨 걸치와 만나서 여기 콜로라도 강까지 흘러들어 온다. '파리아'는 파이우트(Paiute) 원주민의 말로 '흙탕물'이라는 뜻이다.

▲  파리아 비치의 모습


[나바호 다리(Navajo Bridge)]

애리조나 89A번 도로의 리스 페리 입구를 지나면서 콜로라도 강을 건너는데, 바로 이 나바호 다리를 이용한다. 나바호 다리는 1928년에 교각을 세우지 않고 콜로라도 강의 절벽 양쪽을 이어 만든 철교로 높이가 142미터에 이른다. 무엇보다도 여기서 보는 마블 캐니언과 글랜 캐니언의 풍경이 일품이라서 지나는 이들이 단골로 들리는 명소이기도 하다. 다리는 찻길과 사람 길을 따로 만들어 놓아서 차를 대놓고 걸어서 천천히 둘러볼 수 있게 해 놓았다.

▲ 나바호 다리에서 보이는 마블 캐니언, 콜로라도 강이 멋지다








다음 이야기는 '모뉴먼트 밸리가 보이는 언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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